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살겠다, 갈아보자.”옹근 55년 묵은 정치 구호다. 인터넷 시대에 반세기 전의 낡은 구호라면, 누군가 만지기만 해도 먼지로 폴폴 흩날릴 만하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1956년, 이승만의 독재를 겨냥했던 그 구호가 이명박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아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낡은 구호에 붉은 생기를 돌게 한 이는 이 대통령 자신이다. 그는 청와대에 들어간 3주년 기념으로 출입기자들과 가진 뒷산 산행에서 “나는 대통령 해먹기 힘들다는 생각이 없다”고 언죽번죽 말했다. 재임 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준한 발언이다. 전임 대통령의 비극적 자살에 정치적 책임을 느껴야 마땅한 현직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고인을 욕보이는 언행도 문제이지만 접어두자. 흉흉한 민심에 ‘55년 전 구호’ 등장 더 남세스러운 일이 있다. 대통령은 곧바로 자신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하지만 그 순간이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낡은 구호가 흉흉한 민심에 절절하게 다가온 것은. 무엇보다 이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찬찬히 톺아보길 제안한다. 자랑스럽다? 과연 그게 지금 대통령이 할 소리인가? 날마다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를 보라. 뛸 만큼 뛴 전세는 또 어떤가. 서민들의 삶은 바닥모를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다. 청년 자살이 곰비임비 불거지는 까닭도 그 맥락이다. 그렇다. 330여만마리, 비명에 간 저 가여운 가축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서민이 피눈물 흘리고 있다. 그럼에도 자랑스럽다는 말이 나오는가. 7%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을 내걸며 ‘국민 성공시대’를 열겠다고 흰소리 떠벌린 정치인이 바로 이명박 아니던가. 상식을 갖춘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국민 앞에 옷깃 여미며 언행을 조신할 때 아닌가. 여기서 이명박 집권 3년의 실정을 새삼 나열할 뜻은 없다. 경향신문 독자의 품격 때문이다. 민생 경제의 파탄은 물론,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굴욕적 재협상, 국민 불법 사찰과 은폐, 정권의 시녀로 다시 전락한 검찰 따위를 굳이 적시하지 않더라도 애독자라면 이미 개탄하고 있을 성싶다. 다만, ‘MB-한나라당 심판 정당, 시민사회 연석회의’가 이명박 취임 3년을 맞는 2월25일,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예고하며 내건 구호가 ‘못살겠다 MB 3년’임을, 이어 “찾아오자 민생예산, 철폐하라 비정규직, 중단하라 4대강, 취소하라 조·중·동 방송, 해결하라 구제역, 잡아라 생활물가”를 호소하고 있음을 독자와 있는 그대로 나누고 싶다. 그래서다. 이명박 정권 3년을 맞아 민주시민들이 더 깊이 성찰할 대목은 “못살겠다”가 아니다. “갈아보자”이다. 칼럼 제목에 물음표를 붙인 까닭은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어서다. 기실 민주당이 그 구호를 내건 선거에서 자유당은 재집권했다. 신익희 후보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만은 아니다. 진보당 조봉암 후보로 자연스럽게 ‘단일화’를 이룰 수 있었고, 진보당 부통령 후보가 자진 사퇴했는데도 민주당은 외면했다. 신익희가 유세할 때 야권 단일화를 부르대던 민주당은 정작 그가 죽어 후보가 없으면서도 조봉암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공언하는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 진보당은 “이것저것 다 보았다 혁신밖에 살길 없다”고 외쳤지만, 결국 “갈아봤자 더 못산다”며 언구럭 부리던 이승만이 재집권했다. 물음표 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55년이 흐른 오늘,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박근혜가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한나라당 재집권 가능성이 높은 현실에서 과연 누가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구현할 수 있을까. 지금 이 땅에서 애면글면 벌어지고 있는 시민정치운동에 민주시민들이 다사로운 눈길을 보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진보대통합이든, 민주대통합이든 새로운 시대를 벅벅이 열어가려는 움직임을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소통하며 공유할 때, 비로소 우리는 물음표 빼고 진솔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못살겠다, 갈아보자.” *이 글은 2011년 2월 2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