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는 무엇에 분노했는가?

By | 2018-07-02T18:37:12+00:00 2012.05.11.|

2011년 노벨상 수상자이며, 아마 살아있는 경제학자 중 가장 유명한 이 중 한 명이라고 할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의 글을 소개한다.그는 이미오래전부터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비판하는 글을 꾸준히 써왔다.최근에는 월가 점령 시위에도 함께하면서 더 실천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아래 글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더욱 잘 드러난다. 꽤 긴 아래의 글에서 스티글리츠는 월가를 비롯한 전세계의 시위대들이 분노한 것은 ‘불공정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과 가진 자들의 부당한 이익 추구,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정부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불공정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부당한 이익 추구 행위는금융자본이 벌인 약탈적 행위 뿐 아니라 사회적 공익을 해치는 기업의 모든 행동까지를 의미한다. 국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담배회사나 환경을 파괴하는 화학회사가 대표적 사례다. 또한 은행은 구제해주면서 고통받는 실업자와 국민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 역시 사람들을 분노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런 분노는 나아가서 내가 선출한 정부가 나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각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스티글리츠는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은 사람 중심의 민주주의와 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 이 두 가지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은 점점 더 많은 지지자를 얻어가고 있으며,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놓고 있다며,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예감하게 하고 있다. 또한 시위대가 바라는두 가지 요구사항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 체제에서의 개혁 뿐 아니라 정치 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스티글리츠는근본적으로 정치 체제의 변화에 더 강한 방점을 찍고 있다. 돈이 아닌 사람 중심의 민주주의, 공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민주주의로 귀결되고 있다.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는 경제학자의 글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정치가의 연설문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그에 호응하는 99%의 함성도 들리는 것만 같다.99%가 깨어나고 있다(The 99 Percent Wakes Up)2012년 5월 2일 더 데일리 비스트(The Daily Beast)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불평등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랍의 봄은 세계 자본주의가 흔들리면서 비롯되었다. 노벨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말한다.마침내 세계가 들고 일어나 돈이 아닌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역사에는 그런 시기가 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며 변화를 요구하는 때 말이다. 혼란스러웠던 1848년과 1968년이 그러했다. 2011년도 확실히 그런 시기이다. 많은 국가에서 실업, 소득 분배, 불평등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드러났다. 지금의 체제가 공정하지 못하며 심지어 이미 붕괴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1848년과 1968년은 모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했다. 2011년도 그럴 것이다. 세계화가 가져오는 현대화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세계화는 사람들의 생각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것을 도왔다. 북아프리카 해변의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시작된 젊은이들의 봉기는 이웃 국가인 이집트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중동, 스페인, 그리스, 영국, 월가 등 세계 각지의 도시로 이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저항의 불꽃이 일시적으로 일어났다가 가라앉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작은 저항들이 사회적 대변동을 재촉하더니 이집트의 무바라크(Hosni Mubarak), 리비아의 카다피(Muammar Qaddafi) 등을 비롯한 정부와 정부 관료들을 끌어내렸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독재정권 하에 있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젊은이들이 봉기한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 곳에서는 더 이상 민주적 절차를 통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었다. 문제는 서구에서 선출된 정치세력 역시 실패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도 정치적 절차에 대한 엄청난 각성이 일어났다. 2010년 미국 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은 20% 라는 매우 낮은 수준의 투표율을 보였는데, 이는 그만큼 매우 높았던 실업률과 연결되어 있다.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선거 기간 동안,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Change we believe in)”를 약속했다. 하지만 재임 후, 지금의 경제적 재앙을 초래한데 책임이 있는 관료들을 기용하여 이전과 똑같은 경제 정책을 펼쳤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사회 구성원을 희생시키는 기성세대와 사회 지도층에 지쳐있었다. 