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0월 00일 (?요일)수술실 가는 길…..입원 5일째이다. 오전에는 수술 예약이 많아서 오후 2시경으로 내 수술 시간이 잡혔는데, 어젯밤부터 금식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배고픔에 의한 고통이 더 심해진다. 그런데 2시, 3시, 4시, 5시가 지나도 부를 생각을 않는다. 아침부터 옆에서 기다리던 아내는 간호사에게 물어보려고 하지만 내가 말렸다. 분명 앞 수술들이 지체되어 순서가 밀리는 것이고, 또 병원 일정들은 다그치거나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오후 5시 30분이 되어서야 수술실로 가게 됐다. 병원에서 일할 때는 환자 얼굴과 바닥만 보면서 다녔는데, 정작 내가 침대에 눕혀지고 천정에 일렬로 붙어있는 형광등들을 보면서 복도로 실려 가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수술방은 언제나 차갑다. 너무 추워서 간호사에게 담요와 온풍기를 달라고 했다. 관절경 수술이어서 전신 마취가 아니라 척추마취를 하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누워서 요추에 주사기를 넣어서 마취를 시작한다. 나도 응급실 근무를 할 때 뇌막염이 유행하는 경우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척수검사를 하던 기억이 난다. 척수액을 뽑아내면서 아이들에게는 안 아프다고 달래던 것이 얼마나 소용없는 일인지. 등에 바늘을 꽂는 것은 누가 당하더라도 공포 그 자체이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입술에 힘을 준다.처음에는 아무 느낌도 없다가 서서히 저릿저릿 느낌이 오더니 20분 정도 지나서는 아예 움직일 수가 없고, 건드는 느낌만 들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수술이 시작됐는데 아프지는 않았다. 정신은 말짱해서 고개를 돌려서 가끔씩 시계를 보기도 했다. 2010년 00월 00일 (O요일)수술 다음 날. 척수 마취 때문에 머리도 들지 못하고, 수술한 다리를 올려놓고 자느라고 자세가 안 잡혀서 밤에 여러 번 깼다. 아프면 강한 진통제를 준다고 했지만 수술 후에 얼마나 아픈지 경험해 보려고 웬만큼 아프지 않은 이상 주사 달라고 하지 않았다. 마비된 다리는 밤중에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간간이 칼로 도려내는 듯한 심한 통증이 몇 차례 왔다. 사실 통증보다는 배고픔이 더 괴로운 밤이었다.너무 배가 고파서 어젯밤에 방귀가 나왔다고 거짓말 하고는 아침부터 죽을 먹게 됐다. 밤중에 방귀가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알 수 없기도 했거니와 오늘도 밥을 못 먹으면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점심부터는 제대로 된 밥이 나오게 되었는데, 배고픈 나는 허겁지겁 먹었지만 다른 침상 사람들은 오늘도 불평이다.“하여간 병원밥은 맛이 없어서 못 먹겠단 말야.”“그러게 말이예요. 좀 먹을만한 것들 만들어주지, 이거야 원…..”그러면서 다들 절반 정도 먹다가 남기고, 여기저기서 꺼내든 빵이나 밖에서 반입한 음식물을 먹는다.병원밥의 비밀병원에서 나오는 식사는 왜 그리 맛이 없고, 금방 배가 꺼지는 걸까? 잘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이어서 칼로리를 적게 하느라고 그런가?전에 잘 아는 병원 영양사와 병원 식사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서 살짝 이유가 될만한 것들을 간추려 본다. 이름하여, ‘병원 밥이 맛없는 이유 3가지’.첫째, 음식을 병실 여기저기 나르는 동안 밥과 국, 반찬이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사를 할 때 음식이 차려지고 30분 정도 지나서 먹으려고 하면 맛이 달아나 버려서 숟가락을 놓게 된다. 음식의 맛에는 적절한 온도가 중요한 것이다. 오래 전에는 병원 환자 식사를 노출된 운반차로 날랐던 적이 있지만, 요즘 웬만한 병원에서는 모두 냉온방 장치가 된 식사운반 수레(Meal delivery carts)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많이 해결이 됐다. 