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금년 목표는, 조폭들 이두박근에 새겨져 있는 ‘차카게 살자’다. 이런 신조를 지키는 걸 제일 방해하는 집단은 청와대다. 예컨대 ‘공정사회’를 내걸면 그 공정(아마도 fairness)이 뭔가를 알려 드리고, 그런 목표를 세웠을 때, 가능한 정책도 제시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공생’이다. 제발 말을 만들 땐 좀 보편적인 언어를 선택하기를…. 생물학의 ‘공생(symbiosis)’에는 기생(parasitism)도 포함된다. 하여 어찌보면 이번의 ‘공생발전’은 옛날의 자기 동업자들에게 “작작 해 먹으라”는 고언, 또는 명령 같다. 기생은 기생이되 ‘착한 기생’이라고 할까?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라서 별로 충격받을 것도 없는데 영어 표현인 ecosystemic development를 먼저 만들고 대통령이 정리한 번역어가 ‘공생발전’이라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바다 건너 와서 고생하고 있는 생태계(ecosystem)라는 말은 정말, 또 정말 중요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전 인류 공멸의 위기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70억 인구가 모두 글로벌 기후변화로 생사를 넘나들게 될 테니 우리는 앞으로 economics라는 낱말 대신에 ecology라는 낱말을 배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정말 지금 대한민국이 ‘생태계’라는 말을 동원해서 할 일이 무엇일까? 그 말을 정말 고민한다면 청와대는 2011년 5월 발간된 영국 하원(POST, 하원 과학위원회)의 4쪽자리 보고서, ‘생태계 접근’(원문과 번역본은 새사연 홈페이지에 있다)부터 읽어야 할 것이다. 이 보고서의 주장을 한국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쉬운방법 있어요~생태계를 의식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내 아이(그리고 그 아이의 아이까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부터 ‘생태계 서비스’라는 개념이 나왔다. 생태계 서비스란 생태계라는 스톡에서 나오는 유·무형의 서비스로 생태계와 인간의 복지를 연결하는 개념이다. 즉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하려 할 때마다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생태계 서비스가 어떻게 변할까를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 ‘생태계 접근’이다. 당장 내가 얻는 것과 그 때문에 없어지는 서비스는 무엇인지, 지금 하는 일의 불확실성과 위험이 미래에 어떤 일을 야기할 수 있는지를 측정해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생태계 접근이 요구하는 것은 대단히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며 동적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환경영향 평가를 훨씬 넘어선다. 즉 특정 생물종이나 문화에 대한 위협을 넘어 광범위한 변화를 측정해야 하는 것이다.생태계 접근은 4대강에서 바로 얻을 이익(건설경기 부양, 땅값 상승, 규제 철폐)과 무시한 것들이 초래할 편익의 상실도 고려하라고 요구한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낙동강 풍경의 경제적 가치, 습지의 홍수 예방 효과, 그리고 계획이 무산됐을 때 생태계가 입을 사회경제적 피해(예컨대 4대강 주변에 모두 골프장과 카지노가 생기면 일본처럼 동시에 망할 수 있다)는 물론 생물다양성의 파괴도 모두 계량화해야 한다. 만일 4대강 사업으로 상실되는 규제 서비스(홍수 조절 등), 문화 서비스(관광이나 휴양 등), 지원 서비스(생태계의 유지)의 가치를 계산한다면 4대강 사업의 수익성이 천문학적 마이너스일 것이다. 영국 하원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세울 때 생태계 접근에 의한 계량 결과를 첨부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판단하자는 게 ‘생태계 접근’이다. 생태계의 변화는 수많은 사람의 상반되고 다양한 이익과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태계 접근은 숙의 민주주의(소통)를 전제로 하고 있다. ‘생태계’라는 말은 그저 비유로 쓰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왕 ‘생태계’를 내걸었으니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우선 적어도 영국 기준에 맞춰서 ‘4대강 사업’을 평가하기. 이건 이미 저지른 일이라 객관적으로 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발간된 보고서인 ‘영국 국가생태계 추정’에 맞춰서 생태지도 만들기(생태계 서비스를 추정하는 데는 모든 학문이 다 동원되어야 하니 현재 한국에선 대통령밖에 지시할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생각이라는 걸 조금 하기. 그후에 국민과 소통하기.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