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과 대기업. 난형난제다. 출범부터 그랬다. 그런데 싸운단다. 요즘 신문과 방송을 보면 둘 사이에 큰 갈등이 불거져 보인다. 가령 오늘(2010년 8월2일) 아침 <동아일보> 사설을 보자. “기업을 하인 취급하는 관료들 국익 해친다” 제하의 사설은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대기업 때리기’ 성격의 발언을 쏟아내면서 실적 좋은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사설은 이어 “이명박 정부가 서민과 중소기업의 대척점에 대기업을 두어 정치적 이득을 보려 한 좌파정권의 잘못된 행태를 닮아간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며 색깔공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관료들이 대기업을 하인 취급한다? <동아일보>만이 아니다. 같은 날 <조선일보>도 외부기고문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이념적 정체성”을 물었다. 심지어 “MB가 갑자기 ‘중도 실용’, ‘친서민’을 외치는 것을 보고 적어도 표면적으로 이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구별하기가 쉽지 않게 되어 버렸다”고 느낀단다. 삼성과 혈연관계인 <중앙일보>는 일찌감치 “정부와 재계, 한판 붙겠다는 건가” 제하의 사설(7월30일)을 내보냈다. 세 신문의 틀을 벗어나 찬찬히 짚어볼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대기업과 싸운 걸까? 아니다. 일방적으로 망신당했다고 보는 게 옳다. 이 대통령은 재보선을 앞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산업정책을 짜라”고 지시한 게 사실상 전부다. 대통령으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다. 더구나 측근 이재오의 정치운명이 걸린 선거를 앞두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대통령의 발언을 전경련 회장 조석래가 정면으로 받아쳤다. 조석래는 “정부와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훈계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관을 굳건히 하는 데 힘쓰라”고 덧붙였다. 네 할 일이나 잘하라는 말투다. 그의 발언이 텔레비전 뉴스로 보도되면서 전경련은 “(조석래의 개회사 원고가)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물론, 확대해석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게 ‘해명’이라고 내놓은 걸까? 대통령을 두 번 우롱하는 작태다. 대기업에 망신당하고 우롱당한 ‘친기업대통령’ 전경련 회장의 거침없는 발언은 평소 대기업 회장들이 정치인 이명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다. 기실 ‘회장에게 총애 받던 사장’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의 관료들이 “기업을 하인 취급”한다고 언구럭 부리는 언론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오해 없기 바란다. 대기업 회장들로부터 망신당한 이명박을 동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대기업 회장들의 오만방자함을 새삼 비판할 생각도 없다. 다만, 저들이 저토록 무례를 저지른 데에는 다름 아닌 대통령 이명박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이다. 대기업 회장들에게 ‘핫라인’ 직통전화를 연결해놓겠다며 눈웃음 짓던 이명박을 저들이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대통령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과연 언제쯤일까. 저 오만한 자들과 제대로 한 판 붙을 철학과 정책능력을 갖춘 정치인이 청와대에 들어갈 날은. 손석춘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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