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국 택시 블랙캡(black cab)은 자격 시험이 어렵기로 세계에서 첫 손에 꼽힌다. 런던 시내를 실핏줄처럼 잇는 2만5000개의 길은 물론 10만 개에 달하는 랜드마크도 모조리 외워야 하니 3~4년은 족히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 그래서 블랙캡 기사들은 대개가 영국에서 나고 자란 백인들이다. 그래도 자격증만 따면 평생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너도나도 이 일자리에 몰린다.

 

이들이 지난 2014년 6월 런던 시내를 가로막고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우버(Uber)’ 때문이었다. 2009년 차량 운전자(파트너)와 탑승자(라이더)를 이어주는 플랫폼을 만들어 미국에서 창립한 우버는 큰 인기를 끌며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런던을 비롯한 거의 모든 도시들에서 택시 산업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2017년 기준 런던에는 2만1000대인 블랙캡보다 우버 등록 차량이 2배쯤 더 많다. 이들이 30% 더 싼 가격에 손님을 태우다보니 블랙캡 기사들의 수입은 많게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2.

런던에서 블랙캡 기사들이 시위를 벌인 지 2년이 지난 2016년 2월, 우버에 자신의 차량을 등록한 우버 파트너들도 시위에 나섰다. 이번엔 미국 뉴욕. 이들은 롱아일랜드의 지역 사무소 앞에 모여 우버가 우버X(누구나 자신의 차량을 등록해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서비스)의 기본 운임을 8달러에서 7달러로 15% 낮추기로 한 것에 항의했다. 우버는 이들의 수익 가운데 20~25%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여기에 더해 8.875%는 주에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들은 “기술을 착취의 도구로 쓰지 말라”고 외쳤다.

 

다른 나라 파트너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영국 런던의 한 우버 파트너는 보험과 유지비 등을 빼면 한 주에 약 300파운드(44만 원)를 가져간다고 했다. 물론 수입은 일정치 않으며 그 마저도 온종일 쉬지 않고 일해야 벌 수 있다. 그는 다른 직업을 구하기 힘든 이민자다.

 

일하는 시간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한 번은 2주간 ‘영업’을 하지 않았더니 탑승 요청이 크게 줄어 수입이 반토막 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앱이 휴식을 취했다고 벌을 주었다”고 했다. 우버는 부인하지만 많은 파트너들이, 영업 시간을 줄이면 더 적은 수의 탑승객만 연결되는 ‘벌칙 알고리즘’이 작동한다고 믿는다.

 

아직 우리에겐 조금 낯선 장면들이지만 어쩌면 머지않아 현실로 닥칠지 모를 일이다.

 

여론재판에서 악마로 그려지는 택시, 그런데

 

우리나라의 모 기업이 우버X와 비슷한 사업을 시작하려 하고 있고, 이에 맞서 택시 기사들이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또 다른 기업은 벌써 이달 초부터 11인승 승합차와 탑승객을 연결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을 비롯한 택시 단체들은 서비스를 중단하라는 성명을 냈다.

 

여론은 새로운 서비스를 반기는 분위기다. 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절반 이상(56.0%)이 ‘시민 편익 증진에 도움이 된다’며 카풀 서비스 도입 을 찬성한다고 답했다. 지금껏 택시를 타면서 몇 번쯤은 겪어봤을 승차 거부를 비롯한 여러 불쾌했던 경험들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걸 보면 짐작하고도 남을 만한 결과다(오히려 56.0%라는 비율이 너무 낮아 의아할 정도다).

 

우리나라 택시 산업은 여론 재판에서 악마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여론은 이들을 응징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렇게 결정해도 되는 걸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외부 충격을 끌어들여서라도 낡은 산업 구조와 서비스를 바꿔보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외부 충격이 가져올 영향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새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우버가 적잖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데도 말이다.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일에 목소리 큰 사람들만 달려들어 멱살잡이를 하다보면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을 놓칠 수 있다. 갈등의 범위는 확대되었으나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랄까, 가만히 짚어 보면 생각보다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은 복잡한 주제다. 그러니 다른 나라들이 겪고 있는 갈등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왕 늦은 거 서두르기보다 조금 더 차분하게, 다 같이 머리를 맞대보았으면 한다.

 

우버는 정말 공유 경제인가

 

먼저 좀 골치 아픈 문제긴 하지만 우버가 정말 ‘공유 경제’가 맞는지 따져 보려 한다.

