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철폐’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이 명제는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 노동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비정규직은 평등한 인간을 차별함으로써 착취를 용이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노동계와 진보정치가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바로 이 명제는 이제 ‘가치의 차원’으로 격상되어 있다. 하지만 가치의 의의는 있을지언정 ‘비정규직 철폐’라는 노동정치의 구호는 현재 정책의 차원에서는 파괴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IMF 환란 이후 이슈로 본격 등장한 ‘비정규직 문제’는 애초에는 정책의 차원에 있었던 셈이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 유연화’를 위해 고용형태를 다양화시키는 법적ㆍ제도적 장치 마련에 줄곧 몰두해 왔고, 노동은 각종 노동법 개정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대립전선을 구축해 왔던 것이다. 부연하자면, 그동안 비정규직 의제는 노동에게 있어 법률 싸움에서만 성과를 거두었을 뿐 그것을 둘러 싼 보다 거시적인 정치경제 구조의 해체에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본다. 더구나 ‘노동 유연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거의 완성 단계에 들어간 현 시점에서는 기존의 투쟁 성과를 또다시 재현시키기 어려운 상황에 돌입해 있다.비정규직 의제를 사회쟁점화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후 제 세력간의 협상 중에 이 의제는 ‘고용형태의 문제’로 자꾸만 축소되고 ‘차별이라는 핵심적 문제’로 확대되지 못했다. 예컨대, 그 용어 뜻 그대로 ‘전형적이지 않은’ 모든 고용형태를 어찌할 것인가로 환원되어 버린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미 가치의 차원에 들어선 ‘비정규직 철폐’라는 목표를 정책의 차원을 논해야 하는 자리에까지 언제나 직접 연계시키는 전략이 현재도 구사되고 있다. 이럴 경우 노동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의 범위는 극도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모 아니면 도’의 전략인 것이다. 물론 이런 전략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신자유주의 극복’의 시대과제로서 여전히 유효하며, 둘째는 고용에 있어 국가의 의무를 선명히 부각시키는, 말하자면 재정 투입을 요구하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혼동하지 말자. 신자유주의와 국가 재정 문제는 ‘비정규직 철폐’ 의제의 하위 범주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역은 될 수 있을지언정.‘소득 보장’과 연계된 전략이 개발되어야 한다(모든 고용형태를) 정규직화하자는 주장은 그 주창자의 진정성과는 달리 ‘산업노동자의 정규 임노동 관계’라는 상상력을 전제하고 있다. 산업과 노동 양식이 다양화된 만큼 고용관계 또한 다양화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예컨대, 특수고용노동자와 가사노동자 등 법률적으로 자영업자인 노동자들을 상상해 보자. 이들이야말로 ‘불안정노동’의 대표집단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정규직화’라는 정책 프로그램이 시행될 때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그렇다면 노동전략은 어떻게 접근해서 만들어야 할 것인가? 먼저,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세밀함을 상실하고 있음을 성찰하고 ‘불안정노동’이라는 개념을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불안정노동은 고용형태 뿐만 아니라 보다 다양한 의제들을 포괄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 금융화라 할 때, 모든 노동이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인 (금융소득 대비) 노동소득의 향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노동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 프로그램들은 임노동관계는 물론이고 보다 넓은 범주들을 포괄하게 된다. 지면의 한계로 자세한 설명을 할 수는 없으나 1) 노동(노사)관계 2) 일자리창출 3) 사회복지체제 4) 경제안정화의 네 가지가 포괄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최소한 이 네 가지가 ‘하나의 묶음’으로 제시되고 이 묶음은 ‘노동소득 향상’이라는 목표 달성에 복무한다는 점을 명확히 할 때 비로소 ‘고용정책’이라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현 정부는 ‘성장에 의한 일자리창출’을 고용정책이라고 보는 협소한 관점에 갇혀 있다. 시장자율을 맹신하는 이데올로그들의 당연한 논리적 귀결에 맞서 위 네 가지를 포괄하는 정책이 아니라면, ‘고용정책’이라 부를 수 없다는 점으로 분명한 대립각을 세워보는 것이 어떻겠는가?이상동 sdlee@saesayon.org*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