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박근혜 정부는 핵심 국정목표로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내세웠다. 대통령 취임 전 발표한 140대 국정과제 중 첫 번째로 ‘과학기술과 사람 중심의 선도형 창조경제로의 전환을 통해 성장 잠재력 제고와 좋은 일자리 창출이 선순환되는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 구축’을 꼽았으며,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창조경제를 힘주어 강조했다. 대체 창조경제란 무엇일까? 2001년 영국의 경영전략가 존 호킨스(John Howkins)는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라는 책에서 “창조는 새롭지 않고 경제적이지 않은 요소들을 결합시켜 특수한 가치와 부를 생산해내는 것”이라고 칭하며, “예술에서부터 과학 기술에 이르는 광범위한 15개 산업”을 창조경제라 불렀다. 그는 2000년 당시 전 세계의 창조경제 가치는 2조 2천억 달러에 이르며, 매년 5%씩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이후 2003년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이라는 책을 쓴 토론토대학의 리차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창조는 지식이 아니다. 창조는 종합하는 능력이다. 자료와 지각, 실체를 종합하여 새롭고 유용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0년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창조경제 보고서(Creative Economy Report)’에서 창조경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창조경제는 잠재적으로 경제 성장과 발전을 유도하는 창조 자산(creative assets)을 근거로 한다. 창조경제는 사회 통합과 문화적 다양성, 인간개발을 이룸과 동시에 소득을 증가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수출을 증대시킬 수 있다. 창조경제는 기술, 지적재산, 관광산업과 상호작용하는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측면을 포괄한다. 창조경제는 경제 전반에 있어서 거시와 미시의 차원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와 경제발전에 관한 지식기반 경제 활동이다. 창조경제는 혁신, 다면적 정책 대응, 관련부처간의 협업을 요구하는 실현가능한 발전 방식이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창조 산업이다.” 하지만 여전히 창조경제의 개념은 모호하다. 새 정부는 방송을 강조하며 콘텐츠, 소프트웨어 등에 과학기술의 결합 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 충분한 걸까?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그 내용은 무엇일까? 청와대 수석비서관들도 이런 고민이 들었던 모양인지 지난 10일 전문가들을 초청해 창조경제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강의의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새 정부가 창조경제에 대해 고민할 때 참고했으면 하는 글이 있어서 요약 소개한다. 올해 1월 미국 경영 잡지 포브스에 실린 스티브 데닝의 글이다. 데닝은 세계은행에서 일했으며, 리더십과 경영 분야의 전문가이다. 데닝은 “미국은 창조경제로 전환하고 있는가?” 라는 글에서 지금 미국에게 필요한 변화는 ‘공장경제(factory economy)’에서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경기침체는 단순히 금융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실물경제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위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츠의 분석을 소개하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흔히 1930년대 대공황의 원인으로 통화공급 축소와 그로 인한 은행의 위기를 꼽지만 이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에 대공황은 미국 경제가 농업경제에서 제조업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진짜 원인은 산업의 변화와 그로 인한 대량 실업이라는 실물경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지금의 위기도 대공황과 마찬가지로 경제의 국면 전환이 근본 원인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어떠한 국면 전환인지에 대해서는 스티글리츠와 데닝의 시각이 조금 다르다. 스티글리츠는 제조업경제에서 서비스업경제로의 전환이라고 보았지만, 데닝은 서비스업만으로 경제성장이 유지될 수는 없다고 지적하며 지금 필요한 전환은 공장경제에서 창조경제로의 전환이라고 보았다. 그가 말한 창조경제는 ‘혁신(innovation)’을 원동력으로 하며,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으로 만들어졌으며, 계속해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경제이다. 주목할 것은 이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기업들이 단기 금융 수익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단기 주주 가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출 경우, 노동자들의 창조적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거나 소비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게 되므로 지속적인 혁신을 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창조계급의 등장을 이야기한 리처드 플로리다 역시 강조한 바라고 한다. 또한 현재는 과잉자본의 상태로 점차 자본수익률은 낮아지고 있으므로 기업이 더 이상 여기에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는 창조경제를 위해서 민간부문은 주주 가치에서 벗어나 소비자 가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정부는 대공황 때 그러했던 것처럼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회기반시설, 기술, 교육에 대한 방대한 투자가 필요하며, 어떤 경제에서도 일자리 창출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조경제는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가 처한 위기를 돌파하는 실용적인 수단이 되어야 한다. 스티브 데닝은 지금의 위기를 경제의 전환 국면이라 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자본수익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통한 부를 창조하는 것이 창조경제라고 말하고 있다. 노동자의 창조력을 보장하고, 소비자에게 신뢰를 제공할 때 창조경제는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창조경제는 어떠한가? 미국은 창조경제로 전환하고 있는가?