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 년간 한국사회는 그 이전 30년간의 압축성장에 비견될 만큼의 급속한 양극화를 경험했다. 그 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빈곤층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같은 전통적 개념을 넘어 ‘워킹푸어’, 즉 ‘일하는 빈곤층’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양극화와 불안정노동, 저임금노동에 갇혀 빈곤을 탈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이번에는 워킹푸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직 이렇다 할만한 국내 저작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일본의 과거는 이미 거스르기 힘든 한국의 현실이다 <워킹푸어 – 빈곤의 덫, 열심히 일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시대>가도쿠라 다카시지음 | 상상예찬 | 2008-02-28 <워킹푸어 – 왜 일할수록 가난해지는가>NHK ‘워킹푸어’ 촬영팀 지음 | 열음사 | 2010-04-05 한때 누구도 넘보기 힘든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이었지만 90년대 이후 끝모를 장기불황을 거치는 사이 빈곤의 골도 그만큼 깊어져 갔다. 1억 중산층을 자랑하던 일본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워킹푸어>라는 같은 제목을 가진 이 두 권의 책들은 우리보다 조금 앞서 ‘일하는 빈곤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을 겪으며 그 심각성을 깨달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출간된 것들이다. 굳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주제를 다룬 두 권의 책 모두를 소개하는 이유는 각각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씌어져 모두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BRICs경제연구소 대표인 가도쿠라 다카시가 쓴 <워킹푸어 – 열심히 일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시대>는 전문 연구자의 시각에서 일본 내 워킹푸어라는 사회 문제를 폭넓게 조망한 책이다. ‘일하는 빈곤층’이 나타나게 된 원인을 중장년층의 대규모 정리해고, 종신고용의 붕괴와 비정규직의 확산, 청년층 일자리의 감소 등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180여 쪽에 불과하지만 ‘워킹푸어’ 분야의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현재까지는 말이다.두 번째 책 <워킹푸어 – 왜 일할수록 가난해지는가>는 일본 NHK방송국이 두 차례에 걸쳐 제작한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일본 사회 전체를 조망하기보다는 다큐멘터리 카메라가 초점을 맞췄을 ‘일하는 빈곤층’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노숙자 신세가 된 청년들, 생계와 양육까지를 짊어진 여성들, 하루하루 죽음을 떠올리는 노인들, 꿈 꿀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절망적인 지방과 중소기업의 상황 등 경제대국의 짙은 그늘을 고스란히 책으로 옮겼다. 엄마와 아이가 유일하게 함께 보낼 수 있는 하루 3시간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에서는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감히 오늘 한국의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워킹푸어의 최종도달점, “가난을 엄벌하다” <가난을 엄벌하다>로익 바캉지음 | 시사IN북 | 2010-05-20 “경제 규제 완화와 형벌 규제 강화는 한 쌍을 이루고 있다.”이것이 저자인 로익 바캉이 1980년대 이래 20여 년간 신자유주의와 빈곤의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든 끝에 얻은 결론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빈곤의 문제를 아주 독특한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우리보다 앞서 불안정노동의 확대와 사회양극화, 여기에 전통적인 사회복지의 축소를 경험했던 유럽과 미국의 사례는 우리의 미래가 일본보다 훨씬 더 암울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어쩌면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바로 이 책 <가난을 엄벌하다>에서 말하고 있는 “빈곤을 처벌”하는 현실일지 모른다. ‘빈곤을 처벌한다’는 것은 상시적인 실업과 저임금,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을 잠재적 범죄집단으로 규정하고 극소수의 부자들의 안전과 부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해 이들을 철저히 격리ㆍ엄벌함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하는 행태를 가리킨다. 책에서 잘 설명하듯이 “톨레랑스 제로” 정책은 미국의 뉴욕에서 출발해 이미 유럽, 중남미 등 전 세계에서 시행되고 있다.그렇다면 이런 불편한 현실이 한국에서는 먼 이야기일까? 이미 한국의 불안정노동 증가와 사회양극화는 유럽이나 미국의 수준을 능가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복지제도조차 미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법치국가’, ‘불법에 대한 엄정 대처’ 따위의 말을 들먹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에 대해서는 물론, 심지어 용산참사 농성자들에게까지 엄벌을 내리는 현 정부와 체제를 보고 있으면 이미 우리도 빈곤을 처벌하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밖에 없다.참고로 이 책은 1999년 프랑스에서 첫 출간된 이후 무려 19개 언어로 번역ㆍ출간되었다.* 윤찬영 조성주 연구원이 함께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