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의료개혁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칼럼은 이은경 연구원 보고서 <미국의 의료개혁과 거꾸로 가는 한국 의료>와 중복되어 취소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주>“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우리 아이가 콧물이 떨어지질 않네요. 이 병원, 저 병원 다녀 봐도 낫지를 않아요, 글쎄.”젊은 엄마가 데리고 온 아이는 2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아파 보이는 표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콧물을 심하게 흘리는 정도도 아니었고, 자기가 왜 왔는지도 모른 채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으면 내 책상 위의 기구들을 만지작거린다. 이경(코 안을 들여다보는 기구)으로 코 안을 들여다보니 콧물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다.“그렇게 심해 보이지는 않네요. 잠 잘 때 코가 답답해서 못 자나요?”“잠은 잘 자요. 하지만 옆에서 보면 콧물을 계속 흘리는 모습에 제가 답답해요.”마음 같아서는 ‘이 정도는 괜찮으니 그냥 지켜보세요’라고 말하면서 돌려보내고 싶지만 부모들을 설득하는데 지쳐서 이제는 가벼운 콧물감기약 처방전이라도 쥐어줘야 서로가 편하다. 이 아이 엄마에게는 요즘 날씨가 안 좋아서 조금 오래 끄는 것이니 안심하라고 말하고는 시럽을 포함한 감기약을 처방해서 보냈다.병원을 찾아야 하는 가이드라인병원은 대체 어떤 병으로, 또 얼마나 아파야 찾아가는 것이 좋을까? 물론 이것을 칼로 무 베듯 정확히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아프면 병원을 찾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무슨 기준이 있겠는가?하지만 환자들을 보면서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한번 잡아 보았다. 암이나 중병이 의심될 때는 당연히 병원을 찾아야 하겠지만, 지금 말하는 것은 가벼운 질환에 한해서다. 예를 들어 감기의 경우 기침 약간에 콧물 약간, 여기에 미열이 있는 경우도 병원을 안 찾아도 된다. 지켜보거나 따뜻하게 쉬게 하면서 자연히 낫기를 기다려도 된다는 뜻이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7일, 안 먹으면 일주일 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물 잘 마시면서 쉬다보면 낫는 게 감기다.물론 감기라고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 그 합병증으로 폐렴이나 코동굴염(부비동염, 축농증), 중이염 등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아주 일부에 한해서고, 대부분은 자연히 낫는다. 폐렴의 경우 열이 계속되고 굵은 기침이 심해지게 되는데 이럴 때는 병원에 데리고 와서 진찰도 받고 약을 먹으면 요즘 같아서는 입원 안 하고도 잘 낫는다. 코동굴염은 웬만한 아이들이 많이 갖고 있는 질환인데 꼭 치료할 필요는 없다. 약을 쓰게 되면 한 달 가까이 먹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중이염도 치료를 하면 잘 낫고, 자연히 낫기도 한다.이렇게 얘기하다보니 어떨 때 병원을 찾아야 하는지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요약하면 웬만한 피부염이나 상처 정도는 집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관절염도 자꾸 약을 먹기 보다는 관절 운동 등을 익혀서 스스로 통증이나 관절 문제를 다소 완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가장 많은 감기의 경우에도 가벼운 증상들은 잘 쉬기, 물 마시기, 따뜻하게 하기 정도로 시간이 좀 걸리지만 좋아진다. 증상이 점점 심해지거나 안 좋아 보일 때 정도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동네병원을 찾는 환자들 분포동네병원에서 진료를 하다보면 정말 이 환자는 안 와도 될 것 같은데 오는 사람도 있고, 한 번 왔다간 걸로 충분한데 매일 오는 사람도 있다. 오는 환자마다 진료비를 챙기고,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수가에 맞게 다시 청구를 해서 수입을 올리는 개인병원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대승적으로 보면 정말 아니다 싶다. 개인병원도 그렇지만 대형병원 외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래서 날을 잡아서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을 일일이 기록한 후 분석을 해봤다.* 2010년 4월 아침 9시~저녁 8시 아침 9시부터 진료를 시작해서 점심과 저녁 식사시간 2시간을 빼면 순수하게 환자를 본 시간은 9시간이다. 그 동안 전화 상담도 2건 있었고, 진료의뢰서나 소견서를 써준 환자도 몇 명 있었지만 실제 진료를 본 환자는 109명이고, 가장 많이 외래를 찾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감기 환자였다.쉽게 감기라고 하면 별 문제 아니지만 사실 감기로 분류되는 호흡기 질환도 따지고 들어가면 복잡해서 정확하게 분류하기가 쉽지는 않다. 여기서는 단순하게 열과 몸살, 목 아픔, 기침, 코증상과 같은 것을 호소하는 급성호흡기질환으로 국한을 하고, 편도염이나 인두염, 알러지비염까지도 포함을 했다.그 결과 감기로 분류되는 환자 수가 그 날 하루 진료 건수의 64퍼센트(70명/109명)에 달했다. 물론 동네병원마다 다르고, 편도염이 심한 경우, 알러지비염, 독감의심 환자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감기 증상으로 온 환자의 비율을 수치로 보여준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문제는 외래환자들 중에 자가 치료나 간단한 의학적 기초지식만 있어도 해결할 수 있는 환자들이 많았다는 데 있다. 굳이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되는 환자들 중에는 피부질환이나 가벼운 찰과상 환자도 있었지만 역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감기환자들이었다. 그래서 감기 증상으로 온 환자들을 다시 그 증상의 심각성에 따라 분류해봤다. 단순 콧물, 약간 목 아픔, 약간의 기침, 약간의 몸살 등 굳이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경미한 증상을 X표로, 그보다는 조금 심한 경우를 △표로, 그리고 만성 기침을 비롯해 증상이 심해 반드시 적절한 치료를 요하는 경우를 O표로 나눴다. 결과를 보니 O표가 39명, △표 49명, X표 21명이었다.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 중 21명은 몸조리를 잘 하면 자연히 좋아질 수 있는 증상들을 가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증상들 중 일부는 더 심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웬만하면 잘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약한 감기로 표시된 X와 약을 써도 되고, 굳이 안 써도 될 만한 사람들인 △표를 포함해서 가벼운 통증이나 찰과상, 피부질환으로 내원한 환자들까지 합쳐보면 그 날 외래를 찾은 환자들 109명 중 대략 40명 정도가 엄밀히 말해 자가 치료와 휴식 정도로 나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할 일 없는 사람처럼 왜 이런 분류를 했냐고 비웃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외래진료실을 찾는 사람들을 실제로 구분해보고 싶었다. 불필요하게 병원을 찾는 정도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병원 이용은 병원 진료비, 약값도 문제지만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어지고, 항생제를 비롯한 여러 약물에 노출될 여지가 많아지게 되어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를 줄이는 것이 1차 의료에 있어 중요한 과제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자세히 다뤄야 하므로 다음 시간에 계속하도록 하겠다.고병수 bj97100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