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섣부른 이야기일 수 있다. 관심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지 않다. 언론에서도 이를 다루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차분하게 검토되고 준비되어야 사항이기도 하다. 과연 차기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진보는 이 지점에서도 혼돈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권 주역은 시대가 선택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는 시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 명제는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자칫하면 모든 결과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주객관적 요인, 가능성과 한계, 긍정과 부정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비판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에게 시대는 늘 순응이 아닌 넘어서야할 대상이다.
편의상 김대중 정부부터 이야기를 해 보자. 김대중 정부는 두 가지 지점에서 변화와 혁신, 개혁에 대한 열망을 확산시켰다. 김대중 정부는 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에 성공하였다.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지형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평화 대 냉전 구도가 성립되면서 냉전 세력이 소수로 내몰렸다. 일련의 과정은 정치 지형의 혁신적 변화를 시대의 요구로 자리 잡도록 만들었다. 노무현은 그러한 요구를 실현할 적임자로 선택되었고 마침내 기성 정치판을 뒤엎으면서 대통령에 등극했다.
노무현 정부는 정치 개혁과 남북관계 진전 등에서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 분야에서는 만족스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시대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를 살릴 적임자를 요구했다. 진보는 그에 걸 맞는 적임자를 준비하지 못했다. 2007년 대선에서 시대는 경제 살리기 적임자로 이명박을 선택했다. 노무현을 찍은 유권자 중 40%가 이명박에게 표를 던졌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2012년 대선 역시 비슷한 기준이 작동하면서 박근혜가 선택을 받았다. 이 모두 진보 세력 입장에서는 매우 못마땅한 결과일 수 있었으나 다수 국민의 선택임은 분명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앞선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도 저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경제는 보수가 강하다는 통념이 깨지기 시작했다. 보수층 내부에서 동요와 이탈 조짐이 뚜렷해졌다. 급기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보수 정치 세력을 향한 극도의 분노와 실망이 적폐 청산을 시대의 요구로 부상시켰고 그 적임자로 문재인이 선택되었다.
한국에서 ‘마크롱 현상’이 재현될 수 있을까?
보통은 남의 떡이 커 보이기 마련인데 유독 정치인들 눈에는 자기 떡이 커 보인다.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세 분석을 하는데 익숙하다. 다가오는 대선 정세와 관련해서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존재가 미미하고 불리한 조건이라 하더라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는다. 이럴 때 커다란 위안과 격려를 안겨다주는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닌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다.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프랑스 정치를 지탱해 왔던 두 기둥 공화당과 사회당이 한 순간에 ‘폭망’했다. 단 한 석도 없었던 마크롱이 대통령에 등극하였고 연이어 치러진 충선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기적과도 같은 현상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프랑스 역사를 관통한 영웅주의 전통의 결과라는 시각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프랑스는 난국에 처할 때마다 잔다르크, 나폴레옹, 드골 등 영웅이 출현하여 국면을 돌파했는데 마크롱 현상 역시 그 재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기존 정치 지형을 완벽하게 뒤엎는 마크롱 현상이 재현될 수 있을까? 얼마 전까지 그런 기대감에 부풀어있던 정치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이다. 안철수가 표방했던 ‘극중주의’의 원조가 마크롱이었다는 사실에서 어느 정도 단서가 잡힌다.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 또 있다. 호남 출신 중에서 안철수와 행보를 함께 한 국회의원들이 있다. 왜 이들은 그런 선택을 했을까? 혹시 이렇게 판단했던 것은 아닐까? 문재인 정부는 경제 분야에서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해서 민심이 자유한국당으로 쏠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차기 대선에서의 승리는 자신들 몫일 수밖에 없다. 정녕 그리 생각했다면 그들은 마크롱 현상의 재현을 믿었다고 볼 수 있다.
안철수는 한국의 마크롱을 꿈꾸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안철수는 현실 정치에서 실패했다. 적어도 차기 대선 국면에서 국민이 안철수를 소환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도리어 안철수 학습 효과로 유권자들은 검증되지 않은 메시아의 강림을 기대하기보다 충분히 검증된 정치 지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차기 대선 주자에게 요구되는 브랜드 가치
과연 어떤 인물이 차기 대선에서 시대의 선택을 받을까? 이러한 질문에 직면할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는 과거 연장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그중 하나로서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 노무현의 혼령이 자신 안에 깃들였다는 ‘노무현 빙의’가 유행하기도 했다. 노무현2가 되는 것이 정치적 성공의 보증 수표처럼 인식했던 것이다. 하지만 민심은 매번 새로운 스타일의 정치인을 찾는다. 차기 대선에서는 문재인2가 아니라 그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정치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정치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축이 ‘소프트 파워’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정치 지도자의 효용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브랜드 가치는 지지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모두 정치적 승자가 될 수 있었던 핵심 요소는 그들이 지닌 브랜드 가치였다. 아직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세 싸움에 골몰하는 자들이 많다. 조직 세에서의 우세를 바탕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허망한 착각일 뿐이다. 정치 지도자의 브랜드 가치에 따라 조직 판도는 일거에 바뀔 수 있다. 브랜드 가치는 거대한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강력한 에너지원이다.
과연 차기 대선 주자에게 요구되는 브랜드 가치는 무엇일까? 미래는 현재 속에서 잉태한다. 최근 2달 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포인트 정도 하락했다. 경제 분야에서의 부진이 주된 요인이다. 차기 주자는 이 한계를 훌쩍 넘어설 인물이어야 함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는 단기 처방으로 치유가 어렵다는 사실이 갈수록 분명해질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지점에서 체제 전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결론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인다. 차기 대선 주자에게 요구되는 브랜드 가치는 ‘경제 체제의 전환을 주도면밀하게 이끌 지도자’로 압축된다.
그 누가 덩샤오핑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
차기 주자에게 요구되는 브랜드 가치는 지난 호 글에 비추어 본다면 ‘덩샤오핑 리더십’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이 역사의 진행 방향이 급격히 바뀌는 과도기에는 기성 이론 속에서 답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시기에는 오직 ‘현장 기반 집단 지성’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덩샤오핑이 그러했던 것처럼 현장으로 내려가 해법을 찾으면서 국민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덩샤오핑 리더십을 실천한 적임자가 있는가? 현재로서는 이 사람이라고 딱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객관 조건만 놓고 보면 광역 단체장이 한층 유리해 보이는 건 분명해 보인다. 구체적 실험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창조하기 좋기 때문이다. 물론 이조차도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덩샤오핑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을 때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이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덩샤오핑이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현장에서의 검증과 인민의 지혜였다. 대권을 꿈꾸며 한국의 미래를 온전히 책임지고 싶은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 이 말을 가슴 속에 새기기 바란다. 혼돈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최고의 지혜이다. ‘현장을 교과서 삼고 민을 스승으로 받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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