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의 공언대로 “국민행복시대” “100% 대한민국”은 열릴 것인가? 우선 국민행복시대의 핵심어인 행복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경제학이 행복에 관심을 가진 건 최근의 일이다. 피구 이래로 경제학은 행복을 소득(GDP)으로 대체했고 대부분의 정부 정책도 GDP 증가, 즉 성장에 맞춰져 있다. 이런 흐름에 최초로 파문을 일으킨 것이 저 유명한 ‘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털린은 1974년 일정한 수준(대체로 1인당 GDP 1만5000달러에서 2만 달러 정도)을 지나면 국민소득의 증가가 그만큼의 행복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각종 행복 지표에서 하위권에 속해이후 이 명제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대파는 주로 횡단면 분석과 단기 시계열에서 소득과 주관적 삶의 만족도가 비례한다는 사실을 찾아냈고, 이스털린 쪽에서는 장기 시계열에서 둘 사이에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나는 통계 해석에서도 이스털린 쪽을 지지하지만, 직관적으로도 소득이 늘어난다고 해서 꼭 그만큼 주관적 만족도, 즉 행복이 증가할 거라고 보지 않는다. 실제로 이스털린의 위 논문을 보면 한국은 평균 5% 남짓의 성장마다 0.4% 정도만 삶의 만족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쨌든 이스털린의 이 주장은 행복경제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일반 사회조사’나 ‘세계 가치조사’ ‘유로 바로미터’ 등의 조사에는 “종합적으로 볼 때 당신은 요즘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당신의 최근 건강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주관적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주관적 행복도(삶의 만족도)와 소득이나 교육과 같은 객관적 지표를 합치면 ‘행복지수’를 구성할 수 있다. 어떤 지표를 집어넣고 얼마의 가중치를 곱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사뭇 다르겠지만.불행하게도 우리 국민은 별로 행복하지 않다. 스티글리츠 등의 보고서에 따라 주관적 행복 지표를 적극 반영한 OECD의 ‘더 나은 삶 지표’(Better Life Index·BLI)를 단순 가중평균하면 34개국 중 22위, 한성대 이내찬 교수 방식으로 가중치를 곱하면 32위이다. 특히 생태의 지속가능성, 사회적 자본 부문이 최하위이다. 세계 가치 조사에서는 37개국 중 28위(2007년), 영국 신경제재단의 국가별 행복지수에서는 178개국 중 102위, 보건연구원의 행복지수로는 36개국 중 25위이다. 특히 우리의 행복지수를 깎아내리는 요인은 소득 불평등, 젠더 불평등 따위 각종 불평등이다. 일반적으로 소득 분배가 잘 되어 빈곤가구가 적은 나라가 치안 상태와 성차별에서 나은 성과를 보인다. 한국은 1995년경부터 급격하게 소득 분배가 악화되고 있어서 이 점을 방치하면서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 잡기’에 가깝다. 그럼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국민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보고서 ‘국정 비전 및 국정 목표’, 그리고 ‘국정 과제’까지 훑어보았다. 훌륭하다. 성장률 대신 고용률을 내세운 것, 사회적 자본을 곳곳에서 강조한 점,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 쾌적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 신뢰받는 정부 등은 모두 행복을 늘리는 주요 요소이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목표들을 실행할 구체적인 정책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10년 전에도 관료들이 하던 얘기들이 새로운 제목 아래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나아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자활기업, 마을기업 등 공동체적인 경제 주체들을 활성화시키는 ‘두 번째 새마을 운동’을 제안할 것”이라는 대통령 측근의 발언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 운동도 당시 우리의 지역공동체에 풍부하게 존재하던 사회적 자본, 예컨대 두레나 계, 각종 조합들을 말살했고 농협을 어용조직으로 만들었다. 이제 겨우 폐허 위에서 다시 꿈틀거리는 사회적 경제를 중앙 정부에서 하향식으로 조직하겠다니. 정부3.0도 마찬가지다. 일방향의 정부1.0, 쌍방향의 정부2.0을 넘어서 정보의 개방과 공유, 소통과 협력의 정부를 만들겠다는 참으로 아름다운 목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인수위부터 최근의 인사까지 한 일을 보면 박정희 시대의 정부1.0에도 못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데 답이 있는 게 아니다. 지난 선거의 쟁점이었던 경제 민주화(시장에서의 분배 개선), 보편 복지, 그리고 사회적 경제와 생태 혁신이 그 답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만 제대로 지켜도 ‘국민행복시대’의 문은 열릴 것이다. *이 글은 시사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