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축은행 사태에는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 부실, 금융규제당국의 정책실패, 대주주의 방만 경영과 비리 등 온갖 문제가 겹쳐 있다. 하지만 모든 현상의 밑에는 정책실패가 도사리고 있다. 본디 상호저축은행은 영세 자영업자 및 소규모 기업 등에 금융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일반 시중은행이 이들에게 돈을 잘 빌려주지 않으니 그 보완 역할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떼돈을 벌 욕심으로 부동산PF 등 고수익-고위험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한국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그리고 현재의 미국 금융위기를 일으킨 투자은행에 가까운 영업행태를 보인 것이다. 한국의 시중은행보다도 적은 몸집으로 미국의 투자은행처럼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문제는 그런 행위를 규제해야 할 금융당국이 오히려 그 행위를 조장했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저축은행 사태는 ‘규제완화’와 ‘위험증가’라는 두 바퀴가 서로 맞물려서 일으킨 대규모 “인재”이다. 먼저 금융당국은 이해당사자들에게 포획되었다(규제포획, regulatory capture). 부산저축은행에서 보듯이 정치권 로비와 회전문 인사 관행로 인해 당국은 자신의 존재이유조차 잊어버렸다. 또한 금융당국은 ‘대형화’ 신화에 사로잡혀 저축은행의 외형 확대를 적극적으로 방조했다. 작년 상반기 기준, 11개 계열저축은행의 총자산 합계는 53.2조원으로 총 105개 저축은행 총자산의 61.8%나 차지하였다. 위험관리능력도 경험도 없는 몇몇 저축은행이 이렇게 몸집을 부풀린 것은 그만큼 동반부실의 위험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 토마토, 제일 등 3개 대형 저축은행 앞에서 울부짖는 서민들의 고통을 만든 것은 이들 앞에서 “염려 말라”며 2000만원짜리 저축 쇼를 하고 있는 바로 그들이다. 두 번째는 규제퇴보다. 당국은 과거 금융위기의 교훈을 너무도 빨리 잊어버리고 ‘금융허브’와 같은, 이제 망상으로 판명난 정책목표를 고집했다(불행하게도 아직도 고집하고 있다). 2005년 말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제로베이스 금융규제 개혁방안’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88클럽이 탄생하고 법인에 대한 80억 금액규제의 한도도 폐지했다. 80억 초과 여신의 60.8%(10.7조)가 부동산 대출이었고 2005년 6.3조원이던 PF대출은 1년 만에 84%나 증가하였다. 이 규제퇴보가 부동산 PF를 불러온 것이다. 세 번째로 규제회피란 새로운 금융상품과 기법을 개발하여 기존 규제의 틀 밖에서 새롭게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저축은행이, 사실상 스스로 지배하는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비업무용 부동산 투자행위, 한도 초과 여신 및 투자행위, 분식회계와 편법대출을 자행하는데도 당국은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 지금 서민 고통의 핵심인 후순위 채권은 2009~10년에만 9000억 넘게 발행되었고, 그 발행금리가 수신금리보다 3~4%p 높아 은행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당국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끝없이 오르고 있던 부동산가격은 1997, 2004년 금융위기의 뼈저린 기억마저 망각의 늪으로 밀어넣었다. 시중에는 부동산 재테크 관련 뉴스와 책이 넘쳐났고 투기꾼과 건설사, 그리고 저축은행은 부동산버블의 향연을 마음껏 즐겼다. 우리의 금융당국은 ‘자율규제’라는 명분을 내세워 잔치의 흥을 돋울 뿐이었다.현재 정부는 어떻게든 이 위기를 미봉해서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진단은 저축은행이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감독과 규제시스템을 철학부터 수단까지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안정과 실물과 금융의 균형발전전략이 금융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대형화를 통한 투자은행 육성, 금융허브와 같은 망상을 하루 빨리 버려야 한다. 그런 기조 하에서만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위한 서민금융기관으로서 저축은행은 부활할 수 있다. 미봉이냐, 근본적 전환이냐, 금융감독의 기조도 어떤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을 것인가의 시금석 중 하나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