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6월 항쟁

By | 2013-06-11T14:29:35+00:00 2013.06.11.|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인태연 유통상인연합회 공동대표일 것이다. 그는 저잣거리의 언어로 핵심을 찌른다. 그의 말은 감성을 먼저 자극하기 때문에 허를 찔린 상대는 허둥대기 일쑤다.그가 또 하나의 감투를 썼다. 이번엔 ‘전국 을 살리기’ 공동대표다. 지난 일요일 그는 을들의 분노로 뜨겁게 달궈진 ‘경제민주화 국민대회 및 전국 을들의 만민공동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덥죠? 죽겠죠? 하루 하루 피가 마르는 ‘을’의 현실은 더 지옥같습니다”정치인 중에서 인 대표와 같은 화법을 쓰는 사람이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다. 그는 이 대회를 26년 전의 6월 항쟁에 비유했다. 요컨대 그 해 여름 국민이 ‘직선제 개헌’이라는 구호로 ‘정치적 민주주의’를 요구했다면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국민은 “지옥에서 벗어나자”며 ‘경제 민주주의’를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1인당 국민소득으로 치자면 지금 우리는 1987년에 비해 7배쯤 잘 산다. 그런데 왜 최근 편의점주들이나 대리점주,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줄줄이 자살하는가. 굳이 키에르케고르를 빌지 않더라도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은 절망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통계를 통해 간단히 돌아보면 해방 이후 우리 경제사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은 19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다. 1980년대 말의 ‘3저 호황’(물가, 원화가치, 금리)으로 수출이 대폭 증가하는 동시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임금이 인상되어 내수도 증가했다. 소득 분배를 나타내는 가장 간명한 지표인 지니계수도 떨어졌다. 이 모든 상황은 1994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내세워 금융시장개방 등 자유화조치를 취하면서 역전됐다.외환위기 이후에는 “나와 내 가족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 본능에 부동산, 금융재테크로 떼부자가 될 수 있다는 탐욕의 망상이 결합했다. TV 드라마는 실장님과 본부장의 화려한 삶을 반복해서 보여주었고 신데렐라의 환상 역시 재생산되었으며 신문은 나보다도 못할 것 같은 사람의 ‘대박’을 용케도 찾아냈다. 세상은 끝을 모르는 경쟁의 장이 되었다. 그 사이 지니계수는 치솟았고 사회경제의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진전됐다. 아무리 노력해도 거의 확률 제로인 승리를 위해 우리는 절망의 벼랑으로 치닫고 있다.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는 그런 세계가 결코 지속될 수 없음을 보여 줬다. 2012년 대선에서 국민은 ‘경제민주화’와 ‘보편 복지’를 요구했다. ‘갑을 관계’란 협동 속에 은폐된 착취를 웅변한다. 수직통합기업이든, 하청관계든, 아니면 프랜차이징(편의점)이든 모두 팀생산이다. 모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때, 즉 진심으로 협동할 때 전체의 이익이 가장 커지는 관계라는 말이다. 팀생산은 동시에 사회적 딜레마이기도 하다.누군가 열심히 일할 때 적당히 놀면서 전체의 이익을 공유하려는 사람, 즉 무임승차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경제학과 경영학은 대리인의 이런 행위를 잡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창안해냈다. 감시와 응징, 그리고 인센티브 제도가 그것들인데 대부분 을의 무임승차를 겨냥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갑의 무임승차가 문제인데도 말이다.이들이 팀생산 속의 권력관계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갑을관계 역시 자발적 계약으로 이뤄졌으니 시장의 물건 매매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과연 현실이 그러한가? 핵심은 한 마디로 “너 아니더라도 여기 들어오려고 줄 선 사람 많다”는 것이다. 경제양극화로 돈이 소수에게 집중된 결과 생겨난 수요독점이다.아마도 6월 국회에서 여러 가지 제도 개선이 논의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을들이 세력화하는 것이다. 하청기업들이, 소규모 유통상인들이, 편의점주들이, 아르바이트생들이, 비정규 작가들이 단결할 때 비로소 협동의 이익이 고루 나뉘고 전체의 효율성도 올라갈 수 있다.대회에서 청년유니온 한지혜 대표는 아르바이트생들과 편의점주의 연대를 선언했다. 바로 여기에 희망이 있다. 6월 항쟁 때 당시의 여당이 기사회생한 것은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 역시 을들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이들의 요구를 제도화해야 한다. 쥐어짜서 생산성을 높이려는 전략은 곧 한계에 부딪힌다. 을들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가 성공하려면 이런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글은PD저널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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