‘공유 경제(Sharing Economy)’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유하기보다 필요할 때마다 서로가 공유하는, 즉 나눠 쓰는 활동을 가리킨다. 2008년 하버드대 로런스 레식(Lawrence Lessig) 교수가 처음 쓴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구상은 어땠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의 우버는 위에 적은 공유 경제로 보기 어렵다. 우버 파트너들은 자신이 차를 쓰지 않는 시간에 다른 이에게 그것을 빌려주거나, 마침 가는 방향이 같은 누군가를 태워주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차를 몰고 시내를 돌며 플랫폼이 연결해주는 (아마도 가장 가까운) 이를 태워 목적지에 데려다주면서 돈을 벌고 있을 뿐이다. 택시 기사와 다를 바 없는 일을, 그것도 전업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우버는 이민자를 비롯해 당장 차를 살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이 할부로 차를 사거나 렌트카 업체에서 장기로 차를 빌려 파트너로 나설 수 있게 보증을 서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남는 차를 나눠 탄다면 줄어들었어야 할 거리 위 차량의 수는 오히려 몇 배로 늘었고, 지금껏 별 탈 없던 수십 수백만 명의 일자리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새롭게 일할 기회를 얻은 이들도 있지만 날이 갈수록 생각했던 것만큼 좋은 일자리가 아니란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선 더 싼 가격에 별로 다를 것 없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차들로 넘쳐나는 거리에서 사회적 갈등이 점점 깊어지는 가운데 행복해진 이들보다 불행해진 이들이 더 많아 보이는 건 착시일까. 우버는 공유 경제로부터 벌써 한참 멀어졌다.

 

차량 공유 모델이 없는 건 아니다. 가령, 미국의 투로(Turo)는 내가 차를 안 쓰는 동안 다른 사람이 빌려 탈 수 있도록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P2P 플랫폼을 제공한다. 가령, 해외로 여행을 가면서 공항에 차를 대면 마침 입국한 외국 관광객이 여행 기간 동안 빌려 탈 수 있다. 한쪽은 주차비를 아끼면서 약간의 돈을 벌 수 있고, 다른 쪽은 조금 더 싸게 차를 빌릴 수 있다(국내에선 이것도 불법이긴 하다).

 

프랑스의 휠리즈(Wheeliz)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개인 소유 승합차량을 장애인과 그의 가족들이 서로 빌려 탈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개조 차량이 프랑스에만 약 10만 대가 있다고 하니 필요할 때 나눠 쓰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두 서비스 모두 공유 경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버가 공유 경제이건 아니건 편리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버를 비롯한 이른바 ‘승차 공유’ 기업들도 소비자 편익만을 앞세우면 될 일이다. 굳이 별로 상관도 없는 ‘공유’라는 사회적 가치를 내세우는 건 정직하지 않은 태도다.

 

최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동연 부총리 겸 개획재정부장관은 한 목소리로 공유 경제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공유 경제를 활성화시키려고 우버까지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자칫 일자리 늘리려다 갈등만 늘릴 수도 있다.

 

우버가 세계 곳곳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

 

지금의 우버는 공유 경제라기보단 ‘긱 경제(gig economy)’이자 ‘프리랜서 노동’이다. ‘긱 경제’란 고용주와 노동자가 서로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고용 계약을 맺는 걸 가리킨다. 미국에서 하룻밤 공연에 올릴 재즈 연주자를 찾아 계약을 맺은 데서 비롯되었는데, IT의 발달로 플랫폼 안에서 서로 필요한 일자리와 노동자를 찾아 계약을 맺고 비용을 치르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벌써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우버도 플랫폼을 사이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프리랜서인 우버 파트너와 라이더가 계약을 맺어 일을 하고 비용을 치른다는 점에서 긱 경제이자 프리랜서 노동(플랫폼 노동)이다.

 

비슷한 모델로 배달 음식(식당)과 배달부를 연결하는 딜리버루(Deliveroo)가 있다. 딜리버루 플랫폼에 참여한 배달부들은 플랫폼이 연결해주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받아 주문한 고객에게 전달한다. 이들은 특정 음식점에 고용돼있지 않은 것은 물론, 딜리버루와도 고용 계약을 맺지 않는다.

 

영국 런던에서 일하는 어느 딜리버루 배달부는 하루 5~6시간씩 일주일에 26시간을 일하고 150파운드(약 20만 원)를 번다. 배달을 한 번 할 때마다 3.5파운드(5천 원)를 버는 셈인데 최저임금을 벌려면 하루 12시간은 일해야 한다. 보험도 없고 휴일수당도 없다. 다치더라도 치료비는커녕 유급병가도 쓸 수 없다. 그는 정규직 배달부로 일하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로 긱 경제에 뛰어들었다.

 

파트너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건 우버도 마찬가지다. 우버 파트너들을 노동자로 볼 것인지, 사업자로 볼 것인지는 여전히 뜨거운 논란거리다. 지난 5월 11일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우버 파트너를 ‘독립사업자’로 판결했는데, 이는 3년 전 시애틀 시의회가 파트너들도 노조를 결성해 우버와 임금 협상을 벌이고 병가를 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며 노동자성을 인정했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분명한 건 우버 플랫폼 참여자들이 자신이 일한 만큼의 대가나 필요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도 못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버가 플랫폼의 한쪽 끝에 자리한 플랫폼 참여자들의 노동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음에도 그 수익을 파트너들과 고르게 나누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파트너’란 그럴 듯한 이름은 허울일 뿐이다.

