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5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사회에 환원했다.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숭고한 가치가 있으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는 보다 큰 가치도 포함된다고 믿어 왔다.” 더 말을 보탤 것 없이 훌륭하고 또 훌륭하다. 금융권 인사들도 이 흐름에 동참할 것이라고 하니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자 정치인들이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내놓는 돈이나 재벌들이 범죄를 면하려고 토해낸 돈과 비교하는 건 말 그대로 언어도단이다. 그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안철수 원장의 기부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1500억원은 적은 돈이 아니지만 이자율을 10%로 쳐도 유량(flow)으론 150억원 정도이다. 우리의 재정과 기금 등 예산은 1년에 300조원 정도니까 2만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이다. 즉 안철수 원장 같은 부자 2만명이 비슷한 액수의 돈을 내면 우리는 매년 두 배의 예산을 운용할 수 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7000명 정도가 동참해서 유량으로 100조원을 내놓는다면 OECD 수준의 복지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국가가 강제로 내게 하는 세금과 비교하면 개인의 만족도로 보든 사회적 인정이라는 면에서 보든 더 나은 방안임에 틀림없다. “깨몽”이라고 외칠 분들이 많을 것이다. 영미권은 기부에 의한 복지를 추구해온 나라이고, 북유럽은 세금에 의한 복지를 이뤄왔다. 현실에서 어느 쪽 복지가 더 나은가는 두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하여 미국의 부자인 워런 버핏이 부자 증세(버핏세)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기부와 세금을 섞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는데 일정 액수의 기부에 대해 면세 혜택을 주는 제도가 그러하다. 나아가서 일정 규모 이상의 세금에는 예컨대 ‘안철수 세’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보육시설에 쓰라”는 식으로 용도를 지정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안철수씨는 뭐가 그리 잘나서 돈을 그렇게 많이 번 것일까? 내가 아는 한 경제학의 답은 그리 신통치 않다. 사회에 대한 한계기여에 따라 돈을 버는 것이라는 답은 그럴 듯할까? 예컨대 김태희씨가 광고에 나가면 1000만원어치 1회용 커피가 더 팔린다고 하자. 그럼 기업 입장에서 김태희씨의 한계기여에 따라 출연료를 1000만원 준다는 게 정당할까? 다른 탤런트가 출연하면 500만원어치가 더 팔리기 때문에 두 사람의 몸값 차이가 500만원인 게 당연하다는 경제학의 주장은 정당할까? 김태희씨가 드라마 한 편에 수천만원의 출연료를 받는데, 그 드라마를 쓴 보조작가는 굶어 죽는다면 그게 정의로운 일일까?어쩔 수 없이 한계기여를 시장에서 측정한다 하더라도 안철수씨나 김태희씨한테 내재해 있는 그 능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특히 안철수씨의 경우 V3를 제작할 때 수많은 지식을 공짜로 이용했을 것이다. 예컨대 아무도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사용할 때 돈을 내지는 않는다. 아마도 안철수씨가 스스로 창안해낸 지식의 수천만 배의 지식을 공짜로 사용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들이 만들어낸 지식은 거의 모두 공공재이다. 즉 그의 사회적 기여의 한계 시장가치가 1000만원이라면 그 중 999만원 이상이 인류 역사로부터 나온 것이다. 나는 기부가 여러 모로 세금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부는 사회로부터 입은 혜택을 사회로 되돌리는, 말 그대로 ‘사회환원’이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안정적인 복지를 원한다면 당연히 내야 할 기부액수의 일부를 세금으로 확보하는 것 또한 훨씬 합리적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 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