하지만 월가점령 운동의 젊은 시위자들, 그리고 함께한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와 교사들 속에 희망의 징조가 있다. 시위자들은 혁명가나 무정부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체제를 전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만 있다면, 여전히 선거를 통한 절차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시위자들은 정부가 국민들의 의견에 귀기울이도록 체제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거리에 나왔다.스페인 젊은이들의 시위대 이름은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인데, 이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사람들은 매우 분노한 상태다. 미국 시위대의 슬로건은 “99%” 였다. 이 슬로건을 든 시위대들은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체제를 비판했다. 이는 내가 2011년 초 베니티 페어(Vanity Fair)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 글에서 나는 미국에서 불평등이 심각하게 확산되는 과정을 설명한 연구를 인용했다. 연구에 의하면 상위 1%의 사람들이 부와 자산의 40%를 차지하고, 소득의 20%를 차지했다. 다른 국가에서는 일자리의 부족과 평범한 사람들이 경제와 정치 체제로부터 배제된다는 생각이 분노의 원인이 되었다. 이집트의 활동가 내불시(Jawad Nabulsi)는 지금의 사회 체제가 상위층에 편향되게 형성되어 온 과정을 담은 글을 썼다. 그는 무바라크 통치 하의 이집트에서 가장 문제였던 ‘공정성’을 반복해서 지적했다. 시위자들에게 힘을 주는 것은 바로 세상이 불공정하다는 생각이다. 튀니지나 이집트 등 중동의 여러 나라들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정도가 아니다. 일자리를 얻으려면 정치적 커넥션이 필요하다. 미국은 조금 더 공정해보이지만, 표면적으로만 그럴 뿐이다. 최고의 학교를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은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불리하다. 왜냐하면 부자 부모들은 자녀를 최고의 유치원, 최고의 초등학교, 최고의 고등학교에 보낸다. 그들의 자녀는 명문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 상류층 학교 대다수에서 학생들은 거의 상위 25%에 속한다. 반면 하위 50% 이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경험과 훈련을 얻기 위해서는 인턴십이 필요하다. 좋은 인턴십을 구하려면 인맥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다. 돈을 벌지 못하는 인턴십 기간 동안에도 생활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가 필요하다.금융위기는 전 세계에서 ‘불공정’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만들어냈다. 지금의 경제 체제가 불공평하다는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과거에도 느꼈던 문제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지금 체제의 분배 방식, 즉 누구는 높은 소득을 올리고 누구는 낮은 소득을 받아야 하는 방식은 언제나 문제가 되었다. 불평등을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불평등이 필연적이며 심지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불평등은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커져갔다. 소득 불평등이 변화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풀이 자라는 것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루 지난다고 해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 이웃에 서브프라임 모지기로 인해 버려진 집이 있다면 한 눈에 알 수 있다. 몇 달 사이 빈 집에는 관목과 잡초가 빠르게 자라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변화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진행되어서, 이제 불평등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바로 이것이다.계급투쟁을 겪어보지 않은 미국에서조차 상위층에게 높은 세율을 부과해야 하며, 적어도 낮은 세율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상류층 일부는 자신들이 힘들게 일해서 부를 이루었으며, 이를 지키는 것이 권리라고 믿겠지만 실제로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많은 부자들이 이를 깨닫고 있다.) 가난한 이들 중에도 부자들보다 더 열심히, 힘들게 일하는 이들이 있다.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 받을 기회, 필요한 자금을 대출 받을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 그들의 경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물을 길어오고, 연료를 찾고,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데 오랜 시간을 보낸다. 선진국에서도 한 사람의 인생은 그가 어디서 태어나고, 부모의 소득과 교육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종종 운이 좋아서 좋은 때, 좋은 곳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런데 2011년 시위자들이 분노한 것은 단지 악화되는 불평등 때문만은 아니다.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소득을 벌어들인 이들이 있다는 점도 분노를 자극했다. 바로 불공정이다. 불공정은 튀니지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아랍의 봄을 가져오게 만든 것처럼 미국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월가를 점령하게 만들었다. 만약 누군가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그 결과로 막대한 소득을 벌었으며, 그것이 다른 사회 구성원의 소득을 증가시키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면 그가 그만큼의 몫을 받는 것은 공정하다. 심지어 그가 생산된 성과의 대부분을 가져간다고 해도 그만큼 기여했다면 괜찮다. 실제로 경제학에서는 한계생산성의 차이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을 옹호한다. 