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그 아름다운 항쟁이 막을 내린지 옹근 2년을 맞았다. 2008년 오월에 불붙은 촛불은 여울여울 타올라 8월말까지 대한민국 곳곳에 불을 밝혔다. 수백만 명이 100일 넘도록 거리로 나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불렀던 그 나날의 즐거움은, 무람없이 ‘촛불 혁명’으로 불리던 그 나날의 감동은 어느새 빛바랜 추억처럼 다가온다.8월을 고비로 촛불이 시나브로 꺼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터다. 더러는 패배주의에 잠겨 ‘냄비근성’까지 들먹였다. 지금도 틈날 때마다 촛불을 마녀 사냥하는 수구언론의 모습은 또 어떤가.촛불이 시나브로 꺼진 까닭당시 나는 꺼져가는 촛불을 보며 블로그를 열었다. 지금 이 글의 위를 보면 우리 모두가 들었던 촛불이 보일 터다. 첫 글 “촛불혁명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2008년 9월)를 블로그에 올리며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지금은 절망을 노래할 때가 아니다. 국민 대다수인 민중의 힘은 또렷하게 드러났다. 2008년 5·6·7·8월을 달군 촛불의 강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콧잔등이 시큰한 감동으로 보여주었다. 다만 일사불란한 국가권력 기구에 더해 대규모 언론 조직망을 지닌 저들 앞에 아무런 조직 없는 사람들이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 시간이 지금 왔을 뿐이다. …절망을 토로하기보다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 새로운 조직을 구상할 때다. 기존의 정당구조와 시민운동-노동운동을 넘어선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옳다.”세월은 속절없이 흘렀다. 이명박 정권은 그 뒤에도 미디어법을 개악하고 남북관계를 파탄시켰다. 부익부빈익빈은 무장 커져가고 있다2010년 9월1일 새벽2시. ‘열혈 촛불’들은 서울 청계광장 뒤편의 술집에서 밤을 새며 모였다. 지난 2년 동안 이 정권의 탄압에 맞서 쉼 없이 촛불을 들었던 민주시민들이다. 강인한 얼굴의 한 촛불시민이 내게 들려준 ‘촛불의 정의’는 지금까지 가슴 시리다. 그는 촛불의 고갱이가 무엇인가에 대해 간명하게 풀이했다.“촛불의 정신은 희생입니다.”그랬다. 말 그대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걸어온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그들은 기존의 시민운동-노동운동 사람들과 더불어 새로운 일을 ‘착수’했다. 2010년 8월31일 촛불시민과 150여개 시민사회운동 단체에서 활동해왔던 사람들 2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연 ‘진보대통합 시민회의’ 발기인대회가 그것이다.촛불의 새로운 길 ‘진보대통합’공식명칭은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줄임말:시민회의http://cafe.daum.net/unijinbo). 2년 전 촛불이 꺼져가던 바로 그곳에서 다시 ‘촛불’을 든 시민회의는 한국정치를 바꾸려는 ‘시민 정치운동’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물론, 시민회의가 모든 촛불을 망라했다고 과장할 뜻은 전혀 없다. ‘진보대통합’을 바라는 모든 사람을 아울렀다고 장담할 뜻도 없다. 촛불의 정신을 온새미로 살렸다고 자부할 뜻은 더욱 없다.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할 때를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부족한 게 많아도, 아쉬운 대목이 보여도 그 상태 그대로 슬기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명박 정권이 ‘정권재창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80%의 국민이 지금 이 순간도 절망과 체념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진보대통합’은 썩고 구린 정치판을 바꾸려는 민주시민의 일차적 과제다. 비록 신문과 방송의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조명’보다 더 귀한 빛은 우리 가슴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 아닐까. 촛불, 저 아름다운 항쟁의 막을 새로 올릴 때다.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