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의 경제학

By | 2011-06-10T17:18:44+00:00 2011.06.10.|

대학 등록금은 어떻게 결정될까 현재의 “반값 등록금”운동은 최대한의 정부 보조를 얻어내면 성공하는 것일까? 현재 각 정당, 특히 야당이 경쟁적으로 거액의 지원을 내걸고 한나라당 역시 마냥 외면하지 못한 채 2조원 이상을 이미 약속했으니 보조금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벌써 절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반값 등록금”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90%에 이른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왔으므로 국민적 합의도 이뤄진 셈이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 대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은 한결 가벼워질테니 운동의 성과도 바로 체감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 성공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더 성공적인 운동이 되기 위해서 대학 등록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부터 살펴 보자. 대학 등록금은 한마디로 독점 가격이다. 수요자인 대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대학은 오로지 학생들의 지불능력만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대학 입학이 확정된 후 가격이 너무 높다고 해서 탈출 옵션(자퇴)을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목소리 옵션도 힘이 없다. 세칭 일류대일수록 더 그럴 것이다. 학벌도 톡톡히 일조하는 양극화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이 가져다 줄 미래의 예상 수익이 천문학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원서도 낼 수 없다”는 것은 이 현상이 일류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학이 아무리 고액의 등록금을 제안해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손쉬운 독점 사업이라면 누구나 대학을 만들려고 하겠지만 초기 비용이 대단히 크고 더구나 대학의 평판은 쉽사리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어마어마하게 높다. 단기적으로도 교육부가 대학 정원을 규제하기 때문에 공급(사실상 학생 수)을 늘릴 수도 없다(대학 정원을 늘리는 것은 입시경쟁을 일부 완화할 수 있지만 등록금 문제는 거의 해결하지 못한다. 수요의 가격(대학등록금)탄력성이 0에 가깝기 때문에 대학의 수익만 늘리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사실 대학 입학이 확정되기 전, 사교육시장도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수요자(입시생)들의 무한경쟁에 의해 사교육비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다만 이 시장은 진입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대학처럼 마음껏 수강료를 올릴 수는 없다. 경제학 용어에서 고른다면 이 시장은 독점적 경쟁에 가까울 것이다] 결국 쓸만한 직장이 제한되어 있고 거기 가는 조건이 학벌이기 때문에(또는 그렇게 믿기 때문에), 더구나 학력에 따른 사회적 차별도 심하기 때문에 대학교육에 대한 무한한 수요가 존재하고 여기서부터 어마어마한 독점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 자율화’는 대학이 마음껏 이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앞으로 서울대가 법인화되어 대학 등록금 인상을 주도한다면 그 영향은 우리의 상식을 훨씬 뛰어 넘을 것이다(예컨대 서울대가 한학기 2천만원 등록금을 내건다고 정원을 채우지 못할까?). 독점가격에 대해 올바른 정책은 가격규제이다. 만일 이 주장이 옳다면, 그리고 일단 이 측면만 떼어 놓고 본다면 등록금에 대한 정부 보조는 잘못된 방향이다. 가령 한국에 자동차 회사가 하나이고 수입도 금지되어 있다면 이 회사는 독점가격을 설정할 것이다. 높은 가격 때문에 소비자들이 도저히 차를 구입할 수 없다고 해서 정부가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그 차를 사도록 하지는 않는다. 독점에 대한 경제학의 표준 처방은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대학교육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이것도 때때로 무한한 투기수요 때문이다) 집없는 사람들한테 정부가 보조금을 줘서 집을 사도록 하지 않는다. 자동차든 부동산이든 정부는 가격 규제를 하거나 공공 공급(공공임대주책, 국공립대학)을 늘리는 정책을 택한다.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높은 대학 등록금에 대한 최우선 정책은 가격 규제이다. 대학교육의 공공성 물론 자동차나 집과 대학교육이 똑같냐고 물을 수 있다. 즉 대학교육은 공공성이 있는 서비스이므로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맞다. 그러나 대학교육 공공성의 명확한 근거는 별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우선 경제학의 시장실패론에 따라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도출해 보자. 