“요즘 감기는 열이 심하고 장염이 같이 생기니까 먹는 거 조심하세요. 약 잘 먹이고요.‘ 이렇게 아이를 진찰하고 보내려는데, 엄마는 뭔가 망설이는 듯 하더니 몇 마디 물어본다. ‘혹시, 약에는 항생제 안 썼죠?’ 물론 항생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라 생각해서 처방한 약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보냈다. 그런데 요즘 그런 물음이 많아졌다. 약에 무슨 성분이 들어갔는지 알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환자 권리이고, 그래서 처방정도 두 장 주도록 보건복지부에서 권유하고 있으니까 응당 그러려니 했는데….. 며칠 전에는 스테로이드제 혹시 들어갔냐고 물어오는 엄마가 있었다. 스테로이드제는 전문 중에서도 전문약이기 때문에 쉽게 물어볼 성질이 아닌데, 나는 오히려 왜 물어보는 건지 궁금해졌다. “어, 그건 왜 물어보세요?”“아니, 다름이 아니라….. 그제 TV에서 감기약에 스테로이드제라는 걸 많이 쓴다고 하다라고요. 그래서…..” 아, 또 TV로구나. 이놈의 TV에서 뭔 얘기만 나오면 며칠 또 엄청 바빠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다. 도대체 방송된 내용이 어떤 건지 궁금해서 진료 끝나고 녹화된 거라도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항생제 남용 국가, 대한민국 보신 분들은 다들 내용을 알 거라서 대충 요약만 해보면, 감기약에 항생제 남용이 너무 많더라…..어떤 경우에는 강력한 염증 억제약인 스테로이드제까지 처방하더라…..물론 꼭 필요할 때는 쓰지만 문제가 있더라…… 이런 내용이다. 나도 감기에는 항생제를 안 쓰려고 무지 애를 쓰고 있기 때문에 ‘불만제로’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항생제 부분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하지만 내용에 다소 문제가 있다.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었는데, 항생제 처방률이 아주 낮은 이유를 보니 세균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키트를 사용하고 결과에 따라 항생제를 쓴다는 내용이다. 아주 훌륭한 방법이기는 하나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것이 문제이다. 그 키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검사비용이 들어가는데, 그 비용을 국가나 환자가 부담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독일은 국가에서 비용 부담하고, 그것에 안 맞는 항생제 처방은 규제를 가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나라에서 인정해줄까? 방송에 나왔다시피 우리나라 항생제 처방률은 외국에 비해서도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었다. OECD 평균 21.3%로, 나라별 비교를 해보면 벨기에 27.1%, 한국 23.8%, 독일 14.2%였다. 물론 항생제 처방이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마치 우리나라가 엄청 높은 것처럼 얘기하고, 그것을 처방하는 의사들은 마치 부도덕한 부류인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이 맘에 안 들었다. 억, 감기에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다니….. 항생제보다 더 시청자들을 자극하는 것은 감기에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스테로이드제란 콩팥 위에 얹혀져있는 부신이란 곳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부신피질호르몬이라고도 말한다. 그것을 치료용 약으로 만든 것인데, 염증을 억제하는 작용이 강력하고, 기분을 좋게 하기도 한다. 의료에서는 심한 아토피나 두드러기 등 피부 질환에 많이 사용하고, 심한 관절염에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흔히 입이 돌아갔다는 병, 즉 얼굴신경마비에는 고용량으로 치료를 하기도 하고, 천식이나 각종 질환에도 적절한 용량으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하게 된다. 부작용으로는 부종, 피부염, 골다공증, 당뇨 등이 있는데, 보통은 장기간 복용할 때 문제가 되고, 의사들이 필요에 의해 단기간 사용할 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어느 약국이 피부치료를 잘 하더라, 관절약을 잘 쓰더라 하면서 유명했던 일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표현으로 거기 약을 쓰면 ‘직방이더라’라고 할 정도이다. 그게 이 스테로이드제를 혼합해서 약에 넣었기 때문에 피부병이 좋아지고, 관절이 좋아지는 효과였다. 할머니들은 그 약을 쓰다 보니 다른 데를 가지도 못하고, 그 약국만 가게 된다. 전국에서 소문 듣고 가기도 한다. 문제는 오래 사용하다보니 오히려 피부병을 악화시키고, 관절이 녹아나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면역력이 약해져서 세균감염에 취약해지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부작용들은 장기가 사용할 때의 문제들이었다. 방송에서 스테로이드제의 위험성을 시청자들에게 보도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 약을 써야 하는 것까지 부도덕하고, 무리한 투약인 것처럼 해버리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병의 치료를 위해서 필요할 때 사용할 수는 있다고 마무리에서 짧게 얘기하기는 했지만, 이미 보도의 상당 부분에서 ‘스테로이드 = 독약’인 것처럼 표현해버렸으니 괜찮다는 뒷말이 시청자들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얼마 전 일본의 의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잃어버린 10년’이란 제목인데, 10여년 전 일본에서 아토피 치료에 약간씩 사용했던 스테로이드제를 나쁜 것으로 몰아가는 바람에 그 약을 잘 못 쓰게 되었고, 대체의약품 개발 붐이 일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아토피를 치료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오히려 병이 더 심해져서 사람들이 고생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적절히 사용하라고 한 약을 쓰지 못하게 막아버리면 안 된다. 스테로이드제 사용 지침과 부작용에 대해 의사들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사용 지침 범위를 벗어나서 어느 정도는 사용할 수도 있다. 나도 잘 안 낫는 알러지비염이나 편도염이 심할 경우에 2~3일 정도 간단히 쓰기도 한다. 확실히 효과가 있어서 환자들의 상태가 아주 좋아진다. 재작년인가? 아이들 감기에 ‘아세타아미노펜’이라는 해열제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보도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간독성이 있어서 황달이나 간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진료실에 들어오는 아이 엄마들마다 해열제를 꼭 먹어야 한다느니, 안 쓰도록 해달라느니 말이 많았다. 분명 의학 교과서에는 과용량이나 치사량을 사용할 때라고 씌여 있는데, 해열제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듯한 보도가 되어버려서 의사들이 참 난처했었다. 참고로 난 아이들을 키울 때, 서로 약을 먹겠다고 아우성을 치면, 해열제가 달작지근하기 때문에 한 숟갈 떠서 먹이기도 했다. 물론 열이 없어도….. 방송에서 한 번의 보도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사람들의 인식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이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이번의 방송 프로그램 내용도 앞뒤를 좀 생각하면서 했으면 참 괜찮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