일부 적은 규모의 병원에서는 그런 수레가 없어서 아직도 식은 채로 음식을 나르기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병동 병실 수에 맞게 주문 제작으로 만드는데, 모양이 허술해 보여도 그 수레의 값이 1,000만원에서 1,500만원까지 하기 때문에 웬만한 중소병원에서는 두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큰 병원에서는 한 병동에 두 대 정도 가지고 있다.< 병원용 식사운반 수레(Meal delivery carts) >둘째, 병원 식사는 대게 짜지 않게 식단을 만들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보온, 보냉 음식 운반 수레가 있는데도 병원밥이 맛이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것은 온도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가 보통 먹는 음식들은 간을 맞춘다는 이유로 다소 짜게 먹고, 특히 저림 반찬들이 많은 우리 식단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소금 섭취가 많다고 한다. 한국인 성인들은 하루 15g 정도의 소금(나트륨으로 6g)을 섭취한다고 하는데, WHO의 나트륨 섭취 권고량이 2,000㎎, 소금으로 치면 5g 정도인데 우리는 보통 그 3배 이상을 먹고 있다.그 소금의 염분이 미각을 자극해서 맛을 나게 만든다고 한다. 그렇다고 병원 영양사들이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음식을 ‘간이 딱 맞게 한다’고 넉넉히 짜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맛이 없다고 느껴지는 병원밥을 먹는 것이다. 수술이 끝나서 겨우 얻어먹는 밥이라 맛있게 먹지만 그런 생각까지 떠올리며 음식을 일일이 맛보니까 정말 심심하기 짝이 없다. 녹두나물 무침을 먹는데도 그냥 생뿌리를 씹는 것 같았다.셋째, 음식 단가가 너무 싸게 책정된다.이것은 다분히 아무개 병원 영양사를 통해 들은 내부고발에 해당해서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올리기로 했다. 대부분의 대형병원들은 환자들이나 직원들의 식사관리를 외주 업체에 맡기고 있다. 영양실 운영의 효율과 급여나 퇴직금 관리 등 편리함을 얻기 위해서(실지로는 노무관리에 신경 쓰지 않게 하기 위함이 더 큰 이유일 것 같다.) 외부 업체에 영양사나 조리원뿐만 아니라 조리 기구, 음식 재료 반입까지 맡긴다고 한다. 대게 음식 재료 계약은 일 년 단위로 하게 되는데, 병원에서 적은 가격으로 맡기기 때문에 업체도 어쩔 수 없이 싼 재료들을 사용하게 된다. 병원에서 맛있는 국이나 반찬을 먹는 것은 이렇게 볼 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다가 먹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 넉넉한 병원에 입원했다면 그 사람은 행운아라고 봐야 한다. 음식에 있어서는.< 필자가 먹은 병원 식사 > 딱 봐도 먹고 금방 배고플 것 같다.우연히 앞 침상의 우리 병실 방장은 저녁 식사가 들어올 때쯤이면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척추뼈가 부러졌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누워만 지내는 것은 아는데, 세수하거나 잠깐 일을 볼 때는 조심해서 일어나서 다니기도 한다. 아침밥, 점심밥을 먹을 때는 혼자서도 잘 먹는다. 그런데 저녁밥 먹을 때가 되면 자리에 완전히 누워서는 꼼짝도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부인이 저녁 시간에 맞춰 와서는 누워있는 남편에게 일일이 음식을 떠서 먹여주는 것이 아닌가? 부인에게 엄살을 피우려는 방장의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 병실 사람들은 저녁 식사 때만 되면 입을 가리고 큭큭큭 웃어야만 했다.나중에 내 아내가 왔을 때, 그 모습을 조심스럽게 가리키면서 나도 저렇게 대접 받고 싶다고 말했다가 “다리 다친 것도 바보 같아서 화가 나 죽겠는데, 저러 대접을 받고 싶다고?”하는 핀잔을 들으면서 꼬집히기만 했다. 꼬집힌 게 수술 부위보다 더 아파서 눈물의 병원밥을 먹어야만 했다. 구박 받고, 맞고 사는 나, 환자 맞아?고병수 @DOGURRI (트위터) bj97100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