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물을 먹였다. 옹근 33년 전 오늘이다. 1978년 2월 21일은 동일방직의 노동조합 선거 날이었다. 스무 살 안팎의 청순한 여성노동자들은 대의원을 뽑으려고 곰비임비 모여 들었다.그 순간, 어깨 벌어진 사내들이 악취를 풍기며 살천스레 다가왔다. 손에 고무장갑을 낀 그들은 여성노동자들의 맑은 얼굴과 몸에 서슴없이 똥오줌을 퍼부었다. 한 여성노동자가 진저리치며 절규했다. “너희도 인간이냐?” 불량기 가득한 그들은 그 여성에게 몰려가 똥오줌 가득한 양동이를 뒤집어 씌웠다. “건방진 년, 입 닥쳐!” 곧이어 주먹과 발길질이 쏟아졌다.그 엽기적 야만이 벌어지는 현장엔 당사자만 있지 않았다. 동일방직 사무직 직원들은 물론, 정사복 경찰이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 한국노총 섬유노조 본부에서 나온 노조간부도 버젓이 ‘참관’하고 있었다. 참으로 생게망게한 일이었다. 경찰은 물론 상급 노조 간부조차 “말려 달라”고 울부짖는 노동자들에게 합창으로 퍼부었다.“야! 이 쌍년들아! 가만있어.” 독자에게도 <미디어오늘> 편집자에게도 양해를 구한다. 그 처절한 순간을 에둘러 표현하고 싶지 않다. 있는 그대로 증언하고 싶다. 섬유노조 소속의 ‘조직 행동대’란 이름의 깡패들은 노조 사무실을 아예 점거했다.똥오줌 양동이 씌우고 “입 닥쳐” 주먹경찰이 수수방관한 이유는 있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가 똥물의 배후였기 때문이다. 충격으로 50여명이 졸도하고 14명은 병원으로 실려 갔다. 1명은 정신분열 증세로 6달 넘도록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했다.그럼에도 경찰은 똥물로 범벅된 여성노동자들을 줄줄이 연행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언론이다. 어떤 신문도 방송도 그 야만을 보도하지 않았다. 물론, 여성 노동자들은 ‘먹물’들처럼 쉬 굴복하진 않았다. 곳곳에서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며 애면글면 시위를 벌였다. 언론은, 기자들은 죄다 침묵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여성노동자들이 마침내 한 방송사를 찾아가 방송국장 면담을 요청했을 때다.“배우지 못한 것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기자들이 내뱉은 말이다. ‘기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개 쫓듯 내몰았다. 그로부터 33년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바뀌었다. 박정희 정권처럼 여성 노동자들에게 똥물 퍼 먹이는 공작을 이명박 정권조차 감히 벌일 수 없다. 내놓고 똥물 뿌릴 기업인도 더는 없다. 상급 노동조합도 바뀌었다.하지만 바뀌지 않은 게 있다. 누구일까. 바로 언론이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그 야만을 바꿔온 사람들에게 줄곧 ‘마녀 사냥’을 했다. 그나마 목소리를 내던 <동아일보>조차 1990년대 들어 사냥에 가세했다. ‘늦게 배운 도둑’으로 요즘은 한 술 더 뜬다.보라. 삼성의 전자제품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림프종 따위의 희귀 질환에 걸려 숨진 노동자가 공식 집계로만 15명에 이른다. 희귀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는 89명이다. 자살자도 많다. 2011년 들어서도 두 달 동안 삼성전자에서 두 명의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아들이 “3교대 근무라지만 8시간 일하는 게 아니라 14시간, 15시간 일한다며 힘들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집에 왔는데 발부터 다리까지 피부 껍질이 다 벗겨져 있었다. 왜 그러느냐 물어보니 약품 얘기를 했다”고 고발했다.하지만 어떤가.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는 모르쇠다. <한국방송><문화방송><서울방송>의 저녁 ‘간판 뉴스’에 자살 관련 보도는 없었다. 다른 나라 기업에서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은 사뭇 진지하게 부각해 보도하는 언론이 정작 이 땅의 자칭 ‘세계 일류기업’에서 일어난 참극을 모르쇠 하는 풍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미 나라밖에서도 삼성전자의 행태를 고발하고 있는 상황이다.침묵했던 33년전 언론, 오늘도 삼성에…내 또래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을 때, 대학 강의실에서 철학을 배우던 나는 똥오줌을 사람에게 먹인 야만을 보도조차 하지 않는 언론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기자가 되어 언론을 바꾸겠다고 다짐한 이유다. <동아일보>와 <한겨레>를 거치며 언론개혁 운동에 동참해왔지만 어느새 나는 언론사 밖에 있다. 회한이 드는 까닭은 무슨 미련 따위가 아니다. 젊은 날의 다짐에 견주어 현실이 냉엄해서다. 33년 전 그때 현직 기자로 살아가고 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도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의 고문, 주필, 편집인, 대기자로 여전히 대한민국 언론을 좌우하고 있지 않은가. 비정규직 기자로 언론의 한 모퉁이에 서 있으려던 촌지마저 접은 채, 저들이 지배하는 한국 언론을 지켜보는 심경은 고백하거니와 착잡하다. 그래서다. 젊은 언론인들의 깨끗한 눈에 충정으로 호소하고 싶다. 33년 전 시민사회는 성명서를 내어 기자들에게 물었다. “폭도들이 여성노동자들에게 똥물을 퍼 먹인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했다한들 아니, 똥물을 퍼 먹인 것이 나쁘다고 한 마디 덧붙였다 한들 그것이 현행 법규에 어긋나는 것인가? 그 사실을 단 1단의 기사로라도 알리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 또는 조치가 있단 말인가?”다시 그 물음을 2011년 오늘의 현직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독재정권도 긴급조치도 없는 지금 삼성의 야만을 보도했다한들 어긋나는 법규가 있는가를. 아니, 정말이지 정중하게 묻고 싶다. 왜 삼성 자본의 문제점을 보도하지 않는가? 혹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가. 그래도 지금은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먹이지 않는다고?*이 글은 2월24일 미디어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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