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열풍은 한국에도 상륙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16일 피케티 비율 중 하나인 β(=W/Y, 민간 순자산의 가치를 국민소득으로 나눈 값) 자료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부의 불평등과 관련한) 논의가 합리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숫자를 만드는 우리가 시계열 자료를 만들어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은 그 얼마나 반가운가? 모름지기 통계기관이란 이래야 한다. 한은과 통계청이 5월14일에 발표한 ‘국민대차대조표 공동개발 결과(잠정)’의 부록을 이용하면 2000년에서 2012년까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의 β값을 계산할 수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계산에 따르면 2000년에 5.8(또는 580%)이었던 β는 2012년 7.5까지 치솟았다. 2000년에 5.8을 넘은 선진국은 일본밖에 없었고 2008년경부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가 되었다. 즉 자산의 수익률(r)이 비슷하다면(우리의 계산에 따르면 한국의 수익률은 선진국 평균보다 더 높다) 국민소득에서 자산가가 가져가는 몫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얘기다. 피케티의 300년에 이르는 장기 통계에서도 β가 7을 넘긴 것은 프랑스의 벨에이포크 시대(19세기 중후반, 즉 ‘레미제라블’의 시대)가 유일하다.피케티에 따르면 세계(유럽과 미국)의 β는 191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만 2와 3 사이에 있었고 그 이후에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즉 두 번의 전쟁과 대공황, 그리고 강력한 재분배정책이 시행되는 동안만 자산의 몫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한국은 어땠을까?한국 역시 해방 후 일본인 재산(적산)의 몰수, 뒤이은 농지개혁과 6·25전쟁으로 1950년대엔 β가 대단히 낮았을 것이다. 최근 발표된 우대형 교수의 연구(‘한국 경제성장의 역사적 기원’)에 따르면 1960년대 초 한국의 토지지니계수는 식민지에서 해방된 42개 국가 중 가장 낮았다. 또 중위소득(즉 제일 가난한 사람부터 부자까지 일렬로 세웠을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소득) 비중은 47개국 중 가장 높았다. 즉 자산으로 보나 소득으로 보나 우리나라는 구식민지 국가 중 가장 평등했다(선진국들을 포함해도 가장 평등했을 것이다).나는 1960년대 이후 1980년대까지 한국의 고도성장에 지주계급의 소멸과 교육이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1950년대 우리보다 훨씬 잘살았던 동남아와 중남미에선 대지주계급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까지 모두 장악했지만 한국은 신흥 자본가계급이 생겨났고 금융은 국가가 오랫동안 통제했다. 이런 요인은 이후 이들 나라의 경제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하지만 지니계수로 보나 우리의 β로 보나 1990년대 중반 이래 한국은 급속하게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제 교육은 사회적 이동 통로가 아니라 벽이라는 걸 우리 모두 안다. 이는 곧 가장 중요한 성장동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훨씬 풍요로워졌는데도 아이들의 미래를 옛날보다 훨씬 더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산과 소득 분배의 개선이다. 나아가 부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내 아이만은 상위 10%, 나아가서 1%로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 그럴수록 부자들이 더욱 유리해지는데도 말이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수록, 그리고 사교육비가 올라갈수록 피케티가 이름 붙인 ‘세습자본주의’는 더 강화될 것이다. 신분사회가 되면 물론 성장도 문화도 없다.평등이 장기성장을 추동한다는 것, 현재와 같이 분배가 더 악화되면 아예 성장동력이 꺼져버린다는 게 피케티의 장기통계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다.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그리고 사회적 경제가 바로 그런 개선책들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선 ‘경제혁신’이건 ‘국가개조’건 새로 내거는 슬로건마다 모조리 더 강한 ‘줄푸세’로 귀결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의 경제관이 이를 또 한번 실증한다. “시장에 맡기자”며 현재보다 더 분배를 더 악화시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 전체를 세월호로 만들 셈인가?* 본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