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가 실시됐다. 정부는 이 제도에 ‘든든학자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친서민’을 표방하며 ‘학자금 안심 대출’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았으나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과연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가 고액 등록금에 허리가 휘는 학부모·학생들에게 ‘든든’하게 느껴질까. 지난 7월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의 야당 교육과학기술위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의 2학기 적용 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자격기준을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당사자인 대학생들 역시 행동에 동참했다. 고금리에,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자격조건도 까다로워 ‘돈이 없어 공부 못 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던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의 애초 취지가 무색해진 현실을 각계에서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 정부는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가 도입되면 학자금 대출을 받는 학생이 많게는 11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가 1학기 대출집계를 한 결과를 보면, 전체 대출 39만5387건 중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는 10만9426건으로 28%에 그쳤다. 정부의 예상치의 10%도 안 되는 학생만이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를 신청한 것이다. 이와 같이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가 학생들에게 오히려 외면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는 대출조건이 까다롭다. 기초생활 수급권자와 소득 분위에서 1~7분위에 해당하는 가정의 35세 이하 대학생이어야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다, 전 학기 성적이 평균 B학점 이상, 12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 충족되는 재학생 대출자는 27만여 명 가운데 6만6123명(24.1%)에 불과하다. 둘째,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는 5.7%의 고금리를 적용한다. 금융기관의 자금조달 비용을 모두 학생들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자금 대출금리는 정부의 주요 정책금리가 3~4%인데 비해 턱없이 높다. 가령, 1학기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와 같은 시기에 대출 실시를 알린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근로자 대학생 학자금 금리는 1~3%였다. 이는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가장 높다. 호주는 무이자이고 영국은 물가상승률만 반영하는 제로금리로 운영한다. 평균 대학등록금이 OECD 회원국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데다 정부의 대학 지원도 최하위인 우리나라에서 금리는 최상위로 적용하니, 학생들의 실질적인 등록금 부담액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의미다. 셋째,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는 취업 후에 원금을 상환하는 제도인데, 원금을 상환할 때는 복리가 붙는다. 복리란 이자에 이자가 붙는 제도다. 즉, 갚아야 할 상환금이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예를 보자. 한 학기 등록금이 400만원인 학생이 4년간 학자금을 대출받을 경우 갚아야 할 원금은 3200만원이 된다. 이 학생이 입학 시점부터 8년 만에 취업해 초임 연봉이 1900만원이라면 대출자는 25년간 9705만원을 갚아야 한다. 초봉이 4000만원이라면 8년간 5168만원만 상환하면 된다. 갚은 금액을 대출받아도 소득이 낮을수록 빚을 갚아야 하는 기간과 대출금에 대한 부담이 현저히 높아진다. 기존 제도에서 보장했던 차상위 계층에 대한 무상지원과 소득분위에 따른 이자지원도 폐지한 마당에 저소득층에게는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가 더욱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학생의 등록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실시된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 그러나 이 제도는 재학기간 중에는 대출 상환의 압력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히려 ‘등록금 인상’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 실시 이후 상당수 사립대들이 경제위기를 이유로 동결했던 등록금을 슬금슬금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등록금 상한제’가 통과됐지만 이 역시 일정정도의 등록금 인상을 제도적으로 눈감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가 진정 ‘돈 없어 공부 못 하는 학생’들에게 ‘든든’한 제도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우선 등록금 대출조건을 완화하고 금리를 낮춰 발등에 붙은 불을 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등록금을 ‘꿔주는’ 것만이 아니라 ‘깎아주는’ 방법을 찾아 산불예방을 우선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 이 글은 부산외대 신문(2010.09.13)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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