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동아시아 균형자 입지를 좁히다.

By | 2011-11-25T10:52:13+00:00 2011.11.25.|

묘하게 시점이 겹쳤다. 2011년 11월은 한국 집권여당이 유례없이 ‘비공개 날치기’로 한미FTA라는 국제조약을 인준한 달로 기록됐다. 그런데 11월은 미국이 동아시아로 되돌아오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개시한 시점으로 기록될 것 같다.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일본을 끌어들이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전 호주 외무장관이었던 에반스는 동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어떤 미묘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큰 난제는 경제위기가 끝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광범위하게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각국 역시 세계경제 침체로 인해 다양한 충격을 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장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9% 이상의 성장능력을 꾸준히 이어 오고 있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 덕분이다. 아세안 10개국이 평균 6% 성장을 지속하고 있고 인도양의 또 다른 잠재적 대국 인도 역시 비슷한 수준의 성장능력을 잃지 않고 있다. 북미와 유럽의 장기침체는 이런 아시아의 선방을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 미국의 관심을 아시아로 돌리게 만들었다.그러나 동아시아로 돌아온 미국 앞에 이미 과거의 동아시아는 없었다. 최근 10여년 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매우 다양하고 탄탄한 경제적 관계가 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역내무역의존도는 유럽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북미의 45%를 훨씬 능가하는 54%에 이르렀다. 역내 직접투자 관계도 30%를 넘었다.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의 주요 무역상대국은 북미와 유럽에서 중국으로 이동해 버린 것이다. 이제 동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중국과 관계를 맺고 중국이 서구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어떤 조약을 맺었거나 인위적으로 동맹관계를 발전시켜서가 아니라 경제적 관계가 자연스럽게 흘러가 버린 것이다. 동아시아의 성장 잠재력에 편승해 위기를 탈출해 보려던 미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탄탄하게 얽히고 있는 동아시아의 자연적 경제관계에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필요한 처지에 몰렸다. 미국은 동아시아에 비집고 들어갈 두 가지 지렛대, 경제적으로는 TPP, 정치·군사적으로는 중국의 국경분쟁 요소를 이용하기로 한 것 같다. 먼저 동아시아와의 연계성도 떨어지고 의미도 보잘것없었던 TPP를 포장하기 위해 미국과 NAFTA로 엮여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동원하는 한편, 결정적으로 일본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대지진까지 겹쳐 도저히 활로가 없었던 일본의 노다 정부는 아무런 국내적 사전준비도 없이 미국의 요청에 기꺼이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갑자기 중국을 배제한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가 떴다고 언론이 떠들썩하던 TPP 부상은 이렇게 연출된 것이다. TPP라는 허약한 경제적 지렛대에 비해 정치·군사적으로 미국이 활용할 수단은 좀 더 다양했다. 중국과 조금이라도 갈등관계를 맺고 있던 국가들을 모두 동원했다. 전통적 우방국인 호주에는 미 해군 2천500명이 훈련할 수 있는 해군기지 창설을 결정했다. 중국과의 역사적 경쟁자이자 미국에 우호적인 인도에게는 호주의 대인도 우라늄 수출을 허용했다. 중국의 인도양 통로인 버마에도 손길을 내밀었다. 특히 남중국해로 중국과 영토분쟁이 있는 필리핀과 베트남을 감안해 남중국해 문제를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이슈화해 중국을 자극했다. 여전히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 미국이 그렇게 2011년 11월 아시아를 휩쓸었다. 반대로 동아시아 입장에서는 기존 경제관계에서 상당히 큰 교란요인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한두 번의 미국 행보로 이미 자연적으로 굳어진 동아시아 내부 경제관계가 와해될 수는 없다. 더욱이 이 같은 행보가 내년 미국 대선을 겨냥한 국내 정치용 이벤트라는 성격도 있는 만큼 얼마나 지속적으로 미국이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 강도를 높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미국이 자국의 장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동아시아 성장능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럴수록 아시아에 개입해 경제적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와 보자. 한국 역시 그 어느 나라보다 경제적 측면으로는 동아시아 국가가 됐으며 대만을 제외하고는 가장 중국경제에 의존한 경제가 됐다. 수출과 수입 측면에서 제1의 교역국이고 제1의 해외투자국가인 것이다. 아세안 10개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세계경제의 발전추세를 보건데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이 명확하다. FTA를 체결한 유럽과 미국과의 무역투자 관계는 축소될 것이고 반대로 중국과 동아시아 관계는 확대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했고, 미국은 중국과 경제·정치적 이해관계의 갈등을 감수하고 동아시아로 진입하려 하고 있다. 일반적이라면 한국은 동아시아 국가의 일원이라는 토대 위에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균형을 잡는 위치에 서는 것이 ‘국익’에 맞을 것이다. 향후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 경제권을 어떻게 흔들지 모를 중대한 국면이 아닌가. 이런 측면에서 보더라도 현재 한국이 서둘러 미국과 먼저 FTA를 체결한 것은 스스로 균형자 역할을 할 입지를 좁히는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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