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와 죄수의 딜레마

By | 2011-11-14T11:56:38+00:00 2011.11.14.|

지난번에 교육문제의 실마리를 풀겠다고 했지만 잠시 쉬어가야 할 것 같다. 한·미 FTA의 국회 비준을 앞둔 ‘끝장토론’을 하느라 교육에 관해 충분히 읽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보았듯이 사교육 경쟁을 하면 할수록 부자들에게 유리하다. 경쟁으로 인해 사교육 값이 무한정 올라가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게임을 지배계급이 설계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아이를 위해 온힘을 다 하면 다할수록 그들의 승리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즉 우리 스스로 우리 아이들을 패배자로 내모는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극소수 예외는 있을 테지만 우리 아이가 그 예외일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래도 우리가 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고, 결국 게임의 설계자는 너무나 손쉽게 이들을 영원히 지배할 수 있다. 즉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하면 일반 대중의 경쟁을 이용하여 자기 뜻대로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 사례가 있을까? 있다. 지금 세계은행 총재로 있는 로버트 졸릭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있을 때 내놓은 ‘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가 바로 그러하다. 원래 미국은 WTO를 통한 다자간 무역 자유화를 추진했지만 다자간투자협정(MAI)의 경우처럼 프랑스 등 유럽 강대국들의 반대, 또 FTAA(아메리카 대륙 FTA)처럼 후진국들의 단합에 의해 뜻을 충분히 이룰 수 없자 양자간 협정, 즉 FTA를 추진하게 된다.졸릭은 미국의 시장을 놓고 각국이 경쟁하는 그림을 그린다. 경쟁적으로 미국 시장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방들에게 상품시장을 내주고, 대신 상대국의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부문을 WTO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열어젖히겠다는 전략이다. 10월 20일 끝장토론에서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되뇐 얘기지만, 한·미 FTA를 개시할 때 김현종 당시 본부장은 두 가지 주장을 내세웠다. ‘남들이 미국과 FTA를 맺기 전에 우리가 먼저 미국 시장을 선점하자!’ 이명박 대통령에 따르면 이제 우리는 세계 1위의 경제영토를 가진 나라가 된다. 이분의 뇌 속에서는 모든 사고가 땅에서 시작해서 땅으로 끝나는 모양이다. 또 하나의 주장은 모든 나라가 다 FTA를 맺는데 대한민국만 FTA 후진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이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한다.” “남이 하면 나도 한다.” 바로 죄수의 딜레마를 판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그대로 아닌가?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가 협상을 개시한 2006년 2월 이후 지난 6년 가까이 중남미 국가들과 한국 빼곤 이 함정에 빠진 나라는 없다. 한·미 FTA 찬성론자들은 졸릭이 쳐놓은 죄수의 딜레마 함정에 자신들이 빠졌다는 자각이나 있을까? 1929년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빗대어 대침체(Great Recession)로 이름 지은 현재의 위기는 바야흐로 일본식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빠져들고 있다. 이제 재정확대정책도, 금융완화정책도 여의치 않은 미국에 수출은 유일한 활로다. 동시에 수입은 줄여야 하니 노골적인 보호주의 정책도 쏟아져나올 것이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한국이 스스로 문을 연단다. FTA만 맺으면 5~6%의 추가성장이 가능하다고 스스로 조작한 숫자에 환호하며 기꺼이 서비스시장을 개방하고 지적재산권을 강화한다니 그 얼마나 고마운가. 이미 파산이 증명된 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굳게 믿으니 그 또한 얼마나 고마운가. 아이들을 살리려면 현재의 사교육 경쟁에서 벗어나야 하듯이, 한·미 FTA를 비준하지 않아야 우리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이 글은 ‘주간경향’ 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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