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옆 관광호텔이 투자를 늘릴 수 있을까? 한 사업가가 “300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관광호텔 계획을 세우고 관할 구청에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했으나 처리가 불투명한 상태”라고 호소하자 유진룡 문화체육부 장관은 “전혀 예측 불가능한 기준을 가지고 규제를 해 우리도 미치겠다”라고 맞장구쳤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학교보건법 시행령이 최대 관심사”라면서 “시기에도 안 맞는 편견으로 청년들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막고 있다는 것은 거의 죄악”이라고 단정했다.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20일 청와대에서 무려 7시간5분 동안 주재한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나온 말들이다. 박 대통령은 “규제 개혁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모든 분야, 모든 세부 과제들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라고 밝혔다. 그 이전에도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3월10일)이니 그 개혁을 “꿈까지 꿀 정도로 생각을 하고”(2월5일), “불타는 애국심,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말 사생결단하고 (이 문제에) 붙어야 한다”(3월12일)라고 결기를 다진 바 있다. 글 첫머리의 예화가 나올 만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다급한 심정은 능히 짐작이 간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배운 바에 따르면 경제성장이야말로 정권의 정당성을 담보하는데, 지난 1년 동안 가계부채에 짓눌려 소비는 시원하게 늘어날 기미를 안 보이고 설비투자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해서 기업들이 원하는 대로 규제를 모조리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 이래 재벌들의 소원인 수도권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국민계정(National Accounts)상의 설비투자는 전혀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경제 구조는 수출 증가에 비례하여 설비투자가 늘어나는데, 앞으로 몇 년간 수출증가율은 한 자릿수를 넘기지 못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다만 재벌들이 남아도는 돈으로 수도권의 땅을 사들일 것은 확실하니 건설투자는 조금 늘어날지 모르겠다.규제는 공공성을 보호하고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규칙이다. 어떤 사회의 공공성은 구성원이 합의하는 공공의 가치로 구성된다. 학교 옆 관광호텔이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합의한 공공의 가치가 ‘보건법 시행령’인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이를 ‘암 덩어리’로 규정했다. ‘규제 개혁’의 대상으로 지금 거론되고 있는 저탄소차협력금제도, 자동차 튜닝 규제, 개발부담금 제도, 영어 캠프 등이 모두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와 직결된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규제 개혁’의 칼날이 겨누는 진정한 대상은 공공성 자체라고 할 만한 의료와 교육, 그리고 철도와 같은 네트워크 산업이다.물론 현재의 규제 중 시대착오적인 것도 있고 과거의 지식 부족으로 불합리해진 것도 있을 터이다. 이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면 세세하고 엄격한 사전 규제는 필요 없어진다. 예컨대 스웨덴처럼 노동조합의 힘이 충분히 큰 나라의 노동 관련법은 의외로 허술하다. 노조나 하청기업의 단결권과 단체협상권, 교육 3주체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것이 이런 규제를 없애는 길이다.‘규제 개혁’ 칼날이 겨누는 의료·교육·철도 등은 공공성 그 자체지난 20여 년간의 행동·실험 경제학 등의 성과도 현재의 규제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예컨대 사람의 정보처리 능력은 대단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디폴트(초기값)를 웬만하면 변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민들에게 가장 유리한, 가능하면 단순한 표준상품을 제시하고 이 기준에서 벗어날수록 더 많은 정보 공개와 처벌(예컨대 불완전판매의 엄격한 적용)이 뒤따르도록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봐서 지금의 세계는 재규제(reregulation), 폴라니식으로 표현하면 재착근(reembededness) 쪽으로 향하고 있다. 시장이 자기조절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난 30년간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한 결과가 현재의 위기이다. 시장이 다시 사회로 재착근되어야 비로소 ‘국민행복시대’를 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규제’의 본래 의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이 참여하여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공공성을 정의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규제가 가장 합리적인지 토론해서 결정하는 일이다. *본 글은 시사in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