대학교육은 공공재일까? 경제학교과서의 기술적 정의(비배제성, 비경합성)에 따르면 불행하게도 공공재로서의 성격은 약하다. 대학은 등록금 내지 않은 사람을 강의실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할 수 있고 유명 대학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학생 수는 제한되어 있다(물론 샌델의 정의론과 같은 방송 강의는 경합성이 약화되는데 이는 방송의 공공재적 성격 때문이다). 대학교육의 공공재적 성격은 대학이 생산해 내는 지식이 공공재라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찾을 수 있다. 흔히 책의 서문에서 저자들이 학생들의 열띤 토론과 질문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면 대학생들이 이런 지식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토론과 글쓰기는 이런 지식의 확대재생산이다. 그러므로 대학생들이 날카로운 질문과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도 대학에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성립된다(물론 이 측면만 고려한다면 교수와 대학원생의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위의 예는 지식이 양의 외부성을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대학 생활 자체가 사회에 커다란 외부효과를 끼치기도 한다. 예컨대 흔히 민청학련 세대, 386세대 식으로 하나의 세대를 형성함으로써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학 교육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키우고(불행하게도 중고등학교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사회의 모순에 대한 인식을 벼려서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 한국의 역사는 이런 사실을 훌륭하게 증명하고 있다. 대학의 독점가격은 이런 양의 외부성이 발휘될 수 있는 조건을 질식시키고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또 하나의 시장실패 예인 독점에 관해서는 이미 본 바와 같다.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 보조는 정의로운가 공공성은 시장실패론 이상을 포함한다. 즉 시장에서 매매되는 서비스이고 위의 시장실패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도 시장균형의 결과가 사회의 공익, 또는 공공가치를 달성하지 못할 때 정부든, 시민사회든 개입해야 한다. 시장과 정부, 사회경제가 역할 분담을 통해 공익을 달성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딜레마인 경우 ‘시장 성공’의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으며(사회딜레마 게임에서 경쟁은 협동보다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나아가서 정의론의 차원에서 공공성을 도출할 수 있다. 예컨대 대학교육이 필수재(또는 기본재, primary goods, 롤스)라면 정부 지원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예컨대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면 정부가 시장에서 쌀을 사서, 아니면 정부 비축미로 지원하는 건 당연하게 받아 들일 수 있다. 과연 한국에서 대학교육은 필수재일까? 많은 사람이 “대학 안 나오면 사람 구실 못한다”고 믿고 있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그 믿음이 옳건 그르건). 만일 조금 더 절박한 필수재에 대한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대학에 대한 보조금도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대학에 안 가거나 못 간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학이 금융이나 언론과 같은 시스템재인가도 살펴 볼 필요가 있지만 시스템재에 관한 이론이 거의 전혀 없으므로 이론부터 만든 후 나중에 천천히 따져 보기로 하자) 센의 정의론에 따르면 최소한의 필수재 공급을 넘어서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키워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정의이다(예컨대 장애인이라면 더 많은 필수재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현재 등록금 부담에 짓눌리는 대학생들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것은 대학 내부의 현저한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센의 정의론으로도 합리화될 수 있다. 샌델류의 공동체적 정의론도 대학생 보조를 지지할 수 있다. 심각한 차별을 야기해서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라면 당연히 시정의 대상이 된다. 이상의 근거로 등록금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합리화된다. 독점가격 규제와 공공성 확보 정책의 결합 그러나 대학등록금의 독점성에 대한 정책은 규제가 우선이다. 