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청년노동자와 2011년 청년들

By | 2011-09-08T10:43:40+00:00 2011.09.08.|

하루 14시간 노동을 하고도 차 한 잔 값이 일당이다. 이처럼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일한 후에 이 모든 것이 근로기준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열악한 근로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노동실태 설문조사를 해서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한다. 41년 전 9월 평화시장 청계 피복노동자 청년 전태일이 한 일이었다.등록금을 벌기 위해, 또는 취직준비를 하기 위해 낮은 시급을 감수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주변에서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라 하더라도 주당 15시간 이상 일할 경우 근로기준법에 의해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임금체불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알바로 일하는 청년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일해 왔다. 청년세대 노조로 탄생한 청년유니온이 이 실태를 조사해 외국계 브랜드인 커피빈을 포함한 유명 커피전문점의 주휴수당 미지급 체불임금이 약 2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해 화제가 되고 있다. 2011년 9월 현재의 이야기다.40년 세월의 간극이 있다. 그 사이 국내총생산(GDP)이 422배 늘어났다. 1인당 국민소득이 255달러에서 80배가 커진 2만달러가 됐다. 수출이 10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아시아의 가난한 후진국은 4천억달러를 넘어선 무역규모 9위의 국가가 됐다. 그러나 문제의 성격에는 아무런 차이도 발견되지 않는다. 열악하고 낮은 임금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에 명시된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신으로 저항한 아들을 대신해 긴 세월의 공백을 메우셨던 어머니도 아들 곁으로 가셨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온 나라가 격변의 소용돌이로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도 추모의 움직임이 뜨겁다. 침체에 빠진 노동운동이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41년 전의 청년 전태일과 지금까지 시간을 아들을 대신해 오신 어머니의 뜻을 이어야 할 사람은 오늘을 살고 있는 청년들이 되는 것이 맞다. 1970년의 청년 전태일과 2011년 청년유니온 활동 사이에는 시간 간격의 심연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에 대한 인식과 권리침해에 대한 정의로운 분노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 청춘들의 고달픈 삶에 대해 기성세대는 무능을 탓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잘해야 동정의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지금의 청년들을 지칭하는 ‘88만원 세대’라는 표현 자체에 동정의 감정이 묻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청년들에게 호의적인 많은 기성세대조차 청년실업과 과중한 등록금에 힘들어하는 우리 청년들에게 대해 동정 어린 마음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급부로 일부 청년들도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지원을 바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전진적인 사회운동도 동정에 의지해 시작된 역사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떳떳하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권리침해에 대해 정의롭게 자기 목소리를 내며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으로부터 발전적인 사회운동은 시작돼 왔다. 41년 전의 청년 전태일이 그랬고, 지금의 청년들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투기적 소득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라도 땀 흘려 일하고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모든 청년들은 마땅히 요구할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청년세대 노조운동의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 청년유니온에게 바란다. 청년 노조운동은 결코 주변부 운동이 아니다. 포클레인과 중장비를 이끌고 수만 명이 대열을 지으며 행진을 해야 중심적인 노조운동인 것은 아니다. 그 시대의 문제의 중심에 있고, 사회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면 아르바이트 청년들의 권리찾기도 핵심적인 사회운동이며 중심부 운동인 것이다. 그리고 그 동력은 자신들의 권리의식과 정의로운 분노의식이면 충분하다. 시대의 중심에서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작은 일부터 권리찾기를 해 나가는 것이 진정 청년 전태일을 계승하는 것이 될 터다.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도 바꿔야 할 것이 있다. 청년들이 파편화되고 수동적이어서 우리사회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끌고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있다면 버려야 한다. 오히려 온갖 거품과 시장논리를 대학까지 끌어들여 젊은 청춘들에게 부채를 전가시켜 놓은 기성세대 자신의 책임을 되돌아보는 것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무력하고 무책임한 것은 청년세대가 아니다.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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