(Is the US in a phase change to the creative economy?)2013년 1월 31일포브스(Forbes)스티브 데닝(Steve Denning)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츠는 베니티 페어(Vanity Fair)에 실린 글에서 ‘미국 경제는 경제의 근본적인 전환을 진행하고 있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중략) 스티글리츠는 최근의 경기 향상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경제회복과 비교한다면 “경제 회복”은 아직 멀어다고 말한다. 감기가 아니라 당뇨병 왜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보는가? 막대한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은 경제를 위기 이전으로 되돌려놓았다. 스티글리츠 주장의 핵심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것이다. 경제는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문제는 이전 상태의 경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안좋다는 사실이다.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은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픈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은행 시스템 개선만으로 경제를 바로잡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이미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에 폭발하고만 경기 붐은 불안정한 부채로 조장된 환상이었다. 비록 미국 기업은 여전히 정보기술혁명을 선도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 노동자들의 소득은 침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미국의 하위 80%는 그들 소득의 110%를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부채수준은 주택거품을 통해 가능했다, 연방준비위원회(연준)은 은행들이 주택거품을 조장하도록 도왔다. 거대한 환상에 의해 결정된 자산 가치에 기초해서 조정이 이루어졌을 뿐이다.(중략) 스티글리츠는 은행 시스템을 개선해서 경제가 건전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이며, 경제를 과거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상황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경제의 상태를 한 차례 지나가는 감기로 보았겠지만, 사실은 당뇨와 같은 만성 질병으로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다. 대공황과의 유사성 스티글리츠는 지금의 상황을 대공황과 비교하여 충격을 더한다. 대공황은 종종 은행 시스템의 붕괴로 인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전통적인 견해는 연준이 통화공급을 줄여서 공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만약 연준이 통화 공급을 늘렸다면 폭발 직전이었던 대공황을 피할수 있었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들 사이의 이러한 불변의 믿음은 왜 연준이 지금 과도하게 통화공급을 늘리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대공황의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1933년 은행 위기는 대공황의 원인이 아니다. 은행 위기는 농업경제에서 제조업경제로의 전환이 반영된 것일 뿐이다. 1933년 금융위기는 대공황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당시 발생한 실업자들은 경제의 성질이 전환되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1900년에 국가 전체적으로 미국 인구 중 많은 사람들이 농산물 생산에 기여하고 있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농업 기술이었지 사람이 아니었다. 1930년대 초반 여전히 전체 미국인 중 5분의 1이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실제 필요한 생산인구는 훨씬 더 적었다. 오늘날 미국인의 2%가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농산물을 생산한다. 스티글리츠는 대공황은 더 이상 농장에서 필요없어진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대공황 당시 은행 시스템의 붕괴는 1933년까지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다. 대공황이 시작되고 실업이 치솟기 시작한 후에도 은행은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반면 1931년에 실업은 이미 16%에 달했다. 1932년에는 23%에 달했다. 실물 경제에서의 구조적 변화가 대공황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1920년대에 생산성 증가는 가속화되었고, 농산물 생산량은 소비량보다 빠르게 증가했다. 가격과 임금은 급속히 떨어졌다. 지금의 노동자들처럼 당시의 농부들은 생활 수준과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금융위기는 그 결과였다. 농부들이 부채를 갚을 수 없게 되자 그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파산하였다. 1933년 위기 이후 경제는 거의 1년 동안 비틀거렸다. 경제는 세계 2차 대전이라는 우연한 결과로 회복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지출은 의도치 않았지만, 반드시 필요했던 경제 구조의 전환을 이루었다. 농업에서 제조업으로의 전환이었다. 실물 경제의 위기 스티글리츠는 오늘날 은행 분야의 문제를 실질적인 해결에 필요한 집중을 분산시키는 요소로 보고 있다. 은행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필요한 노동자는 어떤 이들인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는 과정에 있다. 실물 경제는 수십년동안 고통스러운 전환 단계에 있었다.실물 경제의 위기는 대공황 때와 마찬가지로 최근 대침체의 원인이다. 스티글리츠는 대공황의 기원과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대침체의 기원 사이에서 강력한 연관성을 보았다. 대공황 당시 농업에서 제조업으로의 경제 전환이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경제로의 이동을 앞두고 있다. (중략) 창조경제로의 전환 대공황이 농업에서 제조업으로의 국면 전환이었다면, 오늘날의 전환은 무엇인가? 스티글리츠는 제조업에서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이라고 본다. 서비스 경제는 확실히 미국 경제가 갖고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다. 하지만 서비스 경제는 본질적으로 미국인의 성공 신화가 되기 어렵다. 만약 모든 미국 노동자들이 잔디를 깎고, 머리를 자르고, 원자재를 수출하되 제조업은 해외에서 수입한다고 하면 국가의 부는 커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실제로는 제 3세계 경제가 될 것이다.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서비스 경제는 급격한 임금 하락, 생활수준 감소를 가져올 것이고 정치적으로 수용되기도 어렵다. 