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과 오언의 유토피아11월 19일은 영국에서 로버트 오언(Robert Owen, 1771-1858)의 날이라고 한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요즘, 오언은 공인된 협동조합의 선구자이고 사실상 창시자로 존경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지금부터 200년 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였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정조 시대 후반기쯤 된다. 그 시기 영국은 농촌에서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도시로 유입되었지만 노동권이나 사회보장 같은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은 처참한 노동현실이 일반적인 시대였다. 주 70~80시간 노동은 보통이었으며 6세 이상 아동들을 노동자로 내모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영국 맨체스터 최대 방직공장 지배인이었던 오언은 자신의 공장 노동자들에 대해서, 일하는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대우하고 이들의 생활과 복지 개선을 위한 전면적인 개혁을 시도한다. 특히 공장 가족들 중 12세 이하 어린이를 위한 세계최초의 유치원을 만들어서 교육을 시키고, 노동자들의 생필품 공동 구매를 위한 조합을 만드는 등 그의 혁신적인 시도는 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사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비록 그러한 시도가 이후까지 이어지지는 못했고, 일부에서 그의 개혁에 대해 비현실적 시도라는 의미에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라는 폄하도 있었지만, 그는 가장 처참한 현실 속에서도 가능한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선구적인 시도를 했던 것이다.불가능한 유토피아는 시장 지상주의오언의 사회개혁을 높게 평가했던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오언의 시도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정작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는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여전히 위세가 막강한 시장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가 그것이다.19세기 전반기 산업혁명으로 전면화 된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상품이 될 수 없었던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시장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사회를 오직 시장의 자기조정 원리라고 하는 하나의 법칙으로 작동시키려 했다는 것이 폴라니의 분석이었다. 노동의 수요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동 이동성과 유연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노동 공급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노동자의 단결권은 배제되어야 했다. 농지와 주택용지도 시장 원리에 따라 공급되어야 했다. 원래 시장 거래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화폐도 상품화 되어 금융시장 논리를 따라야 했다.상품이란 판매와 교환을 위해 생산한 재화나 서비스다. 하지만 노동하는 사람은 교환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농지나 택지 같은 땅은 당초에 인간이 생산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그 안에서 살도록 주어진 것이다. 화폐는 교환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 그 자체를 판매하기 위해 만든 재화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순간, 구조적으로 실업과 빈곤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곡물가격 급변동과 부동산 투기, 환경파괴를 피할 수 없으며, 금융 불안정성과 투기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스스로 자기조정을 거쳐 문제를 해결하는 자유 시장 경제 자체가 달성할 수 없는 보수주의자들의 허망한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로 이루려는 현실적 유토피아또 한명의 경제학자인 케인스 역시 자유 시장이라는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를 그의 저작 <<일반 이론>>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이 세상을 떠나 자신들만의 정원을 가꾸러 간 그들(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우리가 기존의 상태를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놔두기만 하면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에서도 최선의 결과가 실현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이 말해주는 것처럼 시장은 스스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오늘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고용불안과 부동산 시장 불안, 금융시장 변동성은 바로 지금 우리가 눈앞에서 보고 있는 세계경제의 가장 심각한 국면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5년이 지났건만 시장은 이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서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초저금리와 엄청난 양적완화라는 ‘개입’으로 억지로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경제가 부진 속에서 민생고가 점점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의 실패, 아니 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국민 행복 시대’를 정말 열기 위해서는 시장의 자기 조정기능이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정책, 경제민주화 정책을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새 정부 들어서 열린 첫 정기 국회도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다. 늦기 전에 공약한 개혁 입법들을 제대로 심사하고 입법화해야 한다.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의 복지와 현실의 경제민주화가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