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으로 프레임이 옮겨 간 G20 정상회의 G20 서울 정상회의에 앞서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경주에서는 G20 재무장관, 차관, 중앙은행 총재, 부총재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사실상 서울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를 최종적으로 사전 조율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애초 G20 정상회의를 설치한 근본적인 목적은 금융시스템에 대한 규제 강화에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의 모순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것을 인식한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은 이른바 ‘Money working Economy’. 돈이 돈을 버는 경제구조를 낳았다. 이런 시스템은 금융의 겸업화, 대형화를 낳았을 뿐이고 여기에 바로 위기의 뇌관이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그러나 G20 재무장관 회의의 결과를 보건대, 금산 분리, 은행-비은행 분리(겸업 금지), 금융거래세와 은행세 신설, 금융소비자 보호 등과 같이 금융 방임주의를 끝내고자 제출되었던 수많은 정책들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국면이다. 대신에 G20 의제가 이른바 ‘환율전쟁’으로 옮겨가고 있는 듯하다. 환율문제는 기본적으로 기축통화인 달러체제의 구조적 불균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만성적인 무역 불균형과 이를 만회하기 위한 자본투자, 실물 경제의 자연스런 귀결이어야 할 달러 통화 약세를 인위적으로 막아왔던 국가들 사이의 정치경제적 결탁 등.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잉태한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에는 이견이 존재할 수 없다.결국 G20 재무장관 회의는 주요 강대국들 사이의 일정한 타협으로 정리되고 있다. 미국과 EU은 IMF 내에서 거부권을 유지하면서 일정한 지분을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 넘겨주고, 개발도상국들은 지분 확대라는 실리를 챙기면서 무역흑자 축소라는 불확실한 약속을 넘겨주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정리하면, 주요 국가들 사이에 각자의 기득권을 지키고 실리와 명분을 상호 맞바꾸는 정치적 타협으로 정리되는 상황이다. 외국자본에 대한 신화를 깨자.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환율전쟁’을 바라볼 때의 입장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강대국들 사이의 타협을 지켜보는 것말고는 없는 것일까?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갖고 있는 지분을 개발도상국들에게 조금 더 나누어 줄 수 밖에 없게 되었으니 그 떡고물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이번 ‘환율전쟁’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지난 IMF 외환위기 이후 오랫동안 우리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외국자본에 대한 신화’를 깰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환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금융자유화와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 그리고 외국인투자유치법을 통한 특혜 유인책을 대량 동원하였다. 그 배경에는 외국자본이 국내에 들어옴으로써 외환시장의 안정을 기하고, 선진 경영기법을 전수하며 궁극적으로는 고용을 창출해 낼 것이라는 신화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자.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점유율이 대거 높아진 현 시점에서 오히려 환율의 불안정은 더욱 커졌다. 금융위기와 그 회복의 과정에서 한국경제는 세계 최고의 환율 변동폭을 자랑(!)하고 있다. 급격한 외국자본의 유출입이 오히려 경제의 불안정을 증폭시키고 헤지 능력을 보유한 재벌 대기업에만 이익을 남겨주고 있는 것이다. 일국의 노동-자본 관계 시스템을 허물어뜨리는 외투기업 외국인직접투자, FDI는 어떠한가? FDI는 투기자본이 아니라는 통념도 문제가 있지만, 백번 양보하더라도 최근 외투기업들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종 ‘기술 유출 먹튀 자본’이라는 예도 있고, 많은 외투기업들이 심각한 불법노동행위를 자행하는 예도 무수히 많다. 특히 제조업 쪽에 이미 오래 전 진출한 외투기업들이 ‘자본철수’를 무기로 갖가지 압박을 노동자들에게 가하고 있다. 외투기업은 국민경제 단위로 형성되는 노동-자본 관계 시스템에서 이질적인 존재임에 분명하다. 외투기업의 이질성은 무엇보다 국경 밖에 의사결정의 정점을 두고 있는 데에서 연유한다. 다국적 기업의 궁극적인 의사결정권은 현지의 지사에 있지 않고 본국의 본사에 있음은 분명하다.본사의 경영진은 일국 단위의 시스템 내에서 머무르지 않고 시스템의 국경을 넘어서서 이동하는 선택지를 가지고 전략적 결정을 하게 된다. 따라서 현지 지사의 경영진은 일국 경제 시스템 내에서 자율적 행위자로 등장할 수 없으며, 이 때 일국 경제 내의 집단들로부터 본사의 전략적 결정은 통제 영역 밖에 위치하게 된다.결국 각국의 정부와 노동조합들은 다국적 거대 기업의 촉수만을 대응하게 되고, 일국적 노동-자본 관계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 다국적 거대 기업의 일방적 국제전략 구사가 가능하게 된다. 외국인투자유치법 폐지를 외쳐야 할 때 외국자본을 경원시하고 국내자본을 우대하자는 뜻이 아니다. 중소자본의 경우에야 또 다른 맥락이 있겠으나, 국내 대자본은 이미 초국적화되어 있다. 요는 외국자본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장치가 필요하고 이는 일국경제의 체계를 안정화시키는 데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외투기업의 유치를 위해 한국이 제시한 각종 특혜들은 노동법의 배제와 조세 체계의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정부들이 외투기업 유치를 위해 직접 각종 혜택을 늘어 놓음에 따라 발생하는 후과도 심각해지고 있다. 외국자본은 국내법을 준수하라. 이에 앞서 정치권은 국내법의 특혜를 없애라. 상식을 외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말해 주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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