즉, 한계적으로 보았을 때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한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위기가 지난 후, 은행에서 일하던 이들은 막대한 보너스를 받으면서 직장을 나왔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은행들의 무분별하고 약탈적인 대출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고통받는다. 이는 매우 심각하게 불공정하다. 정부는 은행을 위해서 구제금융을 했다. 하지만 아무 잘못 없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이들을 위한 실업보험 확장은 꺼리고 있으며, 집을 잃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는 매우 심각하게 불공정하다. 사회에 더 큰 기여를 하는 이는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며 불평등을 옹호하는 정의는 이런 문제를 무시한다.은행가들은 사회와 심지어 그들의 회사에조차 피해를 주었지만 많은 보상을 받았다. 주주와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그들의 회사를 망하게 한 CEO들도 막대한 보너스를 받았다.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면 문제는 분명 경제 체제 안에 있다. 이는 당연한 결론이며 시위대들이 분노한 이유이다. MIT의 실베이(Susan Silbey) 교수는 통 속에 썩은 사과 하나 정도는 들어있을 수 있지만, 통 자체가 썩었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말한다.많은 이들이 도덕적 결핍이라는 말로 문제를 설명한다. 금융 분야에서 일하는 매우 많은 사람들의 도덕적 기준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도덕적기준을 잃어버리고, 소수의 내부고발자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도덕적 기준을 잃어버린 개인이 아니라 그렇게 변한 사회 그 자체이다.시위대는 우리가 분노했다는 사실을보여주었고, 분노를 통해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이상적인 경향이 있는데 학교에서의 교육과 정치적 수사에도 이런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어린이들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독립선언서를 읽으며, ‘충성의 맹세(역주 – 미국식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암송하며, “모두를 위한 정의”를 약속하고 믿고 있다.시장 실패기업에 대한 불만은 매우 많고 오래되었다. 예를 들어 담배회사는 그들의 위험한 상품을 더 중독성 있게 만들어 내고 있으며, 심지어 미국민들에게 담배가 위험하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설득하며, 그 반대의 증거를 모으고 있다. 에너지 기업 엑손은 지구온난화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며, 심지어 미국국립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조차 다른 많은 과학단체와 함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화학 회사는 물을 오염시키고, 그들이 공장을 확장할 때마다 따르는 죽음과 파괴에 대한 책임을 거부한다. 제약 회사는 그들의 독점력을 이용해서 상품 생산 비용의 몇 배에 달하는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그것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금융위기는 더 많은 문제를 가져왔다. 가난한 이들은 약탈적 대출로 고통 받는다. 이들 외에도 대부분의 미 국민들은 잘못된 신용 카드 사용으로 고통 받는다. 경제는 여전히 금융 분야에서의 범죄로 인해 비틀대고 있다. 석유 기업 BP의 석유유출은 또 다른 측면의 문제를 보여준다. 그들의 무분별한 석유 채굴은 환경을 파괴하고, 어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수천 명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하지만 위기 전에도, 시장 경제가 대부분의 미국인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는 있었다. GDP는 증가하지만 국민 대부분의 삶은 나빠졌다. 정치적 권리에 의해 오랫동안 지켜졌던 경제 법률조차도 지켜지지 못했다. 앞서서 우리는 사회에 기여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경제학 이론에 대해 설명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초과이윤이 0이 되는 완전경쟁시장에서는 경쟁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매년 은행들이 엄청난 이윤을 거두는 것을 본다. 이는 시장이 진짜 경쟁적이지는 못함을 보여준다. 경제학의 표준 과정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대해서 말한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 같은 이론적 모델에서는 실업이나 신용할당과 같은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두 정작 필요한 곳에 자원이 쓰이지 못하는 문제(예를 들어 가난한 이들을 빈곤에서 구제하기 위한 투자,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한 투자, 지구온난화의 위협 앞에서 세계 경제를 개선하기 위한 투자)와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놀고 있는 자원의 문제(예를 들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거나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노동자와 기계) 가 존재한다. 2011년 12월, 2500만 명의 미국인들이 풀타임 일자리를 갖지 못했다.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다.혁신과 세계화는 시장 실패를 유발했다. 두 가지 모두 우리 경제가 더 번영하도록 해주었지만 또한시민들의 삶을 악화시켰다.최근의 조사에서 그린왈드(Bruce Greenwald)와 나는 대공황의 근원을 연구했다. 지금의 농업 생산성의 증가가 매우 급격히 일어나면서 세계의 식량 증가를 요구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1900년 미국에서 노동력의 대부분은 농장에서 일했다. 오늘날은 인구의 2% 미만인 농부들이 소비량보다 더 많은 음식을 만들어낸다. 많은 양이 남아돌아 수출을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1929년과 1932년 사이 농작물의 가격은 수직하락했고, 농가의 소득은 3분의 2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득의 가파른 감소는 공산품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 농촌의 부동산 가격은 급락했고, 대출도 불가능했다. 농촌지역으로부터의 이주는 늘어났고, 농촌은 텅 비어갔다. 시장 실패의 상황에서 도시와 농촌 모두 고통받았다.