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육아휴직급여를 상향시킨다는 방안을 내어 놓았다. 정부는 출산율을 제고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방도를 추진 중에 있고 그 핵심에는 일-가정 양립 정책이 놓여 있다. 지난 9월 10일 ‘제2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현재 50만원인 정액제 육아휴직급여를 정률제로 개선하겠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육아휴직급여를 이전 임금의 40%로 하되 50만원의 하한선과 100만원의 상한선을 설정하였다.복지 수준을 높이자는 데 있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현재 육아휴직급여는 고용보험에서 지급된다. 육아휴직급여의 상향 조정이 찬성할 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도적 제약으로부터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있다. 필자는 이번에 이 문제들을 환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 문제점 : 사각지대의 소외 우리나라 고용보험 제도, 아니 고용정책 전반이라 해도 무관할 터인데, 이 제도가 갖고 있는 태생적인 문제점은 광범위한 사각지대에 있다. 사회보험 제도는 사회연대 정신으로부터 출발하며, 소득 재분배라는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 제도로 발전하였다. 다시 말해서 보다 취약한 자에게 보다 실질적인 수혜-절대적인 수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가 가도록 함으로써 재분배 효과를 높여야 한다.그러나 전체 취업자의 59%가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존재함에 따라 고용보험을 통한 어떤 복지 혜택은 비가입자를 차별하는 결과를 낳게 만든다. 육아휴직급여 역시 고용보험기금을 활용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상당수의 비정규직 여성들이 소외되게 된다. 육아휴직급여액을 높이는 것에 앞서 이들 소외된 여성노동자들을 제도적 혜택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보다 시급하다.뿐만 아니라 이번 혜택은 월급여 100만원 이하의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에게는 혜택이 전혀 없다.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하더라도 최저임금 수준에 있는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은 여전히 50만원을 받을 뿐이다. 두 번째 문제점, 국고 지원없는 지출 확대 현재 육아휴직급여 제도 변화에 따른 추가 지출 소요는 2011년에만 약 700억원 향후 5년간 약 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추가 지출의 부담은 전적으로 고용보험기금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예산을 둘러 싼 투쟁이나 정당간 협상에 의해 변화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용보험기금의 모성보호급여에 국고는 매년 불과 100억원 밖에 지급되고 있지 않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추가 지출 부담은 거의 전적으로 노사의 보험료에 의존할 것이 확실시된다.국회예산정책처의 추산에 의하면 2015년경에 이르면 모성보호급여 지출액에서 국고지원 비중은 1.7%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거칠게 말해 정부는 육아휴직급여를 확대한다는 선전을 요란하게 하면서 남의 돈으로 생색을 내는 셈이다.애초 모성보호급여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이를 고용보험기금 내에 설치한 것 자체가 제도의 취지에 적절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고용정책 사업의 차원이 아니라 보다 넓은 차원의 사회적 문제로 설정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육아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반드시 고용보험 가입자여야 한다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당연히 일반회계에서 전적으로 지급하고, 취업 여부에 대한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성격의 정책이었던 것이다. 세 번째 문제, 실업급여 계정의 적자 가중 현재의 재정구조가 지속된다면 육아휴직급여 지출의 확대는 그렇지 않아도 심각해지고 있는 실업급여 계정의 적자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언급한 국회예산정책처의 동일한 보고서는 실업급여계정의 적립금이 2013년 현 정부의 임기가 종료되는 때에 고갈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육아휴직급여 사업은 현재 실업급여 계정에서 지출된다. 우리 노동자들이 내는 고용보험료는 모두 실업급여 계정으로 들어가는 데 여기서 육아휴직급여 사업이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현재의 고용보험 기금 적자 문제는 단순히 운영의 방만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앞서 언급한 ‘국고지원의 배제’의 연장선에 있는 문제로 보아야 한다. 많은 나라에서 실업은 노동자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으므로 최고 50%의 실업급여를 국가가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는 국가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경기침체기에 자동적으로 국가의 재정지출을 확대함으로써 소득을 평탄화시키는 역할도 하게 된다. 출산율 제고, 이 정도로는 효과 없다.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에는 핵심적으로 고용문제가 들어 있다. 출산과 양육이 여성의 경력단절과 저임금화를 초래하는 현재의 고용구조에서 출산을 미루는 것은 개인에게는 너무나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따라서 고용정책과 연계시키고자 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는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 또한 너무나 분명하다. 고용의 압박으로부터 발생한 저출산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더욱 과감한 정책을 구사해야만 한다.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언급한 것에서 보았듯이 현행 제도를 활용하는 전략은 오히려 고용보험 기금의 근본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누구나 걱정없이 아이낳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는 제도는 고용보험으로부터 독립시켜 ‘혁명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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