구체적으로 등록금 산정 근거의 공개로부터 시작해서 결국 등록금의 인하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 전제로 현재 대학의 기금 규모와 운용 실태, 재단 전입금 실적, 재정 수입과 지출 현황, 대학의 부동산 소유 현황과 이유 등부터 따져야 한다(“투명성 조건”이라고 하자). 등록금에 대한 목소리를 약자인 대학생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없고 교육부 당국도 믿을 수 없다면 대학당국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와 시민사회도 참여하는 등록금 산정위원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등록금이야말로 심의 민주주의에 의해서 합의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민주주의 조건”이라고 부르자). 만일 이런 전제 없이 등록금 보조만 실행하게 된다면 그건 독점가격을 추인할 뿐 아니라 앞으로 대학이 더 홀가분하게 등록금을 인상할 여지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히 그것은 나쁜 정책이다. 지금 한나라당의 태도가 바로 그렇다. 대학생들 표를 의식해서 그저 돈을 쥐어 주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나쁜 의미의) 포퓰리즘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응은 정동영 의원 등이 제시한 대학 무상 교육이다. 이 경우 등록금은 전적으로 정부가 산정하게 될 것이고 정부는 최소의 지출만 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존 등록금을 낮추려고 할 것이다. 일단 국공립대학교에서 제로 등록금을 시행하면 대학생 1인당 표준 교육비가 확립될 것이다. 만일 이 표준교육비가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사회가 받아들이게 된다면 각 대학의 상황에 따라 이 수준에 비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차액을 정부가 보조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국회에서 어떻게 협상이 진행될 것인가를 고려해 보면 아마도 규제 수준과 정부지원금액이 교환될 것이다. 즉 높은 규제에 걸맞은 더 많은 지원(야당), 그리고 낮은 규제와 더 적은 지원(한나라당)이 서로 대립하고 결국 중간 수준에서 타협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협상에서도 출발점은 현재의 독점가격이 아니라 대학생 1인당 표준교육비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장기적인 교육개혁과의 결합 현재의 등록금 문제의 근원은 사회양극화, 직장 양극화, 그리고 학벌 사회이다. 만일 현재의 등록금 운동이 이런 양극화를 완화하도록 설계된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지금 대학교육개혁 방안으로 국공립대학 네트워크 안이 제시되어 있다. 서울대 등 국공립대학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서, 예컨대 한국1대학, 한국2대학…으로 만들고 대학별로 전문 분야 특성화를 이룬 후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이다. 또한 교육 내용과 가격에 대한 규제에 동의하는 일반 대학도 이 네트워크에 포함시켜 나간다. 말하자면 점진적 대학 국공립화 방안이다. 나는 현재의 등록금 논의를 이 구상에 접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국공립대학부터 “제로 등록금”을 실시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금액의 1/10 이하로도 이룰 수 있는 목표이다. 단 국공립네트워크에 들어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서울대가 결사 반대할 가능성이 높지만 국민의 요구로 수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당장 사립대학생들의 어려움은 별도의 재정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 우선 투명성 조건과 민주주의 조건을 받아들인 학교에 한해서, 이 조건에 따라 등록금을 정상화한 후 사회가 표준 교육비에 비춰 어느 정도나 지원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따를 경우 국공립 무상을 더한다 해도 정부보조금 총액은 낮아질 수 있다. 사회 양극화가 존재하는 한, 대학의 독점력은 계속 작용하겠지만 내부의 견제(산정위원회)와 외부의 국공립네트워크에 의해서 일정 정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이 정상화되면 장차 사교육 경쟁도 어느 정도 완화되겠지만 현재의 역관계를 고려해 볼 때 사교육규제(나아가서 금지)가 훨씬 더 쉬울 것이다. 사학집단의 힘에 비해 학원의 힘은 훨씬 약하다. 당장 사교육에 대한 규제도 병행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1 개 댓글

  1. fool4you 2011년 6월 13일 at 9:59 오후 - Reply

    학벌사회, 대학 안 나오면 결혼도 못하고 임금차별 사람취급 못받는 사농공상의 봉건제적 요소가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의 병든 사회가 근본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나와도 취업이 안되는 현실 앞에 사교육비로 고통받는 현실. 버스기사 월급이 대학교수와 같고 사회적 대우도 같은 평등한 사회가 정답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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