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는 정말 회복되고 있는 것인가
“단순히 ‘장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재 상황을 진단해 주는 적절한 안내자가 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폭풍이 지나가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 바다는 다시 평온해진다는 말만 들려준다면, 경제학자들은 너무나 안이하고 쓸모없는 말만 하는 것이다.”경제학자 케인스가 1923년 출간된 화폐개혁론에서 썼던 유명한 구절이다. 지금 유럽경제는 폭풍우가 지나갔는가. 다시 평온해질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르기는 했는가. 또는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 ‘장기적’으로 유럽 각 국가의 재정수지가 균형을 찾게 될 것이고 무역수지도 조정될 것이며 거품도 꺼지면서 다시 실물경제가 활력을 띠게 될 것인가. 아니면 케인스 말대로 그런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추가적 재정정책, 금융정책이 절박한 것인가. 그리스의 채무문제가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2009년 가을부터 계산하면 벌써 꽉 찬 4년이 지난 지금,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도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고 이제는 [...]
“쉼 있는 노동”으로 보육정책 전환해야
점심시간은 돌봄노동 종사자들에게 그야말로 ‘그림이 떡’이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영유아를 돌보는 보육교사들에게 점심시간은 업무의 연장일 뿐이다. 교사들이 따로 점심시간을 챙기는 경우는 드물며, 대다수는 아이들의 식사를 도와가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래서 적지 않은 교사들이 위장병으로 탈이 나 있다. 이는 단지 어느 한 교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휴식 없는 노동에 지쳐가는 보육교사들 일반적으로 법적으로 보장된 8시간 근무시간과 1시간 점심 휴게시간은 보육교사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보육교사들은 점심시간과 휴게시간을 따로 갖지 못한 채 보통 하루 9시간 28분을 일하며, 휴게시간은 고작 28분이다. 그렇다고 저녁시간이나 휴일에 제대로 휴식을 취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보육이나, 행사준비, 행정일 때문에 초과근무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며, 때때로 받아야 하는 보수교육이나 승급교육도 근무 외 저녁시간을 쪼개어 받는 실정이다. 한 달 1회 이상의 토요근무도 소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연월차를 쓰거나, 원하는 시기에 [...]
촛불의 진화
8월14일 서울광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2008년 100일 이상 서울광장과 그 주변을 함께 누볐던 ‘전우’, 지금은 <프레시안>의 기자가 된 이명선 아나운서의 눈물 어린 협박 때문이었다. <프레시안>이 5년 전처럼 서울광장을 인터넷 생중계하겠다는데 어찌 마다하랴.하지만 고품격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의 방송장비는 최악이었다. 카메라도 달랑 한 대인 데다 무선 마이크마저 없어서 카메라에 달린 선 짧은 마이크에 둘이 얼굴을 맞대다시피 해야 했다. 화면에 얼굴이 어떻게 비칠까 신경 쓸 만한 우리의 미인(?) 여기자는 워낙 ‘막장 방송’에 익숙해서 그런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막장 방송’의 베테랑답게 30분 넘는 방송을 무사히 마쳤다. 어스름과 함께 광장을 메우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5년 전과 뭐가 다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5년 전에는 미국을 방문한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에 여중생들이 먼저 뛰쳐나왔다. “나 이제 15살, 살고 싶어요”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2008년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폭발의 시작이었다. [...]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의 엇갈린 운명
지난 12일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된 지 20주년을 맞았다. 실명제는 본인 확인 없이 아무 가명이나 대고도 은행계좌를 개설하던 관행에 종지부를 찍은 개혁안으로서 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 취해진 조치다. 물론 가명계좌 개설은 중단됐지만 남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차명계좌는 막지 못해서 이를 보완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마침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만큼 기대를 해보겠다. 금융실명제 추진은 사실 중도에 좌절됐지만 80년대 말 노태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개혁안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당시 금융실명제와 함께 또 다른 중요한 개혁정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비록 선거로 집권했지만 군부에 뿌리를 둔 태생적 한계가 있었던 탓에, 취약한 지지 기반을 만회하고자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이라는 개혁안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노태우 정부가 먼저 개혁 입법에 성공한 것은 금융실명제가 아니라 토지공개념 관련 3법이었다. 금융실명제는 비자금 조성을 해 [...]
정부의 노동정책, 선언보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일자리 창출과 고용율 증대를 통한 노동시장 문제 해결은 박근혜 정부가 가장 중심에 두고 있는 정책 중 하나이다. 기획재정부 추경호 차관은 지난 7월 26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제1차 고용율 70% 로드맵 추진 점검회의’에서 “일자리 창출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이며, 정책기획부터 성과평가까지 모든 과정에서 고용 창출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시장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인 정책안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안을 내놓기에는 짧은 기간이었다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정책인데도 대선 기간 공약으로 제시했던 정책들은 여전히 공약 수준에 머물러 있고, 새롭게 발표하는 정책들 역시 선언적 수준이라는 점은 문제라 생각된다.정책 발표보다는 구체적인 정책 마련이 선행되어야박근혜 정부는 최근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정책으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와 듀얼 시스템을 내놓았다. 4대 보험이 제공되며 임금 수준이 높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93만개를 추가적으로 [...]
부자에겐 ‘줄푸’, 서민에겐 ‘늘세’
서울광장을 꽉 메운 인파, 또다시 촛불이 일렁거린다. 연단에 오른 민주당 의원들이 8일 발표된 ‘2013년 세법개정안’을 맹공한다. 민주당 홍종학 의원이 페이스북에 쓴 대로 “월급쟁이 434만명(전체의 28%에 해당)에게 세금폭탄을 투하한, 그야말로 오만한 박근혜 정부 아니면 불가능한 세제개편안”이라는 것이다.이번 개정안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이 정도로 세수를 확대해선 박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맞춤형 복지’를 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이다.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27조원가량이 더 필요한데 이번 세법 개정으론 고작 2조4000억원 정도 세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하지만 나는 이번 세법개정안 방향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보편복지를 하려면 언젠가는 중산층의 소득세도 늘리지 않으면 안된다. 보편복지는 이른바 ‘공유지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공급 쪽의 무임승차(남들보다 세금을 덜 내야 한다)와 수요 쪽의 무임승차(‘공짜 복지’를 되도록 많이 이용해야 한다) 유혹은 보편복지로 가는 길에 솟아오른 최대의 걸림돌이다. 이 딜레마는 “모두 내고 모두 누린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