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여전히 경제현실을 반영한다

By | 2013-02-28T08:33:43+00:00 2013.02.28.|

지난해 대선 결과를 놓고 제기된 가장 큰 의문은 “유권자가 자신의 경제적 처지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유권자가 계급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소득 불평등은 더욱 심해지고 중산층이 붕괴돼 왔다. 여기에 친기업 정책을 강행해 온 집권당과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 큼에도 불구하고 집권을 연장하는 쪽으로 유권자가 투표를 했으니 계급투표의 실종을 개탄할 법도 하다.그러나 사실 농촌지역 유권자나 상당수 저소득 유권자가 자신들의 경제적 처지에 반해 보수 성향으로 투표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충분하고 원활한 정보소통과 공유가 부족한 점도 있을 것이다. 단기적 경기변동에 민감한 도시상인들이 대체로 보수적 투표 경향이 컸던 것 역시 오래된 일이다. 또한 새로 사회에 진입해야 하는 청년들이 장년·노년 세대보다 개혁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도 특별할 것이 없다. 이번 선거에만 나타났던 특징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경제적 처지에 따라 행동하며 정치도 여기에 반응한다는 가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잠시 무대를 미국 정치로 옮겨 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정치의 분열과 갈등 양상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극심하다. 초기 금융부실을 처리하는 방식을 둘러싼 대립에서 시작해 공적 의료보험을 확대하는 개혁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은 경제위기 와중에 미국 시민들을 더욱 피곤하게 했다. 특히 긴축을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극한 대립은 2011년 8월 역사상 최초로 미국 신용등급 강등사태를 촉발시키기도 했다. 올해 초 재정절벽(fiscal cliff)의 위험을 자초하기도 할 정도였다. 이를 두고 ‘정치적 양극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 정당들의 이념 변화나 지지율 변화, 그리고 양당 사이의 갈등 정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전쟁문제나 인종문제도 있지만 연구 결과 여전히 소득 불평등 심화 정도가 강력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박복영 경희대 교수는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념 분열은 소득 불평등 심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격차의 확대가 이념의 격차 형태로 반영되고 결국 정치적 갈등으로 표면화됐다”는 결론을 내렸다.(‘미국의 소득 불평등, 정치 양극화 및 입법 효율성’)조사 결과 미국 저소득 계층에서 민주당 지지도가 뚜렷이 높고 고소득 계층에서 공화당 지지도가 분명히 높았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권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소득 계층별로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소득 불평등이 심화할 경우 핵심 유권자층 중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고 이로 인한 보수화가 더 지배적인 영향을 발휘한다. 알려진 대로 미국은 신자유주의화가 시작된 80년대부터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기 시작해 금융위기가 터지기 시작했던 2007년에 최고조에 달했다. 같은 시기에 정치적 양극화도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하는데, “그 주된 원인이 민주당의 좌경화보다는 공화당의 우경화 혹은 보수화에 있다”는 것이 연구 결과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돼 감에 따라 상위 핵심 부유층의 영향권 범위 안으로 정치가 점점 더 편입되고 보수화돼 간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삼성 공화국’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처럼 이미 절대 경제권력을 넘어 사회적 권력으로 고착화된 것이 한국의 최상위 재벌이다. 경제·정치·관료·검찰·언론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재벌의 영향권에 정치는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소득 불평등의 심화를 촉진했다. 이와 같은 소득 불평등 심화와 정치 보수화의 악순환은 결국 시민들의 직접적 저항이 있을 때 멈추게 된다. 극우 티파티 운동의 발흥까지 막 나간 미국 정치 보수화에 제동을 건 것은 2011년 월가 점령운동이었다. 한국에서 다수 국민들의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불평등 해소와 반대로 갔던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대한 강력한 거부의 표시였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액면 그대로 보수와 개혁을 대변했다면 새누리당이 지난해 양대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보수적인 새누리당과 박근혜 당시 후보가 계속 대기업과 최상류층의 이익을 액면 그대로 대변하지 않고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의 레토릭을 전면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치적 왜곡이 발생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어떻게 투표하는 것이 진정한 계급투표일까.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쨌거나 새누리당은 재집권했고 태생이 보수적인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의 수반이 됐다. 이들의 재집권은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는 가운데 극우 부유층과 대기업의 슬로건이 아니라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 구호로 가능했다. 이 지점이 집권 연장에 성공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서 있는 칼날 위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소득 불평등과 정치 보수화의 악순환 속으로 다시 뛰어든다면 시민들의 저항이라는 제동장치가 다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1 개 댓글

  1. boskovsky 2013년 3월 24일 at 10:40 오후 - Reply

    투표기준은 미래의 일을 함의한 공약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로 보통 하는 것입니다. 이렇기에 계급 투표라고 하는 개념을 공약이나 미래를 상징하는 프레임에만 맞추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죠.
    자영업인의 투표도 언급했으니 이야기를 합니다만 이 계층은 보통 부동층이라고 생각하면 맞습니다. 즉 분위기에 따라 어느 편의 추가로 들어갈 것인가를 보고 하는 것이죠. 만약 언급문서나 박노자의 어느 문서 처럼 안정만을 희구한다고 하면 희랍/그리스 같이 한국보다 자영업인 비율이 높은 곳에선 사회당(PASOK)과 같은 정당의 집권은 없었어야 맞겠죠.
    다시 돌아오면 원래 처지랑 안 맞는 투표는 다소 문화적 경험문제를 봐야 확인이 가능한 문제라고 합니다. 이 점은 슬라보예 지젝의 확인으로 가능하고 만약 경제적 이해관계가 처지라는 이유만으로 한다면 미래 투영 아니 과거의 투영이라고 해도 투표에서 특정 진영의 연속 승리 또는 연속 패배 등의 이해 불가능한 일이 없어야 하지만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문화적 경험의 차이라고 합니다.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