 

지난 몇 년 사이 파트너들이 폭발적으로 늘었음에도 우버는 파트너들이 내야 할 수수료를 계속 올려왔다. 10%대에서 시작한 수수료율은 20%를 거쳐 2016년 25%(신규 참여자)로 올랐다. 33%로 오를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다른 쪽 끝에는 라이더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이들의 편익도 점점 줄어들지 모른다. 우버가 시장을 독점한 뒤에는 말이다.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이, 플랫폼 참여자들이 땀 흘려 만들어낸 부와 권리를 모조리 독점하는 건 그것이 공유 경제든 아니든 옳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만들어질 막강한 플랫폼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법에서 허락한 대로 출퇴근 시간에만, 또는 정부가 내놓은 중재안처럼 하루 두 번만 허용하는 카풀 서비스라면 우버와 달리 공유 경제에 가깝게 작동할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업체의 설명처럼 출퇴근길에 “나 홀로 운전자의 빈 좌석을 공유해서 같은 방향을 함께 이동할 수 있도록 매칭해 주는 서비스”로 굴러가기만 한다면 말이다. 여기에 ‘경력 단절 여성’이나 ‘하루 몇 시간만 일하려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취지도 유휴 차량으로 혼잡 시간대의 모자란 수요를 채운다는 점에서 받아 들일만 하다.

 

하지만 택시 업계의 우려대로 빗장이 풀리면 우리도 어느 나라 못지않은 극심한 사회적 갈등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아마도 서비스를 도입하려는 쪽은 이쯤에서 멈추려 하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규제를 완화하라 요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모든 정부는 택시를 비롯한 운송 사업을 ‘규제’한다. 경영자와 종사자의 자격을 점검하고, 공급이 너무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조절한다. 또 요금도 함부로 올리지 못하게 관리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몇 년 전 서울시가 우버의 영업을 금지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 서울시는 “(우버를) 공유경제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우버는 2013년 구글벤처스로부터 무려 2500만 달러(280억 원)를 투자 받으며 2014년 12월에 벌써 세계 250여 개 도시로 뻗어나갔지만 그런 빠른 성장에 어울리는 책임은 아직까지도 키우지 못했다. 그래서 각국 (지방) 정부와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다.

 

서비스를 도입하려는 쪽은 마치 우리나라만 우버를 금지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덴마크 대법원은 지난 9월 13일 4명의 우버 기사에게 택시법을 위반했다며 최대 48만6500크로네(약 8500만 원)의 벌금형을 확정했다. 아직은 우버를 허용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런던시(런던교통공사)도 2017년 9월 22일 공공 안전을 이유로 5년 만에 우버의 영업면허 갱신을 거부한 적이 있다. 파트너들이 저지른 중대한 범죄 이력이나 건강 검진 기록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등 기업으로서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러다 2018년 6월부터 다시 15개월간만 한시적으로 영업을 허용했다. 지난 4월에는 그리스 의회가 규제를 강화하면서 우버X가 영업을 중단했고, 독일과 스페인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버의 영업을 금지한 뒤 아직 법적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 규제도 바뀌는 게 맞다, 이런 말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또 어차피 규제는 기업의 돈벌이를 보장하기보다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기업이 규제를 없애달라는 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요즘이 아니라도 별로 새로울 게 없는 얘기다. 그러니 4차 산업혁명의 동력이 꺾일 것이라느니 하는 민망한 논리로 어깃장을 놓기보다는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규제를 함께 만들어가려 노력하는 게 옳다. 모호한 사회적 가치나 시대의 흐름을 앞세워 작은 편익을 부풀리거나 대중의 적대감을 끌어들여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건너뛰려는 태도는 훗날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덧붙이자면, 2017년 3월 실시한 어느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4차 산업혁명으로 삶이 더 편리해 질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4차 산업혁명이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에는 60%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유는 일자리에 있었다. 응답자의 70% 이상이 ‘4차 산업혁명이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 닥칠 일자리의 지각 변동이 택시 산업 앞에서 멈춰 설 것이란 생각이야 말로 어쩌면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조금 더 차분하게 고민하고 선택해보는 건 어떨까.

 

[참고한 글]

“On London’s Streets, Black Cabs and Uber Fight for a Future”. The New York Times. 2017.7.4

“Uber drivers in New York City aren’t happy about the ride-hailing service’s latest rate cuts.”. CNN. 2016.2.1

“MBC 스페셜 ’10년후의 세계'”. MBC. 2018.4.2

“‘공유 경제’의 역풍… 우버기사도 택시기사도 눈물”. 조선일보. 2018.5.18

“[한국과 4차 산업혁명 <1-2>]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는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할 것인가”. 코리아중앙데일리. 2017.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