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 경제 상황을 보게 되면 대단히 많은 문제들이 어지럽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더구나 문제가 하나씩 해결되고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문제들은 더 꼬이고, 사라진 문제들은 다시 튀어나오고, 없던 문제들까지 새로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대체로 정치가 어지럽기 때문인데, 그 덕택에 국민의 어려움은 배가된다. 예를 들어 보자. 국가정보원 선거개입과 같은 후진적인 정치 후퇴가 21세기에 다시 불거져 나온다. 문제를 공개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덮으려다 보니 온갖 공안 통치적 발상이 줄을 잇는다. 또한 대통령 자신이 확언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들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하나씩 엎어지기 시작한다. 보육부터 노령연금에 이르기까지 해결되리라 예상했던 온갖 문제들이 다시 원점에서 논란을 일으킨다. 그 와중에도 경제 형편은 나아질 조짐이 없고 전세가가 끝을 모르고 치솟자 정부는 돈을 빌려 줄 테니 아예 집을 사라고 부추긴다. 빚 얻어 산 집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알 바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묻게 된다. 도대체 한국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 가야 할 곳은 차치하고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비전이 있기나 한 것일까. 다음 세대에게 어떤 미래를 말해 줄 것인가.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걸까.“사회적으로 무책임한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매력적인 투자기회가 존재하느냐 여부에 따라 전개되는 상황의 부산물로서의 경제체제가 아니라 인간이 필요로 하는 바를 진정으로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제체제로 지금의 경제체제를 대체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2004년 작고한 유명한 비판적 경제학자 폴 스위지가 오래전에 했던 충고다. 그렇다. 나라가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방향을 잃어버린 것은 우리 사회가 일부 특권관료·재벌·건설 기득권 등의 소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이익과 의사에 따라 사회가 움직이게 되면 다수를 위한 민주주의나 보편적 복지·공평함은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바를 진정으로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갈 수 없게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정치와 사회·경제가 지극한 혼란 속을 헤매고 있을 때 현실에서 위기에 대처하려는 하나의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협동조합운동이다. 일부 생활협동조합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협동조합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지난해 협동조합 기본법 발효 이후 1년 만에 거의 3천여개의 협동조합 신고가 전국에 걸쳐 이뤄졌다. 일부에서는 협동조합이 민영화의 변종이라는 비판도 있고, 반대로 협동조합 자체가 통째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안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대안의 중요한 하나의 기둥을 이루고 있음은 틀림없다. 이런 사고방식은 이미 30년 전인 1980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 제출된 유명한 ‘레이들로 보고서’에 명확한 방식으로 표현돼 있다. “현대 협동조합운동의 지도자들은 일국의 사업 체제를 공기업이나 사기업과 함께 협동조합이 공존해 운영되고, 이 3자가 함께 경제 전체를 이룬다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 현재까지 공적·사적부문과 협동조합부문의 어느 것도 단독으로서는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완전한 사회질서를 실현할 수 없었다. 어떤 두 부문이 결합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세 부문이 함께 나란히 작동해 상호 보완함으로써 인간의 힘으로 달성 가능한 최선의 것을 이룩할 수 있다.”(레이들로 보고서, 1980)동일한 내용은 이달 5~7일 서울에서 열렸던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 선언문에도 담겨 있다. 포럼은 선언문에서 현재의 사회 경제적 위기를 폭넓게 진단한 후 이렇게 주장한다. “위기를 맞아서, 우리는 다원적 경제를 모색하는 다양한 움직임에 주목한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사회적 경제 운동은 경제의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과 배제, 그리고 생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참석자들은 사회적 경제가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삶을 인류에게 선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나아가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모두는 사회적 경제와 시장경제, 공공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발전모델을 개발한다. 정부의 공공정책은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언제나 혼탁한 현실 안에서도 늘 미래의 싹은 존재한다. 척박한 시장주의 안에서 사회적 경제를 일구려는 시도들이 그 하나일 것이다. 미래를 위한 ‘완벽한 청사진’을 지금 당장 찾기 어렵다면 청사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찾아서 쌓아 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라도 해야 방향 잃은 한국 사회에서 한 줄기 탈출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