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와 사회적 딜레마

By | 2011-12-26T14:45:49+00:00 2011.12.26.|

‘보편적 복지국가’가 내년 총선·대선의 화두 중 하나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서 각 당은 복지재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내 보기에 ‘진보개혁진영’이 썩 유리하기만 한 건 아니다. 보편적 복지국가란 기여(돈을 대는 사람과 액수)와 급부(복지 수혜자와 액수)가 서로 무관하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착한 경제학’의 핵심 주제인 사회적 딜레마에 속한다.사회적 딜레마는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어긋나는 경우를 말한다. 저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공유지의 비극’, ‘집단행동의 함정’, 그리고 보수적 경제학자들도 인정하는 ‘공공재의 딜레마’가 모두 사회적 딜레마이다. 이미 얘기했듯이 사교육은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이며, 현재 인류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그것이 ‘공유지의 비극’에 속하기 때문이다.개인(또는 한 나라)의 이익만 좇는다면 무임승차(free riding)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사회적 딜레마의 핵심이다. 예컨대 그래도 품격 있는 나라로 보였던 캐나다가 최근에 일방적으로 교토 기후협약에서 탈퇴한 것도 공유지의 비극을 증명한 것에 불과하다.모든 나라가 노력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날 수 있다. 너무나도 명백하게 이것이 전 세계의 이익이지만, 우리나라만 필요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려면 자동차를 덜 타야 하고, 각 공장은 탄소를 줄이는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우리는 무임승차에 의해 최대의 이익을 거두게 될 것이다. 하여 각 나라가 얼마나 의무를 져야 할 것인지 자체가 교토 기후협약의 핵심 쟁점인데, 미국과 중국이 그 의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중국 바로 옆에 있는 우리 국민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애쓰면 뭐 하나. 중국에서 이산화탄소가 한반도로 다 날아올텐데….” 그래서 우리도 탄소배출 규제를 하지 않는다면(예컨대 탄소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사회적 딜레마인 ‘집단행동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뻔히 알면서도 인류는 멸망으로 일로매진하게 된다.보편적 복지국가도 마찬가지 운명이다. 1990년대 초반에 스웨덴이 경제위기에 빠졌을 때 경제학자들은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로 ‘스웨덴 병’을 진단했다. 한 마디로 “일하지 않아도 그럴 듯하게 살 수 있다면 누가 일할 것인가?”이다. 나아가서 그렇게 ‘배부른 돼지’들을 늘상 본다면 어느 누구도 세금을 더 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지를 축소해서 시장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도록 해야 한다. 즉 대안은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였다.20년이 지난 지금 시장 만능의 미국은 끝도 없는 위기에 빠졌고, 스웨덴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성장과 복지, 즉 평등과 효율을 동시에 누리고 있다. 스웨덴은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한 것이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으로 간단하게 입증했듯이 ‘신뢰와 협동’이 그 답이다. 20년 넘게 매년 하고 있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의 ‘일반적 신뢰’(generalized trust·‘당신은 남을 얼마나 믿는가’) 항목에서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언제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일반적 신뢰는 중상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더 끔찍한 것은 15살가량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압도적 꼴찌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극단적 경쟁교육을 생각해보면 이 결과는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하겠다는 건 언어도단일 것이다. 진보개혁 진영이 보편적 복지국가를 주장하려면 앞으로 한국에 신뢰와 협동이 흘러넘치도록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과연 그럴 방법이 있을까? 있다! 다음 호를 보시라.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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