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예비 후보자들에게 검증 질문서를 보냈는데, 몇몇 인사는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청와대 김명식 인사비서관의 말이다. 그는 덧붙였다. “과거 살아온 것만 문제 삼으면 쓸 수 있는 인재풀이 너무 적어 안타깝다.”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총리 물망에 오른 자들이 왜 “그만 두겠다”고 했는지 짐작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헛웃음이 나올 따름이다. 국무총리라는 벼슬을 마다할 만큼 썩거나 구린 데가 많아서 아니겠는가.대한민국에 국무총리 할 사람이 없다?아무튼 인사청문회를 통해 대한민국 정치권의 썩고 구린 알몸이 민망하게 드러나면서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나아갈 조짐이 보이고 있다. 블로그와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민주시민들의 여론을 저들도 더는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입증된 보기다.보라. 청와대를 비롯해 여야 의원들이 앞을 다투며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발의에 나섰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위한 시민회의’(시민회의)는 2010년 8월31일 발기인대회를 열고 ‘정치개혁 입법운동’의 첫 사업을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우리 다함께 저 어둡고 음습한 곳에 촛불을 듭시다. 썩고 구린 정치인들이 아예 공직을 넘볼 수 없도록 입법운동에 분연히 나섭시다. 그것이 가능한가 의문을 던질 때가 아닙니다. 가령 구체적 보기를 들어볼까요? <국회청문회나 공개강연에서 거짓말을 한 후보자는 공직에 취임할 수 없다>는 법 조항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시민회의는 첫 정치개혁 사업으로 썩고 구린 정치인(썩구정치인)의 공직취임 금지법을 제안하고 네티즌을 비롯해 민주시민과 더불어 입법운동을 힘차게 벌이겠습니다. 어느 정당이든 좋습니다. 손잡고 국회에서 입법될 때까지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http://cafe.daum.net/unijinbo)2010년 9월13일 현재 국회 운영위에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8건이 계류돼 있다는 보도는 반가운 일이다. 공직후보자의 거짓말을 처벌한다는 내용이 거의 모든 개정안에 들어 있는 사실은 더 그렇다. ‘거짓 진술을 한 후보자에게 위증죄를 적용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도 담겨 있다.앞 다퉈 나선 청문회법 개정 내실 기해야좋은 일이다. 다만, 거짓말만 추가할 일은 아니다. 재산형성 과정을 똑똑히 설명할 수 없는 자도 마땅히 들어가야 옳다. 위장전입도 예외로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이 너무 가혹하다면(나로선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적어도 과거에 공직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처음 물러났던 시점을 기준으로 그 뒤에도 위장전입을 한 자로 좁힐 수 있다.행여 오해 없기 바란다. 제논에 물대기식으로 모든 게 시민회의 때문이라고 해석할 뜻은 전혀 없다. 시민회의의 서명운동은 물론, 시민회의 구성 자체가 청문회를 보며 허탈 또는 울분에 휩싸인 국민이 있었기에, 그 분노를 여러 사람과 나눈 민주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앞으로 청문회법이 어느 정도 선까지 개정될지도 벅벅이 민주시민의 힘에 달려있다. 정치인들이 청문회법 개정에 나선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게 아니다. 썩고 구린 정치인들이 감히 공직을 넘볼 수 없도록 법제화될 때까지 민주시민의 맑은 뜻을 싸목싸목 모아가야 옳다.그렇다. 정치인들의 청문회법 개정 움직임, 그것은 국민이 정치 주권을 찾는 신호탄이다. 주권자가 직접 나서서 정치를 바꾸는 시민정치운동이 2010년대의 시대정신임을 웅변으로 일러주는 ‘사건’이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