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최근 하버드 대학의 맨큐 교수가 주목할 만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저명한 경제학 저널,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에 곧 실릴 예정이다. 제목도 심상치 않은 “1%를 변론하며(Defending the One Percent)”이다. ‘맨큐의 경제학’이라는 당대 최고 히트를 친 경제학 교과서를 집필한 맨큐는 2003부터 2005년까지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역임했고, 2006년부터 지난 해 대선까지 공화당 롬니 후보의 경제 고문 역할을 수행하였다. 뼈 속까지 공화당원인 보수주의자다. 심상치 않은 제목과 달리 실제 논문은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 그 논문의 핵심은 통상적인 보수주의자들의 익숙한 주장들의 반복에 불과하다. 1%가 높은 소득을 받는 것은 그들의 우수한 기술과 숙련으로 높은 한계생산성을 보이기 때문이라는 경제학 원론의 바로 그 내용이다. 즉 그들은 기여한 만큼의 보수를 받기에 경제적 효율성에 따르면 좌파의 주장의 달리 하등의 사회?경제적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이에 대해, 미국의 좌파 학자들이 비판을 가하면서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맨큐가 논문에서 스티글리츠의 2012년 저서,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를 “체계적 증거라기보다는 설교나 개인적 일화에 근거하고 있다”고 혹평했으니 스티글리츠도 논쟁에 가담할지 두고 볼 일이다. 그리고 경제학 논쟁에는 결코 빠지지 않으려 하는, 크루그먼도 뉴욕타임즈 칼럼을 통해 여기에 가세하였다. 아래는 크루그먼의 칼럼을 중심으로 맨큐 논문에 대한 간략한 비판을 소개한다. 비판_그레고리 맨큐와 게츠비 곡선(Greg Mankiw and the Gatsby Curve) 2013년 6월22일뉴욕타임즈(The NewYork Times)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크루그먼에 따르면, 맨큐에 대한 비판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고 한다. 첫째,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 베이커(Dean Baker) 소장의 비판이다. 그 내용은 1%가 받는 천문학적인 보상은“시장의 자연스러운 작동의 결과라기보다는 정부에 의한 정책 선택의 결과”라는 누장이다. 즉 맨큐가 예로 든 애플의 잡스나 해리포터의 롤링이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재산은 특허권, 저작권 등 정부가 개입한 독점의 부산물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과거 저작권은 14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정부의 개입으로 95년까지 늘어났는데, 만약 50% 정도 줄어든다면 독점으로 인한 이득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시카고 대학에서 의료정책을 전문으로 하는 헤롤드 폴락(Harold Pollack)의 비판이다. 그는 맨큐는 논문에서 기회의 균등을 거론하며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였다. “상위1% 어린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교육적 기회는 중산층 자녀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은 개인적 경험으로 형성되었다. 나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 부모들은 대학 졸업자가 아니었다. 우리 자녀들은 더 많은 돈과 교육을 받은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이 내가 살던 그때보다 더 나은 교육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폴락 교수는 세대 간 이동성에 대한 논문을 인용하며 맨큐의 경험을 실증적으로 비판하였다. 1979~2000년 기간, 상위20%에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상위20%에 남을 확률이 55%이고, 단지 11%만이 하위40%로 하락하였다. 반면 중산층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상위20%로 올라갈 확률은 13%, 하위40%로 떨어질 확률은 31%였다. 또한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 미국 하버드 대학 커뮤니티)의 보고서에 따르면, 하바드 대학 학부생의 45.6%는 부모의 연소득이 20만 달러를 초과하였다. 연소득 20만 달러는 상위 3.8%에 해당한다. 반면 하위60% 부모 밑에서 자라난 학부생은 불과 18%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미국 상위 146개 대학의 학부생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74%는 부모의 연소득이 상위25%에 속했으며, 10%만이 하위50%에 속하였다. 소득불평등의 대물림을 주장하는 연구에 맨큐는 논문에서 우성학적 주장을 펼치는 과감함도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부모와 자녀는 유전자를 공유한다. 이것은 기회가 균등한 세계에서조차 세대 간 소득 ‘불평등’이 지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IQ는 상당한 정도로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 똑똑한 부모들이 똑똑한 자녀를 가질 가능성이 높으며, 높은 지능은 평균적으로 높은 소득에 반영된다. 물론 아이큐가 재능의 유일한 척도는 아니지만, 통제력·집중력·대인 관계와 같은 다른 능력들도 마찬가지로 유전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유전적 영향은 동일 시점에서 교육적 성과의 차이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왜 1970년대와 2000년대에 유전적 영향이 상이한 경제적 결과를 차이를 초래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위 그림은 상위20%와 하위20%가 자녀에게 지출하는 비용의 차이를 시대별로 비교한 그림이다. 맨큐가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인 1970년대 중반만 해도, 부모가 자녀에게 지출한 비용의 차이는 약 4배에 달했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인 2000년대에 그 격차는 6.7배로 증가하였다. 세 번째 비판은 이코노미스트의 따끔한 비판이다. “1%는 더 나은 변론자가 필요하다(The 1 Percent needs better defenders).”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코노미스트와 같은 보수적인 잡지에서 조차도 맨큐와 같은 부실한 논리로는 안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일부만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CEO들에게 높은 보수를 주는 사회적 목적은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열심히 일하라고 인센티브를 부여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그들은 1980년대에 그들의 전임자들이 받았던 보수의 두 배를 받고 있다. 과연 우리는 그때보다 더 나은 경영성과를 보고 있는가? 의료 기술 또는 상업용 부동산 등에서 더 나은 생산적 혁신을 보고 있는가? 우리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고 있는가? 우리의 생활수준이 더 빨리 나아지고 있는가? No, no, no and no. 계급으로서 지금의 CEO들이 한 세대 전 전임자들이 벌었던 것의 몇 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공공의 이익이 달성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 상위1%의 노동이 생산한 사회적 가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구조적 원인들로 불평등은 증가하고 있다.” * 원문 게재 사이트: ●http://krugman.blogs.nytimes.com/2013/06/22/greg-mankiw-and-the-gatsby-curve/●http://www.cepr.net/index.php/blogs/beat-the-press/the-bigger-problem-with-mankiws-plan-to-give-everything-to-the-one-percent?utm_source=feedburner&utm_medium=feed&utm_campaign=Feed%3A+beat_the_press+%28Beat+the+Press%29●http://www.washingtonpost.com/blogs/wonkblog/wp/2013/06/21/the-complacency-of-the-meritocrats/?wprss=rss_ezra-klein●http://www.economist.com/blogs/democracyinamerica/2013/06/inequality?spc=scode&spv=xm&ah=9d7f7ab945510a56fa6d37c30b6f1709*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PDF 아이콘을 눌러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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