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술가들이 부럽다. 그들은 미래를 온몸으로 느끼고 문학은 문학대로, 미술은 미술대로, 또 음악은 음악대로 각각 표현해낸다. 그들은 타고난 예언자다. 그런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학자들은 미래를 과거와 현재로부터 추론해야 한다. 불행히도 이 또한 쉽지 않은데,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라면 과거와 전혀 다른 이론체계를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아무리 팍팍한 경제학을 한다 하더라도 대가들은 상당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술가들처럼 미세한 떨림까지 느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미래의 큰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을 새로운 이론으로 설명하고 답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르크스가 그렇고 케인스가 그렇다.느낌까지 갈 것도 없는 뻔한 미래에 대해서도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평범한 학자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생태문제가 그렇고, 또한 교육이 그렇다. 되풀이하고 또 되뇌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미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대한민국’ 전체를 잡아먹을 것이다. 생태문제 역시 이젠 발등의 불이며, 한 나라를 넘어 전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그런데 왜 현재의 대선에서 현재의 삶을 위협하고 미래의 삶을 압살할 것이 틀림없는 이 두 문제는 쟁점조차 되지 않는 것일까? 박근혜 후보는 물론이고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공약에서도 생태와 교육은 뚜렷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내 여태까지의 공부로 볼 때 현재의 경제학 수준으론 생태문제의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 애로와 다스굽타와 같은 당대의 최고 주류경제학자들의 최근 논문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생태문제의 핵심 개념인 ‘지속가능성’을 브룬트란트 리포트(1987)에 따라 “미래 세대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훼손하지 않고 현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정의한다. 이는 추상적인 차원에서 미래 소비의 현재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년 후에도 우리 아이들이 지금 우리처럼 소비할 수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이제 경제학자들에게 생태문제는 미래 세대의 행복의 가치를 얼마나 할인하느냐의 문제와 자연자원과 물적자원의 대체 가능성, 즉 기술적 발전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느냐의 질문으로 좁혀진다. 예컨대 극단적으로 하루살이에게 미래 할인율은 1이 되어 생태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기술의 무한한 발전이라는 가정 하에서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자동적으로 에너지 절약 기술을 출현시킬 것이기에 생태문제란 기우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결국 합리적 미래 할인율과 합리적 대체 가능성의 추정이라는 끝없는 논쟁에 빠져들게 된다(무의미하다는 얘긴 아니다).불행하게도 우리의 민주주의도 믿음직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만일 민주주의를 다수결로 단순화한다면 생태문제에 관한 투표 결과는 번번이 실망스러울 것이다. 예컨대 할인율을 낮게 잡는다면, 그리고 기술 개발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경우, 100년 뒤의 아이가 우리와 똑같이 에너지를 쓰게 하려면 우린 당장 우리의 에너지 소비를 제로로 줄이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미래의 아이들은 물론 이렇게 현재의 소비를 대폭 줄이는 데 투표할 것이다. 반면 보통의 어른들은 경제학자들의 의견 대립을 이유로 결단을 유보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미래를 살아야 할 현재의 아이들은 물론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아이들에겐 투표권이 없다.얼치기 경제학자의 결론은 생태정치가 시민들의 예술가적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의 대체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으며 앞으로 닥칠 에너지 위기는 70년대의 오일쇼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라는 것을 절감하도록 해야 한다. 핵발전 문제는 아주 좋은 소재다. 그 위협을 실감한 경험이 그리 오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발전을 중지시키려면 에너지 소비를 3분의 1 가량 줄여야 한다는 결론도 바로 나온다. 소비절약에 합의하지 않는 한 에너지 절약 기술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제본스 패러독스). 지금 내 책상 옆에 쌓여 있는 논문 더미가 바로 그 증거다. 핵발전의 중지와 에너지 소비를 3분의 1로 줄이기, 그리고 이를 위한 생태세(echo tax)의 부과는 우리의 예술적 감성에 기댄 최소한의 대선 공약일 것이다. 누가 이런 공약을 제시할 것인가? 이번 대선의 내 선택 기준이다.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