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혜 본색’과 중도

By | 2013-04-25T13:52:40+00:00 2013.04.25.|

필자는 ‘복지와 양립할 수 없는 정책들’(<PD저널> 2012년 2월 15일자)이라는 글을 통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와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은 세운다)는 복지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둘은 바로 시장만능 세계관의 한국판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에 유권 해석을 내렸다. 경제민주화란 “어디를 내리치고 옥죄는 게 아니라 각 경제 주체가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려서 일하면 꿈을 이룰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며 “누구의 희망을 꺾자는 것이 아니”란다.여기서 내리치고 옥죄어서 희망이 꺾일 주체는 물론 재벌이다. 박 대통령의 이어진 말은 그의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피부에 와 닿게 확실하게 규제를 풀어야 하며 그냥 찔끔찔끔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격화되는 국제 경쟁 때문이란다. 그에게 경제민주화란 재벌규제가 아니라 경쟁적 규제완화인 것이다.예를 들어 재벌의 무분별한 하도급 단가 인하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몇 배의 벌금을 물리는 것은 “어디를 내리치고 옥죄는” 규제를 추가하는 것이니 해선 안 될 일이다. 즉 그는 대선 때의 가면을 벗고 5년 전 공약이었던 ‘줄푸세’로 명명백백하게 돌아갔다. 가히 ‘근혜 본색’이다.아뿔싸.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걸까. 이에 질세라 민주통합당도 화답했다.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 강령·정책분과 위원장인 이상민 의원은 “경제민주화가 반(反)기업 정책으로 왜곡돼 여당의 공세에 말려든 부분이 있다”며 이를 ‘기업 지원’으로 바꾸고 “우리당이 지향하는 목표이자 가치인 보편적 복지가 때에 따라 당장 모든 부분에 무차별적인 복지를 펼친다는 오해를 부른 부분이 있다”며 이를 ‘선순환 성장’으로 포장했다.나아가 한미 FTA 재협상 당론도 폐기하려 한다. 이쯤 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이라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표심을 따라 여야 모두 그리도 목청을 높였지만 기실 이들은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의 기본 개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1인 1표에 따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 그런데 그 사회 안에 들어 있는 시장에서는 1원 1표에 의해, 기업에서는 1주 1표에 의해 의사결정을 한다. 즉 우리 사회에는 두 개의 상충하는 원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1원 1표의 원리란 돈 많은 사람은 시장에서 무한히 욕구를 추구할 수 있지만 돈 한 푼 없는 사람은 최소한의 필요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소득이나 재산의 분배가 불균형할 경우 이 원리에 따르면 인간의 기본권도 질식할 수 있다. 하여 식량, 의료, 교육 등 필수적인 필요(존 롤스가 ‘기본재’라고 부른 것)를 사회권으로 보장하는 것이 보편복지다.한편 1주 1표의 원리란 주식이 많은 사람이 기업의 중요한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더욱이 재벌들은 순환출자에 의해 1주 50표를 행사할 수 있으니 1%의 주식만 가지고도 전 계열사를 다 지배할 수 있다. 이런 ‘기업 괴물’(로버트 달의 표현)의 독재를 막자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결국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는 모두 1원 1표/1주 1표가 불러올 수 있는 기본권 침해를 완화하기 위한 장치다.지난 30년간 세계는 1원 1표/ 1주 1표의 원리로 사회와 정치마저 조직하려고 했다. 시장만능의 이 세계관이 신자유주의이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세계적 위기는 이 이데올로기의 파산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여야가 힘을 합쳐 망해 버린 구체제로 돌아가려 용을 쓰고 있는 것이다.신자유주의가 몰락했다면 그 주장을 앞서서 실천했던 정치 세력은 교체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제3의 길’, 즉 중도를 내세워 신자유주의에 끌려갔던 영국의 노동당과 독일의 사민당이 신자유주의의 위기라는 절호의 기회에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새삼, 지리멸렬하고 있는 우리의 진보정당들이 안타깝다.* 이 글은 시사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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