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얼굴-2004년 9월 모스크바 공항.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9월, 3박4일 일정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당시 청와대 동북아 비서관으로, 시베리아를 관통해서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철도·가스관·IT망을 꿈꾸던 나는 TSR-TKR(시베리아 철도와 한반도 철도) 연계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일주일 전에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모스크바 시내로 가는 대로변에 삼성과 LG의 광고 깃발이 끝없이 걸려 있었다. 모스크바 시내 곳곳의 광고탑, 무엇보다 아파트 바깥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 박혀 있는 이들의 붉고 푸른 로고는 나를 뭉클하게 했다. 이렇듯 삼성은, 특히 해외에서 만난 삼성은 말 그대로 내셔널 챔피언이다.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또는 싸이의 춤을 따라하며 열광하는 외국인들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삼성은 우리의 자부심을 북돋우는 존재다. 둘째 얼굴-2014년 1월 서울. 삼성의 입사 시험에는 매년 20만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린다. 과열을 걱정했던 것일까? 지난 1월15일 삼성그룹은 서류전형을 부활시키고 대학총장 추천을 받겠다고 발표했다. 일주일 뒤에는 대학교별 추천 인원을 공개했다. 계열 대학인 성균관대가 115명, 경북대가 100명이고 부산대 90명, 전남대 40명이었으니 곳곳에서 ‘대학 서열화’ ‘지역 차별’ ‘남녀 차별’ 등 다종다양한 비난이 일었다. 결국 삼성은 2월 초 총장추천제를 유보했다.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삼성은 은행보다도 인기가 없는 직장이었다. 삼성은 5공화국 때부터,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 무섭게 성장해 내셔널 챔피언이 되었고 이제 서울대나 연세대·고려대에도 인원을 할당할 정도가 되었다. 삼성은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자기 광고의 카피를 입증하듯 독보적 1위임을 만천하에 선언한 것이다. 이제 시장의 힘에 의해 삼성으로 돈과 사람이 몰려가는 시대다. 셋째 얼굴-2014년 2월 한국. 먼지 한 톨도 허용하지 않는 반도체 산업의 클린룸은 청정 이미지를 뽐내지만 실은 대단히 위험한 곳이다. 머리카락 2000분의 1 폭의 간격으로 회로가 촘촘히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합선’을 막기 위해 끝없이 화학약품으로 먼지를 씻어내야 한다. 이 때문에 삼성반도체나 LCD 회사에 근무했던 노동자들이 백혈병·골수암 등 불치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이들을 대변하는 단체 ‘반올림’에 신고한 피해자만 138명, 사망자도 56명에 이른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반도체에 다니다 2005년 23세의 나이로 백혈병에 걸려 숨진 황유미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 영화는 개봉일인 2월6일 오전 현재, 7% 정도의 예매율로 당당히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실제 상영관은 전국 112개로 여느 1위 영화의 2분의 1 내지 3분의 1에 불과하다. 영화관들은 왜 뻔한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영화를 내걸지 않는 것일까?삼성은 시장에서만 승리한 게 아니다. 정부는 2012년 한 해 동안, 조세감면 등 간접 지원을 빼고도 1684억원을 직접 지원했다. 2위인 현대자동차의 883억원에 비하면 두 배에 가깝다. 김용철 변호사가 4년 전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밝혔듯이 삼성은 경제부처와 검찰, 국회, 그리고 사법부까지 돈으로 구워삶았다. 우리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아야 하는 이유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그래서 망한다. 이 진리는 기업에도 적용된다. 물론 절대 권력자가 스스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스스로 글로벌 기업다운 품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시민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하청단가를 낮춰서 초과이윤을 얻지 못하도록 경제도 민주화해야 하고 기업 단위에서는 노동조합의 설립이라는 기본적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자신의 기업에서 일어난 사고를 외면한 채 돈으로 매수하거나 끝없는 법정 투쟁으로 몰고 가는 파렴치함을 응징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국가의 모든 부분을 부패하게 하는 불법 행위를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 삼성은 대한민국 전체가 키워낸 기특한 자식이다. 하지만 국민이 오냐오냐하는 심정으로 ‘상상의 공생’에 머물다가는 ‘공망’의 길에 접어들 공산이 크다. 우선 <또 하나의 약속>을 보는 것으로 ‘현실적 공생’의 첫걸음을 내딛자. *본 글은 시사IN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