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어느새 잊혀가고 있다. 그래서다. 7월8일 조계사에서 4000여 명의 조계종 스님들이 문수 스님을 추모하고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한다는 소식이 반갑다.수행 중인 한 스님이 스스로 몸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려 했음에도 대다수 사람에게 시나브로 잊힌 이유는 분명하다. 공론장이 막혀있기 때문이다. 가령 2010년 5월31일, 문수 스님이 정치권력을 질타하며 소신공양을 결행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들은 소신공양을 아예 모르쇠 했다. 가령 <조선일보>는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소신공양 사실을 보도할 때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불리하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소신공양은 보도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소신’ 탓일까.스님의 소신공양 잊혀가는 이유기실 문수 스님이 낙동강 방죽에서 소신공양을 하기까지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의 책임도 크다. 스님이 수행에 정진해온 정갈한 방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문뭉치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스님이 세속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문이었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4대강 삽질’의 문제점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을 터다. 어쩌다 있더라도 ‘구색 갖추기’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가 아닐까. 스님이 소신공양으로 세인들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결심한 까닭은.하지만 스님이 구독했던 바로 그 신문들은 정작 스님의 소신공양조차 외면했다. 그 뿐이 아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에 충격을 받은 수경 스님이 조계종 승적까지 반납한 사실도 무람없이 비틀어 보도했다. 예컨대 <중앙일보>는 수경 스님의 결단을 다룬 기사를 “환경·NGO 운동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었다/ 초심 돌아가 진솔하게 살 것”이라는 3줄 제목으로 돋보이게 편집했다. 사전 정보가 없는 독자들에겐 마치 수경 스님이 그동안 자신이 적극 참여해온 환경운동을 후회하며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조선-동아-중앙일보 노골적 왜곡하지만 수경 스님의 진실은 우리가 두루 알다시피 명확하다. 수경 스님은 문수 스님 추모제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강의 숨통을 자르고 4대강 전체를 인공 댐으로 만드는 일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승적을 반납한 이유도 조계종단이 문수 스님 추모사업과 ‘4대강 죽이기’ 저지에 더 적극 나서기를 압박하려는 의미가 크다. 결국 <중앙일보> 보도는 수경 스님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편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 모습은 문수 스님의 뜻을 4대강으로만 국한하려는 우리 안에서도 묻어난다. 물론, 당면과제가 4대강 살리기이고 하나부터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게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4대강 살리기운동과 더불어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는 절실한 과제가 있다.소신공양을 앞 둔 스님은 “4대강 사업 즉각 중지·폐기”만 강조한 게 아니다. “부정부패 척결”과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호소했다. 유서 맨 마지막에 쓴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요구는 양극화가 무장 커져가는 이 땅에 4대강 못지않게 절박하고 절실한 민생 과제다.4대강 살리기와 병행해야 할 민생 과제그럼에도 왜 대다수 사람이 소신공양의 의미를 4대강으로만 좁히는 걸까? 혹 유서의 진실을 마주하기 불편해서는 아닐까.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문수 스님의 호소를 이명박 정권이 모르쇠 할 때, 살아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옳은가.문수 스님의 소신공양과 유서에 명토박은 간절한 염원을 우리가 잊어간다면, 그것은 진실을 직시하는 불편함을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어서가 아닐까. 우리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나는 지금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무엇보다 먼저 나부터 고백하련다. 명색이 진보 싱크탱크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그 물음 앞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그래서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앞에 더없이 불편하다. 아니, 부끄럽다.손석춘 2020gil@hanmail.net*편집자/ 봉은사가 발행하는 월간<판전> 기고문을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