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촛불송년회. 12월26일 저녁 7시에 격려사를 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난감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아무리 짚어 봐도 격려사를 할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쉼 없이 어둠을 밝혀온 시민들 앞에 서서 ‘격려’를 하는 풍경은 상상만 해도 주제넘은 짓이었다. 그럼에도 갔다. 격려사 하는 사람이 여러 명이라는 말에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서울 시청 지하철역에서 송년회가 열리는 곳까지 길바닥 곳곳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며 발걸음은 다시 무거워왔다. 촛불시민들의 열정과 정성이 흠뻑 묻어났기 때문이다. 송년회 가는 길은 만감이 교차했다. 2008년 5월의 시청광장과 청계천, 을지로를 함께 걸었던 맑은 분들이 떠올랐다. <오마이뉴스>에 블로그를 열며 촛불을 넣었던 이유도, 촛불항쟁 시기에 ‘주권혁명’―우리가 직접 정치하고 직접 경영하는 즐거운 혁명―을 제안했던 설렘도 스쳐갔다. 우리가 믿고 열정 쏟을 정당이 없다면 사회를 보는 촛불시민의 소개를 받고 나섰을 때, 가식없이 속내를 밝혔다. 촛불항쟁 당시에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정당이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 나의 열정을 다해 헌신할 정당이 없다면, 그 정당을 직접 만들어 갈 때라고 제안했다. 기실 그 제안은 ‘복지국가와진보대통합을위한시민회의’(시민회의http://cafe.daum.net/unijinbo)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통된 뜻이다. 시민회의에는 줄기차게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이미 함께 하고 있다. 짧은 인사말을 겨우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자 시민회의에서 함께 일하는 ‘촛불’이 다가왔다. 촛불이 시나브로 꺼져가던 2008년 9월에 이제는 각각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가 사람들과 더불어 ‘학습 모임’을 꾸려가야 옳다고 강연한 내게 이명박 정권의 퇴진운동을 더 강조했던 분이다. 그는 내게 전단지를 30여 장 내놓았다. 12월29일 저녁6시 서울 명동의 YWCA대강당에서 열리는 시민회의 창립대회 안내문이다. 그는 내게 송년회 자리를 돌아다니며 안내문을 돌리라고 주문했다. 시민회의에서 가두선전전을 책임진 또 다른 ‘촛불’은 송년회 자리에서 앞치마 두르고 안주와 술을 나르면 시민회의에 더 많은 촛불이 참여할 것이라며 권했다. 고백하거니와 두 분의 간곡한 뜻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하기 싫어서가 결코 아니었다. 촛불 시민들과 함께 일해오지 못했으면서 송년회에 찾아와 시민회의 일을 적극 홍보한다는 게 남세스러웠다. 어쭙잖은 ‘격려사’를 통해 촛불시민들이 주체로 일궈가는 새로운 진보대통합 정당을 제안한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불편’했기에 더 그랬다. 송년회장 곳곳에는 현역 국회의원과 정당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학생운동 시절 참 아꼈던 후배도 있었다. 그들이 촛불시민들과 함께 하는 모습에서 새삼 희망을 실감했다. 집권 가능한 진보적 국민정당 만들 때 기실 오래전부터 민주당의 왼쪽에서 ‘지하 조직’까지 모든 진보세력이 하나로 뭉쳐 집권 가능한 진보적 국민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당이 만들어질 때까지 뭉툭한 필력이나마 보태는 데 있다. 정치 일선에 나서는 일은 ‘먹물’인 내 몫이 아님을 송년회장에서 두 ‘촛불 동지’의 제안을 받지 못한 내 모습을 보며 다시 확인했다. 다행히 시민사회에서 한국 정치를 바꾸는 시민정치운동이 절실하다는 공감대는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더러는 순진하다고 꼬집지만,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운동은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촛불시민들이 모인 송년회 자리에서 진정 우리가 헌신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대통합 정당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감히 제안한 이유다. 그 뜨거운 나날에 작은 촛불을 들었던 한 시민으로서 주제넘은 제안을 칼럼으로 쓰고 있는 이유다.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http://blog.ohmynews.com/sonseokchoon)에 함께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