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수상이 급진좌파?1986년 7월 영국 정부는 노동자의 임금 체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제안(green paper)을 발표했다. 하나는 임금과 이윤을 연계하는 것, 즉 이익공유(profit sharing)이고 또 하나는 보수 일부를 주식으로 지급하는 것(종업원지주제)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이 ‘급진좌파적 주장’이라고 표현했고, 이건희 삼성회장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일갈한 바로 그 정책이다. 당시 영국의 수상은 누구였을까? “시장 밖에 난 몰라”만 주야장천 노래했던 마가렛 대처다. 바로 신자유주의의 원조요, 한나라당의 영원한 우상이 아닌가. 영국이 이 제도를 도입한 건 80년대 초의 스태그플레이션을 타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여기에는 당시 MIT 교수였던 와이츠만이 1984년에 출간한 “공유경제(The Shared Economy)”라는 책과, 뒤이어 거물급 경제학자가 대거 참여한 세계적인 논쟁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와이츠만에 따르면 이익공유에 의해 완전고용이 달성될 뿐 아니라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익공유제를 택한 기업은 여전히 적었고 와이츠만의 이 주장이 거시경제에서 증명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바드대의 프리만 교수를 비롯한 많은 경제학자들은 지난 20여년 동안 어느 기간을 택해도 각국에서 이익공유제를 택한 기업이 생산성을 유의미하게 향상시켰고, 비판자들의 예측과 달리 총액 임금도 더 높았으며 따라서 노동조합도 환영한다는 점을 실증했다. 나아가서 최근의 행동경제학은 이윤공유나 종업원지주제가 상호성에 입각한 동료간 모니터, 그리고 신뢰의 구축을 통해 그 이상의 성과를 보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원리도 모르는 장관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도 “초과 이익공유제는 애초 기업내… 성과배분 개념”으로 “자동차 협력기업만 1만개인데 어디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어떻게 하느냐”며 끼어들었다. 맞다. 그런데 기업 내에서는 각 노동자나 작업팀이 전체 성과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어떻게 아는 것일까? 교과서에 나오는 요소별 한계생산성을 아는 기업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계약은 불완전하다. 바로 그 때문에 노동자들의 노력(effort)을 더 끌어내기 위해서, 또는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도록 하기 위해 이익공유제나 종업원지주제가 도입된 것이다. 이것은 팀생산이라면 언제나 적용되는 원리이다. 원하청 관계는 한 기업보다 더 큰 규모의 팀생산이다. 주무부처의 장관이 이익공유제의 원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현실에 존재한 적이 없다고? 딱 이익공유제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네트워크인 레가(Lega)는 이윤의 4%를 기금으로 걷는다. 노동자의 재교육, 신기술 개발, 어려운 협동조합에 대한 보조, 낙후 지역 협동조합의 신설 등에 이 기금이 사용된다.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하청단가는 “부품기업이 세계적 생산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준”에서 결정된다. 이것이 이탈리아 명품의 비결이다. 나라 차원에서는 흐지부지 되긴 했지만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을 들 수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불행하게도 신뢰에 기초한 이런 제도나 관행을 이 땅에서 바로 기대할 수는 없다. 나는 당장 하도급법만이라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 예컨대 2회 이상 위반한 대기업을 3년간 정부조달에서 제외시키는 정책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소 하청기업의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어야만 대기업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정운찬 위원장의 제안은 진흙탕 속의 연꽃 봉오리이다. 과연 이 꽃이 활짝 필 수 있을까, 아니면 이전투구로 끝나고 말 것인가? 옛 스승이 진흙탕 속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이 글은 11.3.25일자 경향신문에도 실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