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G20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활약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취임 후 첫 다자외교 무대였지만 박 대통령은 5개 국어를 하는 외국어 실력으로 다른 정상들과 스스럼 없이 친분을 쌓았습니다…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두 차례 연설에서 강조한 점들이 G20 정상선언문에 상당부분 반영됐고 최근 약화된 G20 기능 부활에 상당히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YTN, 9월 7일자 보도)지난 6일 폐막한 G20 정상회의는 한국 언론에서 말 그대로 ‘찬 밥’이었다. 2010년 마치 우리가 세계를 이끌고 갈 것처럼 떠들썩했던 서울 회의에 비하면 이번 G20 보도는 위 인용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동정 스케치, 또는 찬사 일색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다른 언론 보도도 대동소이했다.이번 G20 최대의 관심사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시리아 문제였다. 미국의 시리아 참전은 많은 나라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양적 완화 축소는 신흥시장 국가 등 다른 나라의 처지도 고려해서 신중하게 시행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얘기를 박 대통령이 “인상적 활약”으로 이끌어 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이번 정상회의의 주제였던 ‘질 높은 일자리’ 창출 논의에, 국내에서도 오리무중인 ‘창조경제’가 기여했다는 주장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하지만 국내 언론의 홀대와 달리 26쪽 114항에 달하는 정상회담 지도자 선언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선언은 현재의 상황을 “현대 역사에서 가장 길고 가장 헤어나기 어려운(most longest and most protracted) 위기”로 규정하고 어떻게 이 위기를 탈출하여 강하며 지속가능하고 균형잡힌 성장 체제로 나아갈 것인지에 관한 온갖 고민을 담고 있다.지난 5년 간의 비전통적 금융정책인 양적완화(중앙은행이 직접 부실채권과 장기 국채를 사들여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관해서는 경제학자들 사이에도 합의가 없는 상태다. 이 정책이 완전히 마비된 민간 금융시장을 대신해서 돈이 돌도록 한 것은 분명한데 지금 물가상승률이 동시에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딱히 지금 양적완화를 축소해야 할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반면, 이렇게 풀린 돈은 조금이라도 수익률이 높은 곳을 찾아 신흥시장으로 몰려갔는데 만일 양적완화 축소가 급격하게 이뤄진다면 이들 국가는 금융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의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지표인 실업률의 하락은 지지부진하며, 그마저도 아예 취직을 포기함으로써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설사 9월에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양적 완화 축소를 실행한다 하더라도 그 규모는 ‘태산을 떠들썩하게 흔들었지만 쥐 한 마리 나오는’ 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그 밖에 박대통령의 기여로 거론되는 보호무역 조치 동결 2년 연장(경제위기 상황에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보호 장벽을 세우지 말고 현재의 상태를 2년 더 유지하자는 것) 역시 1930년대의 악몽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선 당연히 나와야 할 얘기이다. 오히려 이번 G20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지난 10년간 개점 휴업 중이었던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협상에 대한 강조이다(선언 41항-49항).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은 대규모 지역협정과 WTO 협정 간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데(특히 48항) 이는 한국의 처지에선 매우 민감한 문제다.또 우리 언론이 마땅히 주목했어야 할 사항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지역금융제도 또는 안전망(Regional Financian Arrangement 또는 Safety net)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55항)이다. 이 제도의 동아시아판 원형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 그 확대판인 다자간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M)이다. 보도와 달리 박대통령이 특별한 기여를 한 것도 아니고 선언문에서 강조된 것은 IMF와의 조화였다.하지만 아세안+3의 독자적인 금융안전망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IMF의 한계(가혹한 조건 및 부적절한 원칙들)를 극복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풍부한 자금을 이용하여 낙후지역 개발이나 생태 인프라투자를 통해 세계의 총수요를 확대하는 제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견강부회식 자화자찬에 그칠 게 아니라 이런 발전을 주도한다면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본 글은 PD저널에 게재된 원고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