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달간 나는 사회적 경제 발전 전략을 만들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애초에 “네모난 동그라미”를 그리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회적 경제의 핵심은 신뢰와 협동이고 신뢰란 오랜 기간 쌓이는 것이기에 위에서부터 전략적으로 만들려 들다간 오히려 기존의 신뢰마저 무너뜨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뢰를 자양분으로 삼는 사회적 경제에도 정부의 역할은 자못 중요할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 경제의 모델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주나 캐나다의 퀘벡주 등에서는 지금도 4년이나 5년에 걸친 사회적 경제 발전 계획이 시행되고 있다. 결국 내가 찾아낸 정책 방향은 ‘아래로부터의 계획’이다. 기초 지역단위에서 시민들에게 절실한 필요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면 정의상 그것은 곧 사회적 경제의 계획이 될 터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시민 참여는 경제 분야에서도 대도약을 이루게 될 것이다. 국가 주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뒤이어 시장만능론에 50년 동안 시달린 우리에겐 아마득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100만년 이상 우리 안에 전승되어온 ‘협동의 유전자’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사회적 경제 특위’를 만들자고 합의했으니 정치적으로도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가능한 조건이 아닌가? 한데 3월12일 각 광역단체에 한 장의 공문이 전송됐다. 발송자는 공정거래위원회이며 내용은, 이미 합의한 규제 완화는 물론 “2013년 연구용역을 통해 새로 발굴한 규제”의 완화에도 합의하자는 것이다. 3월24일부터 4월19일까지 4주 동안 전국 광역단체에서 전부 업무협의회를 개최하는 강행군 일정이니 공정위의 결기가 자못 섬뜩하다.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대통령 말씀에 충실한 행보가 틀림없다. 공문에서 언급한 2013년 연구용역은 대표적 인 간접적 경쟁 제한 규제로 “농특산품 전시판매장 설치 및 운영조례, 사회적기업 육성에 관한 조례,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조례, 녹색제품 구매촉진조례, 협동조합 육성 조례, 밀산업 육성 조례, 친환경 학교급식지원 조례” 등을 나열했다. 심지어 이런 조치들이 “향후 우리나라의 대외 통상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라는 위협까지 덧붙였다. 한마디로 사회적 경제와 농업 등 경제적 약자 또는 미래를 위한 지방정부의 사회경제정책이 전부 문제라는 얘기다. 아뿔싸, 새누리당 서울시 후보로 나선 정몽준 의원은 연일 대형 개발사업을 흘리고 있다. “서울 시내에 대규모 부지가 많이 있어 (외국) 투자자들이 하겠다고 신청한 게 30군데 있다. 대부분 (허가)해주는 방향으로 하면 특혜 시비는 없을 것”이란다. 또한 용산개발사업도 “서부이촌동까지 키워서 너무 커졌는데, 단계별로 점진적으로 해나가면 소화할 수 있다”며 다시 한번 2008년의 ‘뉴타운 광풍’을 불러일으키려 애쓰고 있다. “다섯살 훈이”(오세훈)가 “꿈꾸는 준이”(정몽준)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부동산 붐 조성을 위한 위로부터의 대규모 개발”과 “사회적 필요 해결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둘러싼 정책기조의 싸움이다. 사회적 경제와 그 적들 간의 다툼인 것이다. 눈앞의 신기루는 과연 얼마 안 된 생생한 기억마저 깨끗이 지워 버릴 수 있을까? 두 달 있으면 가름이 날 것이다. *본 글은 한겨레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