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의 TPP

By | 2013-12-16T10:37:07+00:00 2013.12.16.|

“안녕들 하십니까?”가 유행이라는데, 전혀 안녕하지 못했던 2013년이 저물고 갑오년이 온다. 120년 전 ‘갑오농민전쟁’의 그 갑오년이다. 그 해 청일전쟁이 본격적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격변을 수면으로 드러냈다면 이번 갑오년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120년 전에 중국과 일본이 맞대결했다면 이번엔 중국과 미국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대결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미국 편에 섰고 이제 한국은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1972년 이래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경제적 포용(engagement)과 군사적 봉쇄(containment)이다. 이를 합쳐서 ‘봉쇄 포용’(congagement)전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은 ‘도광양회’(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의 외투를 입고 경제성장에 주력했고 미국 역시 ‘대순항’(Great Moderation)의 호시절을 즐겼다.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모든 상황을 뒤바꿨다. 우선 경제 면에서 양국의 밀월관계에 금이 갔고 미국으로선 그저 포용만 할 수는 없게 됐다. 미국이 중국의 제조업 제품을 수입하고 중국은 무역흑자로 미 재무부 증권을 사서 달러를 되돌려 주는 ‘차이메리카’라는 아름다운 공생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이제 포용보다는 간섭, 나아가서 환율전쟁과 같은 갈등이 수면에 떠오르고 있다. TPP는 중국 주변국의 경제제도를 미국식으로 개조할 것이고 여러 나라가 동시다발적으로 중국에 압력을 가하게 만들 것이다. TPP의 플랫폼이 한·미 FTA+인 이유다.군사 봉쇄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이미 천문학적인 데다 공화당은 정부폐쇄라는 극약처방까지 꺼내서 정부부채 비율 축소를 요구하는 판이다. 당연히 미국은 한·일 등 동맹국에 제공되던 대중 봉쇄의 비용을 떠맡기 원한다. 더 이상 핵우산에 무임승차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판 미사일방어(MD) 체제에 참여하라고 강요하거나 미군 기지의 신설, 또는 재배치 비용을 떠넘기는 게 대표적 예이다.동아시아 공동체를 내세웠던 하토야마-간의 민주당 정권은 후텐마 기지 이전과 소비세 인상 문제로 허망하게 무너졌다. 아베 총리는 이런 국제적 상황을 우파의 오랜 염원인, 일본 재무장화에 이용했다. 한국, 중국과의 영토분쟁, 역사분쟁은 아주 유용한 수단이었다.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요구를 수용했고 그 대가로 일본은 TPP 참여를 결정했다. 아베의 ‘세 번째 화살’, 충격에 의한 내부 개혁이 바로 그것이다.도광양회 대신 중국이 내세웠던 평화발전은 주변국에 ‘패권굴기’로 비쳤다. 2010년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중국과 영토갈등을 일으킨 나라들은 중국이 얼마나 무섭게 성장했는지 체감했고, 결국 줄줄이 미국 품으로 달려 갔다. 하여 TPP는 미국의 원래 구상보다 더 커졌다. 중국은 태연한 척, 언뜻 참여의사까지 내비쳤다. 하지만 한·미 FTA보다도 더 강해진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분야의 독소조항은 물론이고 새로 추가된 ‘국유기업 분야’까지 중국이 수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난 3중전회에 제출된 개혁들이 무사히 완수된다 하더라도 그렇다.또다시 맞은 갑오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다른 12개 나라 시민과 힘을 합쳐 TPP 협상의 공개를 요구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현재 협상 중인 한·중 FTA를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플랫폼으로 완전히 다시 짜야 한다. 여기에 외환보유액의 공동관리를 포함한 금융협력, 환경협력, 에너지 협력 등을 집어 넣어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두 손 벌려 환영하도록 할 수 있다면 TPP 역시 예의 독소조항을 제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컨대 TPP와 RCEP가 아시아 주변국들을 향해 구애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셋째로, 어차피 우리가 이 지역의 방위비용을 내야 한다면, 동아시아 공동안보체제를 만드는 편이 대중국 봉쇄망보다 훨씬 안전할 것이다. 요컨대 미국과의 쌍무동맹을 다자간 협정으로 만들어야 한다.박근혜 정부가 이 격랑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절체절명의 시기에 이 정부는 국민의 재산을 국내외 자본에 팔아 넘길 궁리나 하고 있다. ‘동시다발적 민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오호, 통재라. 그 옛날 조선의 위정자들과 무엇이 다른가?*본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