대신에 필요한 전환은 공장 경제에서 창조경제로의 전환이다. 창조경제는 제조업과 서비스 두 분야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창조경제의 원동력은 혁신이다. 이 경제는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으로 만들어졌으며, 계속해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더 빠르게 전달한다. 창조경제는 단기 금융 수익에 초점을 맞춘 기업이 아니라 신뢰에 기반한 장기 소비자 가치를 창조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리차드 플로리다의 책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에 나타나듯이 말이다. 민간 부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대기업은 창조경제의 출현에 잘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큰 기업들은 여전히 규모의 경제에 기반하는 공장경제에 걸맞는 마음 상태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원칙적으로 단기 주주 가치 극대화에 집중한다. 그들은 지속적인 혁신을 꾀하지 않는다. 그들의 경영방식은 노동자들의 창조적인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는 방식이 아니다. 자산수익률과 자본투자수익률은 수십년동안 점차 감소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현재 과잉 자본화되어 있으면, 침체된 경제 상황에서 자본을 생산적인 곳에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기업들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주는 것은 경제를 되살리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이다. 이런 기업들이 이제까지 주주 이익 극대화를 고수해왔다. 잭 웰치는 이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생각” 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창조 경제 속에서 성과를 거두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우리는 주주 가치에서 벗어나 소비자로 기업의 초점을 되돌려야 한다” 토론토 대학의 경영학과 학장 로저 마틴(Roger Martin)은 <게임 바꾸기(Fixing the Game)>에서 말했다. “우리의 주된 기업 이론은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 현재의 이론은 기업이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업은 기업의 중심에 소비자를 두어야 한다. 기업은 소비자들을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 주주의 수익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지급해야 한다.“ (중략) 애플과 아마존, 세일스포스와 같은 기업들은 그런 길을 보여주고 있다. 변화를 선택하지 않는 기업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선택은 명확하다. 소비자를 기쁘게 하거나 죽거나. 창조경제는 부분적으로 제조업 위에 세워질 것이다. 창조경제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조업에서의 일자리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제조업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중략) 그런데 사실 제조업의 하위 분야 중 일부는 단기 수익 추구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 제조업의 해외생산을 통해 경영자들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 그들은 운송, 재고 관리, 품질 문제, 판매, 마케팅, 재분배 등에 들어가는 추가비용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배울 수 있는 기회와 지혜를 잃어버림으로써 발생하는 장기 비용을 간과한다. (중략)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스티글리츠는 “우리가 80년전에 했던 것처럼 거대한 투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의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고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공공 투자는 민간 부문의 수익을 증가시킨다.” 고 말한다. 그는 수십년동안 인프라, 기술, 교육에 대한 방대한 투자를 할 것을 제안한다. “중소기업, 특히 신규 중소기업은 어떤 경제에서든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다. 그들은 특히 심한 타격을 받았다. 은행이 위험한 투자에서 벗어나 과거의 지루한 기업 대출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스티글리츠는 묻는다 “우리가 실제로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국제 전쟁 없이도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답한다.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정치는 대통령이 케냐에서 태어났느냐 아니냐, 국가가 부채를 상환해야 하느냐 아니냐, 사람들이 의료보험을 받아야 하느냐 아니냐, 국가가 인프라를 유지해야 하느냐 마느냐 따위의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일어날 것이다. 경제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될 것이고 고통이 너무 커져서 그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국면전환에 부딪혀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이용할 것인가이다. 거대한 기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우리가 상황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거대한 경제적 변화에 의한 불가피한 변화라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래가 제공하는 기회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여정에 대해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최대한 고통없이 빠르게 전환을 이루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창조경제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기회이다. * 원문 게재 사이트: http://www.forbes.com/sites/stevedenning/2012/01/31/is-the-us-in-a-phase-change-to-the-creative-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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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자본 수익에서 벗어나는 것이 창조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