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파괴적 위협에서 사회를 보호할 때

By | 2013-12-05T09:53:34+00:00 2013.12.05.|

“소수의 소득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행복한 소수가 누리는 번영으로부터 다수가 분리되면서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이데올로기의 결과다. 그 이데올로기는 시장과 금융투기의 절대적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어떠한 형태의 통제를 실행하고, 공동선을 경계할 책임이 있는 국가의 권리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지만 가끔은 가상적인, 일방적이고 무자비하게 자신의 법칙과 규칙을 부과하는, 새로운 독재가 탄생했다.”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번째 ‘교황 권고(apostolic exhortation)’에 담겨 있는 한 대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좀처럼 기세를 꺾지 않고 때로는 긴축 주장으로, 때로는 복지축소 주장으로 부활하고 있는 시점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독재’라는 용어까지 사용해 가면서 부정한 시장논리에 치열하게 맞서는 교황의 절절한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대침체(Great Recession)가 5년이 넘어 또다시 겨울이 찾아왔지만, 새로운 대안 모색은 고사하고 왜 여전히 시장 자유주의가 기세를 떨치고 있는 것일까. 리먼 사태 이후 금융시장의 대붕괴를 국가의 엄청난 구제금융으로 겨우 막아 놓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왜 지금도 교황 표현대로 “늙은 노숙자가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지만, 주식시장이 2포인트만 하락해도 뉴스가 되는” 세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그만큼 시장 만능과 시장의 자기조정 이데올로기가 강력한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경쟁적 시장이라는 것 ‘그 자체를 공공재’로 인식한 엘리너 오스트롬은 “어느 시장도 공적인 제도의 뒷받침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고 명쾌하게 지적했다. 한발 더 나아가 자유시장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역설이 성립한다고 칼 폴라니는 주장한다. “인간 만사를 그야말로 제 갈 길 가도록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결코 자유시장이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시장은 “국가에 의한 법령과 집행을 통해 나타난 것”이라는 것이다.나아가 “자유시장으로 가는 길을 뚫고 또 그것을 유지·보수했던 것은 중앙에서 조직하고 통제하는 지속적인 정부 개입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정부 개입은 엄청나게 증대”하고 말았던 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겪은 최근 경험도 이를 명확히 실증해 주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너진 금융시장과 세계 시장질서는 절대 스스로 조정되지 않았고, 세계 각국의 막대한 구제금융으로 파산을 면하게 된다. 위기 가운데 긴급하게 급조된 주요 20개국(G20) 회의 체제로 국제적인 협조를 모색하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중앙은행을 동원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를 수년째 이어 오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 갈 전망이다. 모두가 막대한 국가의 힘을 빌려 ‘결코 스스로 자기 조정되지 않는 시장’을 지탱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더 이상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더 많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에서 시장을 규율하고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가야 한다. 앞서 인용했던 폴라니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자유방임은 중앙 계획이 만들어 낸 것이었지만, 중앙 계획은 중앙 계획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는 역설이 그것이다.즉 국가가 ‘계획한’ 자유시장이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교황의 표현대로 “소수의 소득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행복한 소수가 누리는 번영으로부터 다수가 분리”되는 심각한 불평등의 폐해가 발생한다. 이 폐해가 심화되면 시민들은 마땅하고도 자연스럽게 저항하게 되고 “사회가 스스로 보호하려는 운동이 현실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폴라니에 의하면 이렇게 자유시장의 폐해로부터 규제를 가하려는 움직임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각종 노동보호 입법과 공공보건·사회보험·공공시설 관련 입법은 그렇게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런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 자유시장의 폐해가 낳은 불평등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어야 할 때다. 그런 차원에서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런 흐름을 인위적으로 가로막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월가 점령운동을 대표되는 ‘99% 운동’이 잠시 전 세계를 뒤흔들었지만 곧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지금은 지루한 긴축논쟁과 양적완화 축소논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답답한 교착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추동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 아닐까.*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되었습니다.

4 개 댓글

  1. drebin 2013년 12월 7일 at 12:47 오전 - Reply

    미국의 실업률이 7.0%로 공식 확인되었죠. 미국의 3대 지수가 화답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노조가 강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쓴 프랑스는 공식 실업률이 12%나 됩니다. 오히려 미국처럼 노조를 없애고 노조를 보호하지 않는 행위는 겉보기에 노동자에게 불리해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를 위한 길입니다. 포브스를 보니 벌써 2014년. 세계경제의 주도권은 미국이 쥔다에서 부터, 세계적 투자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모두 끝났다고 하며, 경기불황일때는 긴축파의 의견이 100% 옳았음도 입증되죠.
    경제학 기본만 알아도 이는 상식입니다. 정부지출이 늘면 구축효과때문에 민간의 소비를 갉아먹으니 경제에는 도움이 안되죠. 정부지출보다 더 효과적인게 민간소비니까요. 진보매체 말대로 경기불황일수록 세금 더 걷고 복지확충한 유럽국가들은 줄줄이 마이너스 성장에 신용등급 강등. 실업률 폭등. 단호한 긴축가 복지를 줄이거나 없애도 신자유주의 노선을 강화한 미국, 영국, 그리스 등은 경제가 살아나고 있지요. 진보의 역설입니다. 진보매체가 주장하는대로 경제를 운용하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경제신문에서 주장하는대로 하면 모두가 행복해지고 그 나라는 번영과 풍요를 누립니다. 진보언론의 주장은 그저 반대지표인가 궁금합니다. 진보학자들의 의견으로는 미국의 3.6%성장. 유럽의 마이너스 성장을 설명 못하죠. 장하준도 그래서 경제학자취급도 못받죠

    • hanjiji 2013년 12월 9일 at 7:03 오후 - Reply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노조가 강한 국가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노조조직률도 미국보다 낮고요.

      양적완화를 시행해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미국을 두고 긴축파의 의견이 100% 옳았다고 하면 안되지요. 양적완화가 긴축정책에 반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래서 긴축파에서는 시퀘스터나 양적완화 축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크루그먼과 같은 케인지언들은 양적완화 지속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정부지출이 늘면 민간의 소비가 증가합니다. 다만 정부지출의 증가가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이루어진 경우 금융이자율을 상승시킬 수 있고 이것이 민간의 투자(소비)를 구축시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구축의 정도는 LM곡선의 기울기, 혹은 이자율 결정의 메커니즘에 따라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파, 학자에 따라 다른 주장을 하고 있으며 그 정도도 다르게 보고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거시경제적 예측과 관련된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DSGE 등과 같은 모형이 기반이 된 분석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상식 운운할 내용이 아니라 실증분석 결과로 이야기해야 할 문제지요.

      정부지출보다 민간소비, 투자를 증가시키는 것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경제원론에도 있지만, 그것을 증가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특히, 불황기에는 더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지출을 통해 민간소비를 증대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