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증세’는 자본주의 원칙 세우는 일
지금은 다소 기억이 희미해졌을지 모르겠다. 지금부터 2년이 채 안 되는 2011년 8월의 일이다. 사상 처음으로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유럽 국가채무위기가 재점화되면서 세계경제가 다시 추락하려는 바로 그 시점이었다. 500억달러의 자산을 가진 미국의 유명 투자자 워렌 버핏이 세금을 더 내게 해 달라고 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이른바 ‘버핏세’라고 하는 증세 논쟁을 촉발시키면서 그때까지의 단선적인 재정긴축 논쟁 틀을 깨 버렸다. 버핏은 한 해 100만달러 이상을 버는 부유층에 대해 즉각 세금을 올리고, 1천만달러 이상 소득을 올리는 사람에게는 추가적으로 세금을 인상하자고 제안했다. 재정긴축과 신용등급 강등으로 궁지에 몰린 오바마 대통령은 곧바로 환영했다. 미국 시민의 95%가 지지했다. 그렇게 부자가 제안한 부자증세는 순식간에 뜨거운 공감대를 넓혀 갔다. 이듬해인 2012년 5월 부자증세를 공약으로 내건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됐다. 같은해 12월20일, [...]
박근혜 당선인과 사회적 경제
‘착한 경제학’의 독자들이 잘 알다시피 사회적 경제는 어느날 갑자기 ‘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흔쾌한 협동에 필수적인 신뢰란 오랫동안 서서히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 ‘새마을운동’처럼, 또 참여정부의 ‘국가균형사업’처럼 중앙에서 하향식으로 만들려다가는 그나마 남아 있는 지역의 역량만 허공에 날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없는 걸까? 문재인 전 후보는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 경제위원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만일 박근혜 당선인이 48%의 문 전 후보 지지자들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고 자신의 공약과 아무런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 공약은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지난해 8월 말 주간경향 990호에 나는 ‘SEQ’(서울-에밀리아로마냐-퀘벡)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에는 서울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이제 중앙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2004년 캐나다의 폴 마틴 총리는 “사회경제를 캐나다의 사회정책 수단의 핵심 부분으로 삼겠다. 기업가가 강한 경제에 필수적이듯 사회기업가는 강한 공동체에 필수적”이라고 선언한 [...]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나가자
18대 대선 결과 보수 세력의 10년 집권이 굳어지자, 역사의 퇴행이 심화되었다고 개탄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노동권 회복이라고 하는 선거 공약 틀이 신자유주의적인 규제완화와 감세, 민영화, 금융화를 대체했다는 것 또한 중대한 역사적 변화다. 진보는 다수 국민과 호흡하면서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도 이 의제들을 진보적 내용으로 확장시켜 나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이미 상식은 바뀌고 있다.특히 보편 복지와 경제민주화, 노동권 회복의 구체적 내용들을 국민과 공유하면서 ‘과거의 당연한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적 상식들 대신에 진보적 전망과 정책을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국민 생활의 ‘당연한 상식’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은 이제 보편 복지의 상징으로서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무상급식이 상식이 되면서 중등교육까지 무상 의무교육 실시, 대학 등록금 절반으로 인하 등 다양한 교육복지가 전파되고 [...]
‘100%의 대통령’이 되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해서 48% 중 얼마쯤이 ‘멘붕’에 빠졌다 해도 첫사랑이 깨졌을 때보다 더할까? 이런저런 발버둥이 치유의 시간을 얼마나 줄였는지도 의문이지만 결국 영원할 것 같던 시간도 지나지 않았던가? 다음으로 ‘먼저 패배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지극히 옳다 해도, 아직 관련 통계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민주진보진영’의 재편은 족히 1년은 걸릴 텐데 ‘정확한’ 진단을 지금 내놓아야 할 이유도 별로 없어 보인다.그렇다면 48%의 ‘힐링’에 당장 필요한 일은 뭘까? 어쩌면 박근혜 당선인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이 아닐까? 예컨대 문재인 후보의 공약 중 쓸 만하고, 동시에 본인에 대한 지지를 넓히는 데도 방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인수위에서 확정하면 어떨까? 당선인도 ‘맞춤형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우지 않았던가?당장 현재의 ‘장기침체’를 벗어나려면 일단 소비가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서민층의 소득이 증가해야 하고 동시에 [...]
신자유주의와 독점 대기업, 그리고 경제민주화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후 우리 사회의 미래 전망에서 가장 애매한 대목은 '경제민주화'의 향방이다. 18대 대선에서 시대정신으로 부상했고 박근혜 당선자도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제시한 것이 경제민주화였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자 자신은 물론이고 소속된 정당의 성격이 경제민주화보다는 신자유주의를 뿌리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진정성 논쟁이 나왔고 집권 후에 과연 약속을 지킬 것인지 의문도 많았다. 일단 첫 시작은 희망적이지 못하다. 가장 기초적인 경제민주화의 관문이라 할 대형 할인마트 규제를 크게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법안처리를 미뤄 둔 유통산업발전법에서 저녁 10시부터 영업시간을 규제하자는 안도, 월 3회 이상 휴무를 규정하자는 안도 모두 새누리당에 의해 거부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당선자의 자발적 의지로 실현될 경제민주화는 거의 없을 것임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그렇게 간단히 집권당에 의해 박물관 속에 다시 봉인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경제민주화는 세계적 차원에서 [...]
새 시대, 새 문을 열며
나이가 들다 보니 해가 바뀔 때 뭔가 희망의 메시지를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유장한 시간의 흐름을 툭툭 끊는 것도 마뜩찮은데 그 단절에 의미까지 부여해야 하다니. 요 몇 해동안의 곤혹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건 지난 열흘, 8개월간 굶은 술을 한꺼번에 마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어이하랴. 세월이 먹여 준 나이를 거부할 방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패배했다. 새사연이 지난 2년간 줄기차게 쓴 것처럼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현재진행형이고 앙시앵레짐의 종말을 고했지만 새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하긴 구체제란 그리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한 후, 그 원인과 해법을 제시했다고 인정하는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1936년에나 출간되었고 역사적 흐름을 추적한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1944년에나 세상에 나왔다. 현실에서도 루즈벨트가 '뉴딜'을 내 건 시점은 1933년이었으니 이제 4년이 막 지난 시점의 한국에서 극적인 전기가 열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