대공황의 한가운데에서 미국인 여섯 명 중 한 사람이 풀타임 일자리를 가질 수 없었다. 가게의 저임금 계산원은 기계로 대체되었다. 혁신은 놀라웠고, 이윤은 증가했다. 하지만 이로인한 광범위한 경제적, 사회적 결과를 무시할 수 없다. 높은 실업률, 저숙련 노동자의 낮은 임금 등 수요와 공급의 균형은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이루어졌으며, 불평등은 커졌다.정치적 실패정치 체제는 경제 체제 만큼이나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두 가지 실패는 연결되어 있다. 정치 체제는 위기를 막는데 실패했다. 위기를 치료하는데도 실패했다.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도 실패했다. 국민들의 삶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데도 실패했다. 기업들이 과욕을 막는데도 실패했다. 이렇게 실패하는 동안 적자는 커져가고 있으며, 정치적 실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미국, 유럽 등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세계인들은 이 제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위대들은 지금이 진짜 민주주의인지 의문을 던진다. 진짜 민주주의는 2년이나 4년마다 한 번씩 투표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선택은 의미 있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정치 체제가 ‘1인 1표’가 아니라 ‘1원 1표’로 기울어지고 있다. 정치 체제가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 실패를 강화하고 있다.조세제도는 버핏(Warren Buffett) 같은 억만장자가 그의 비서보다 적은 세율의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다. 세계 경제가 침체되도록 만든 투기꾼들은 열심히 일해 소득을 번 이들보다 낮은 세율의 세금을 낸다. 이는 정치가 불공정하며 불평등 심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시각을 강화시킨다.정치와 경제에서의 실패는 연관되어 있다. 두 가지 실패는 서로를 강화시킨다. 부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는 정치 체제는 부자들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을 희생시켜서 부를 늘릴 수 있는 경제 법률과 제도를 만든다. 세계화와 시장세계화에 대한 나의 비판은 세계화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문제는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있다. 세계화는 양날의 검이다. 세계화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다. 세계화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를 성공한 국가는 지금까지 매우 소수이다.시장경제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힘은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엄청나다. 과거 200년 동안 이루어진 생산성과 생활수준의 향상은 이전의 2000년을 뛰어넘는다. 시장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정부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자유 시장은 대체로 이를 간과한다. 시장은 길들여지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시장이 국민 대부분의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서 진보적 시기에 일어난 시장에 대한 조정은 경쟁법 도입이었다. 뉴딜 시기 동안에는 사회보장, 고용, 최저임금 등과 관련된 법률이 통과되었다. 월가 점령과 전 세계 시위대들이 보내는 메시지 역시 시장은 길들여져야 하고 사회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석유를 통해 높은 성장을 이룬 중동의 일부에서도 적하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카이로에서 월가까지나는 40년 이상 동안 개발도상국을 여행하면서 그들의 문제를 가까이에서 보았다. 2011년 이후 나는 이집트, 스페인, 튀니지에 초대되었다. 마드리드, 뉴욕, 카이로에서 시위대를 만났으며 테헤란에서 시위에 적극 참여했던 젊은이와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이들이 지금의 체제가 실패했다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다. 어떤 이들은 시위대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런 비판은 시위의 핵심을 놓친 것이다. 시위대는 선거 절차에 대한 좌절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경고음이다.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은 한 편으로는 매우 작은 것들이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 양질의 임금을 주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라는 것, 더 공정한 경제와 사회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전혀 혁명적이지 않으며 점진적이다. 하지만 다른 수준에서 그들은 거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 중시되는 민주주의와 규제를 지키는 시장 경제이다. 이 두 가지 요구는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족쇄 풀린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시장이 규제를 따르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계층의 이익이 아닌 일반 대중의 이익을 반영하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정부를 가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어떤 면에서 시위자들은 이미 거대한 변화를 이루었다. 많은 싱크탱크와 정부당국자, 언론들이 정당하지 않은 심각한 수준의 불평등과 시장 실패에 대한 비판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는 99퍼센트” 라는 슬로건 역시 대중의 의식 속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랍의 봄이나 월가 점령이 어디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시위대의 목소리가 이미 사회적 공론과 시민, 정치인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원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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