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경쟁’ 아닌 ‘규칙세우기 경쟁’으로

By | 2013-07-17T09:43:49+00:00 2013.07.17.|

박근혜 대통령은 왜 빨간색 옷을 선호할까. 지난 11일 제2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 빨간 재킷을 입고 나타난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참고로 무역투자진흥회의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입국을 위해 만들었던 수출진흥회의를 본뜬 것이란다.“경제에 많은 열정을 불어넣어서 활력 있게 살려야 한다는 뜻으로 제가 열정의 색깔인 빨간색을 입고 나왔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취임한 대통령이 마땅히 생각할 수 있는 태도이고 좋은 취지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이런 주장을 했다. “모든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되 어려운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네거티브 수준이 달성되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하자”고 한 것이다. 네거티브 규제란 규제하겠다고 명시한 것이 아니면 나머지는 모두 규제하지 않겠다는 방식이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규제완화 감세 → 대기업 투자유도 → 중소기업 매출증대 → 고용증대’라는 전형적인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기대하라는 얘기는 지난 5년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수없이 듣지 않았던가.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세계화된 글로벌 자본은 노동자뿐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세 가지 압박과 경쟁을 강요해 왔다. 임금하락 경쟁과 조세인하 경쟁, 그리고 규제완화 경쟁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 재벌들이 국내투자보다 해외투자에 집중하면서, “외국의 지방정부 및 중앙정부는 한국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토지 무상임대와 법인세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재벌 특혜라는 이유로 각종 규제에 시달려 국내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항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화는 그런 점에서 세계의 노동자들과 국가들이 자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서로 끊임없이 출혈경쟁을 하도록 부추겨 임금을 깎고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풀어 줬던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노동자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각 국가들은 주권적 능력을 하나씩 상실하는 한편 국민의 사회복지 수준은 추세적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이와 같은 악순환으로부터 탈출해야 할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악순환의 구조로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규제가 필요한 곳에 규제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사실 보수세력이 그토록 강조하는 ‘공정한 시장경쟁’을 위한 일종의 게임규칙 같은 것이다. 규칙이 없는 게임은 야만의 정글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지 인간 사회가 아니다. 너무나 명확한 것이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도 규제 자체를 부정하지 못하고 이른바 ‘자율규제’라는 것을 들고나왔던 것이다. 특히 원천적으로 규제산업일 수밖에 없는 금융산업은 자신들에게 씌워진 각종 규제의 틀을 체계적으로 해체하면서 스스로 자율규제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금융규제를 최종적으로 해체해 버렸던 99년의 유명한 그램-리치-블라일리법을 통과시키면서 미국 금융자본이 약속했던 것도 바로 자율규제였다. 하지만 실제는 어떻게 됐나. 그들은 자율적으로 ‘규제 없이’ 무모한 수익 추구활동에 탐닉했고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이처럼 자율규제 약속은 현실에서 허망한 것임이 입증됐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재벌들이 ‘자율적인’ 상생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하나도 지켜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특히 사회경제적인 강자를 대상으로 하는 규제는 자율적인 것은 고사하고 ‘강제적’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지켜지지 않는다. 대기업들은 흔히 막대한 자금력과 로비력을 활용해 규제기구에 포진한 사람들을 포섭하거나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들로 포진시키기 때문이다. 이른바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이다. 월가 금융업계를 위해 워싱턴에서 뛰고 있는 로비스트는 미국 하원의원수의 2.5배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그 이상이다. 한국 최대 재벌 삼성은 정계와 관료, 법조계를 넘어 언론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경제민주화 입법이 재계의 말 한마디로 무력화되는 상황을 지금 우리 눈으로 목도하고 있다. 규제가 있다고 한들 규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규칙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규칙을 없애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사회가 발전할수록 복잡하게 설계된 강제적 규제에 의존하기보다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적절히 조절되는 것이 선진국일지 모른다. 그러나 외적 강제력을 대신해 바람직한 공정경쟁과 상생의 사회적 규범으로 우리 경제사회가 조절되기를 기대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야만적이다. 불법적인 정리해고·노동조합 불인정·불법적인 비정규직 고용 관행·납품가 후려치기·물량 밀어내기·하청기업 기술탈취 행위가 만연하는 경제여건을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국가가 나서 규제완화 경쟁을 해야 할 시점이 아니다. 오히려 공정경쟁을 위한 규칙을 다시 만들고 이를 어기는 경제주체에 대해 정부의 단호한 응징 의지를 보여 줄 때다. 그럴 때 경제활력이 생길 것이고 빨간 옷을 선택한 보람도 살아날 것이다.* 이 글은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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