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된 자본, 세계화되지 않은 민주주의

By | 2013-03-20T11:47:50+00:00 2013.03.20.|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년이 지나면서 한 해 동안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입 실적을 두고 해석이 제각각이다. 세계경제 침체로 인해 지난 1년 동안 무역 신장률은 극히 저조했다. 그 와중에 대미 수출이 4.1%로 그나마 전체 수출 증가율을 상회한 것을 두고 정부는 한미FTA 효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반대로 FTA를 맺은 지 2년 가까이 된 EU의 수출이 -11.4%로 폭락한 것은 유럽 위기 탓이란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자의적 해석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정작 자유무역과 자유시장, 개방과 세계화가 정말 의심할 여지가 없이 우리 경제와 국민의 삶에서 늘 긍정적이기만 한 것인지 반성적으로 돌이켜 보려는 조짐은 전혀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되고, 이후에도 회복의 실마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세계화라는 요인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유럽 위기야 말로 통화동맹을 추진하며 내걸었던 ‘하나의 통화, 하나의 시장’이라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현실에서 실패로 돌아가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런데 현재 세계경제는 과연 얼마나 ‘세계적’일까. 얼마나 한미FTA와 같은 자유무역이 일반화돼 있을까.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를 가진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일반적인 통념과 전문가의 대체적인 의견과 달리 국제경제의 통합은 놀랄 만큼 제한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상품무역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워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자본의 이동은 자유롭고 빠르게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이 점에서 가장 세계화된 것은 자본이 아닐까 싶다. 대니 로드릭은 가장 세계화된 자본조차도 일반적인 포트폴리오의 원리에 입각한 적정량보다 많은 양의 자산을 자국시장에 투자하고 있고 국가 간 금리차이도 여전하다고 지적하고 있지만.그러나 자본의 세계화와는 정반대로 노동은 전혀 세계화돼 있지 않다. “대부분의 나라가 노동인력의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나라가 오히려 예외적”이다. 각 국가들이 국경을 넘는 노동인력을 통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언어적·사회적·문화적 장벽으로 인해 국경을 넘어 취업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로존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자본은 금리가 높고, 임금이 싸며, 지대와 세금이 낮은 곳을 찾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노동은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찾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국경을 넘어 세계화되기 더 어려운 것도 있다. 바로 정치다. 행정권력·입법권력·사법권력은 국민국가라고 하는 국경을 한 발자국만 넘어서도 거의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유엔을 포함한 각종 국제기구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초국가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데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정치권력과 정치제도는 자본의 세계적 활동을 위해서는 장애요인일 수밖에 없다. 자본은 정치를 세계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예 각 국가의 정치영역을 축소시킴으로써 자본 세계화를 실현하고자 한다. 때문에 자본은 작은 정부라는 이름 아래 시장에 간섭하지 말 것을 각 국가에게 요구하거나 투자자국가제소권(ISD) 같은 제도를 동원해 각 국가의 고유권한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정치와 함께 세계화되지 못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민주주의다. 아직까지 인류는 국경을 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민주적으로 대의하고 민주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직을 세계시민이 민주적 투표로 선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1국1표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다못해 통화동맹을 맺은 유로존조차 유럽 집행위원회, 유럽 중앙은행 등 모든 유로기구와 대표들은 전혀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경제력이 막강한 독일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트로이카(국제통화기금·유럽중앙은행·유럽집행위원회)가 남유럽 국가들의 민주적 의사와 대립하는 긴축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이처럼 세계는 의외로(?) 세계화돼 있지 않다. 오직 자본만이 상대적으로 높은 세계화를 달성하고 그 이익을 누리고자 할 뿐이다. 정보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세계는 점점 더 빠르게 소통하고 점점 더 가까운 느낌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됐고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 정보가 지구적 차원에서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서 사람들의 생활이 지구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지구 반대편 사람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세상이 됐다고 해서 지구 반대편으로 실시간으로 이동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소리는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안정된 직장과 민주주의적 사회에 살면서 세계와 더 가깝게 소통하는 것이다. 오직 자본만의 세계화로 인해 일자리가 위협받고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그런 세계화의 세상에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세계화된 만큼 노동과 민주주의를 세계화시킬 수 없다면, 노동과 민주주의가 잘 보호받는 정도만큼 자본의 세계화 수준을 조절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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