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애인 활동가의 죽음 : 사회가 떠민 사람

By | 2013-12-11T10:04:02+00:00 2013.12.11.|

맹장으로 사망한 장애인 활동가일찍 찾아온 추위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11월 말, 한 장애인 활동가의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정기적으로 나가고 있는 의료봉사 단체 소속 장애인 활동가 김준혁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저 그렇듯 무심하게 부고를 듣다가 맹장염으로 인한 패혈증쇼크로 사망했다는 이야기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요즘 세상에 맹장염으로 사망이라니…대체 고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故 김준혁씨에 대한 개인적 기억은 없지만 주위 분들에 따르면 지적장애가 있음에도 매우 헌신적으로 사회활동과 장애인 처우개선 운동을 열심히 해오셨다고 한다. 언어 및 지적 중복장애 3급 진단의 장애를 가졌지만 민주노동당 등 사회활동뿐 아니라 장애인 처우/인권개선을 위한 활동에도 매우 적극적이셨단다. 하지만 고인은 장애로 마땅한 직업을 찾을 수 없어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고, 가족도 없이 혼자 정부 수급에 의존해 살아왔다. 그렇게 혼자 지내던 고인은 맹장이 터져 복수가 차는 상황에서도 병원에 쉽게 가지 못했다. 결국 통증이 심해지고 고열이 지속되는 응급 상황이 되어서야 이웃들의 도움으로 응급실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했지만 정작 수술에 동의해 줄 가족이 없었다. 매우 응급한 상황임에도 시립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친척을 찾아야 한다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고인은 친척이 당도하고, 수술동의서를 작성하고, 보증을 서고 나서야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허나 이미 상황은 늦었고 수술을 마치고 한 시간도 못되어 패혈증 쇼크로 사망했다.홀로 사는 장애인에게 질병이란고인이 연락이 끊겼던 시기는 11월 18일, 사망한 날은 25일 새벽. 그동안 고인은 맹장염 증상이 있었으나 병원비 부담으로 병원에 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인에게 병원에 가야한다며 돈을 빌렸지만 결국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의료보호환자로 의료비 부담이 거의 없는데도 왜 병원을 가지 못했을까?고인은 2010년 백혈병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 검사비 100만원이 필요했다고 한다. 한국 의료체계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의료급여환자라도 비급여본인부담금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돈을 빌려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에도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다. 지인들은 사망 후에야 병원의사를 통해 고인이 백혈병임에도 약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적장애와 그로인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고인에게 병원 문턱은 그렇게 높았다. 병원은 무조건 돈이 있어야 가는 곳이었고, 그 돈을 빌려야만 병원을 갈 수 있었으며, 그나마 시기를 놓쳐 응급상황이 되버렸다. 치료와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백혈병은 아예 치료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상태로도 계속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고인은 기초수급을 받고 있었으나 금액이 매우 적어 계속 일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적, 언어장애가 있는 고인이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란 매우 어려웠고 불안한 일자리에 들어갈 경우 수급권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취직을 하지 못했다. 차가운 한국사회 복지현실이 야기한 죽음고인의 사망과정을 들여다보면 차가운 한국사회 복지 현실이 보인다. 장애가 있지만 충분하게 사회활동과 노동을 할 능력이 있던 고인은 얼마 되지도 않는 수급권을 잃을 수 없어 직업활동을 하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 소득은 월 50만원이 채 되지 못했고, 의료급여환자지만 병원문턱은 너무 높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고인은 병원에 갈 돈이 없었고 응급상황이 되어서야 병원에 실려 갈 수 있었다. 결국은 이렇게 한 생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의료선진국의 기술과 노하우를 활용한 의료관광으로 세계적 관광중심지로 도약,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 등을 이룩하자는 장밋빛 희망이 넘쳐난다. 정부와 의료계에서는 원격의료, U-health, 의료관광, 의료산업선진화 등 미래 의료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미래에 고인과 같은 취약계층은 어디에 서 있는가?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지만장애인의 90%이상은 후천적으로 장애가 발생한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정확한 숫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제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보고된(등록된) 장애인 규모는 1/3이 못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애인이 없는 훌륭한 사회라서? 아니다. 장애를 드러내놓고 살기 어려운 사회이기 때문이다.일단 집밖을 나가기가 매우 어렵다. 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물들과 도로로 이들의 이동권은 알게 모르게 박탈당하고 있다.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사회 그 자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야 한다. 그것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든 경제적인 여유든 말이다. 고인의 경우처럼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증상에도 병원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집에서, 시설에서 숨죽여 살 수밖에 없다. 생계? 그나마 보고된 장애인의 25.7%에 불과한 숫자만이 매우 적은 수준의 소득보장을 받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인이 2배면 장애인의 13.4%가, 3배면 8.9%정도만 소득보장을 받고 있는 셈이다.병원에 가기에 지리적 접근성과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제약을 받는 장애인들과 같은 취약계층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보루는 공공병원이다. 故 김준혁씨에게 이상 증상이 나타났을 때 바로 연락할 수 있는 주치의가 있었고 주치의가 빠른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 가까운 공공병원으로 바로 이송/처치가 가능했다면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은 돈이 되지 않기에 수익을 내야하는 민간에서 하지 않는 사업이다. 그렇다면? 당연하게 공공병원이 튼튼하게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 노인 등 취약계층과 저소득층의 일상적 건강체크 및 응급상황 대처는 거의 공백상태이다. 전체 의료기관의 5%수준의 공공의료로는 병원에 실려 오는 환자를 처리하기에도 여유가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공공병원 마저도 적자를 이유로 폐쇄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나마 의료 분야가 다른 복지에 비해 나은 편이다. 故 김준혁씨는 사망 후에도 장례식도, 빈소도 없이 화장장에서 한줌 재로 사라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소식이 알려졌던 것도 며칠이 지나서였다. 그나마 다른 복지영역보다 잘 되어있다고 하는 의료에서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던 고인의 삶에서 사회와 국가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의료를, 삶의 필수적 서비스를 산업화하려는 국가에서 장애인이란 그저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부담에 불과한 것일까?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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