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박테리아와 한국

By | 2010-09-07T11:46:20+00:00 2010.09.07.|

네덜란드의 안톤 반 레벤후크(Antonie van Leeuwenhoek, 1632∼1723)는 빗물을 떠다가 자신이 만든 현미경으로 보니 작은 생물들이 떠다니는 것을 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연 속에는 많은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미생물에 대한 연구를 하였으나 그 당시 과학 수준으로는 미생물의 존재가 베일에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그러다가 음식물의 부패에는 그 자체에서 생겨나는 미생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의학적 용어로는 ‘오염된’) 미생물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프랑스의 루이스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가 밝혀내게 된다. 그는 학의 목처럼 구부러진 유리병을 이용해서 완전히 밀폐된 음식과 공기와 통하게 된 음식을 비교하면서 공기와 통한 음식만이 부패하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주면서 결국 미생물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푸른곰팡이 현미경 사진(왼쪽)과 플레밍(오른쪽)의 연구 모습]이제까지는 미생물 중에서도 박테리아(세균, 細菌)의 존재에 관한 과학사였다. 하지만 그 역사가 완전히 방향을 돌이는 계기가 영국에서 벌어졌다. 바로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의 항생제 발견이었다. 그는 푸른곰팡이(Penicillium notatum)에서 나오는 어떤 물질이 박테리아를 억제하는 성질이 있음을 알아내고 그 이름을 페니실린(Penicillin)이라고 명명한다.그 이전까지만 해도 서양 의학이나 동양의학이나 총상을 입은 군인, 상처가 생긴 환자, 폐렴이나 세균에 감염된 사람들은 그저 넋 놓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민간요법이나 위생 개선 정도 할 수 있었지만 적극적인 적들과 싸울 수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페니실린의 발견과 대량생산으로 많은 세균에 의한 감염병을 치료하게 됨으로써 인류 역사는 사실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새롭고 강력한 항생제의 개발이 뒤따름으로서 우리 앞에 놓인 세균들은 이제 ‘다 죽었다’고 복창해야 될 것 같았다.항생제 내성의 문제인류는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항생제 사용 5∼60년 사이에 이제 페니실린을 사용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 아니 그 이후 쏟아져 나온 항생제들도 내성이 생겨서 병원에서 안심하고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항생제 내성’이란 세균을 없애기 위해서 사용하던 항생제가 더 효과가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미 세균이 항생제에 대한 방어력을 구축한 자기 방어 시스템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놈들이 죽어주지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놈들은 유전적 변이와 개체 강화를 통해 항생제가 들어와도 피식 웃으며 가지고 놀아버린다. 이렇게 해서 생긴 세균들이 항생제 내성을 만들고 치료 효과도 없게 만드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슈퍼 박테리아는 과연 ‘슈퍼’일까?얼마 전 영국에서 신생아 3명이 ‘슈퍼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별 반응이 없다가 이어서 일본 도쿄 한 대학병원에서 슈퍼 박테리아에 감염된 사람들 중 9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 언론들이 난리다.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기 위해서 장황하게 이까지 이어왔는데, 첫째로 우리가 슈퍼 박테리아 하면 아주 강력한 세균인 줄 아는데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슈퍼’란 말이 붙는 것은 그 놈이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파괴력이 엄청나야 하는데, 사실 그 세균들은 우리 몸에 생긴 종기에 있는 균 정도로 나약한 놈들이다. 그런데 왜 ‘슈퍼’란 말을 붙인 것일까?요번에 영국에서 신생아 사망 보도가 나왔을 때 영국 신문의 보도 내용 어디에도 ‘super-bacteria’ 란 표현은 없었다. 대신 ‘antibiotic-resistant superbug’란 표현을 썼는데 이 말이 더 정확한 말이다. 즉 강력한 박테리아란 표현이 아니라 ‘항생제 내성이 강력한 박테리아’라고 해야 옳은 것이다. 그 세균들도 위에서 말했듯이 무시무시한 놈들이 아니라 우리가 과거에 잘 치료받았던 대장균, 폐렴 세균, 포도상구균들이다.자, 여기서 언론의 문제를 얘기해 보자. 언론도 이러한 것을 잘 알았으면 괜히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려는 저널리즘적 사고에서 좀 벗어나줬으면 한다. 슈퍼박테리아가 아니라 ‘강력한 항생제 내성균’이라고 표현을 하도록 말이다. 뭐가 다르냐 하면 전자는 세균에 초점이 맞춰져서 불안을 야기하며, 치료나 항생제의 개발에 중심이 주어진다. 하지만 후자에 초점이 맞춰질 경우에는 내성의 원인을 따지게 되며, 그 예방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슈퍼박테리아와 한국대한민국은 안전할까? 우리나라에도 이미 가장 강력한 항생제라는 ‘반코마이신’에 안 듣는 흔한 세균인 대장균(VRE)이 있고, 중요한 치료제인 메치실린이라는 항생제에 안 듣는 포도상구균(MRSA) 등 여러 종이 발견되었다. 즉 세균에 감염되었는데 쓸 약이 없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21세기, 과학의 첨단을 달린다는 요즘의 의료 현실이다. 영국, 일본의 사례가 보도되었지만 사실 지금도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이로 인해 백약이 무효한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모르고 지나가거나, 보도만 안 될 뿐…..이렇게 항생제 내성이 점점 심각해지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항생제의 남용(濫用)과 오용(誤用)이다. ‘남용’은 함부로 쓰는 것을 의미하므로 의약분업 시대에는 주로 의사들과 축산업자나 양어장 업자들의 문제이고, ‘오용’은 약을 받아서 사용하는 이용자들의 문제이다.의사들은 열이 나거나 목이 조금만 아파도 항생제를 사용하는 경향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예방적 항생제이든, 방어적 치료 목적이든 간에 무분별한 면이 분명 있다. 그런데 축산업자나 양어장은 왜? 소 한 마리나 돼지 한 마리가 먹는 항생제는 인간이 먹는 양보다 훨씬 많다. 닭도 마찬가지다. 양어장에서는 흔하게 항생제를 먹인다. 우리는 맛있다고 고기를 먹지만 이미 항생제에 찌든 육고기나 생선을 먹고 있는 셈이다.환자들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적절히 항생제를 복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먹다가 증상이 좋아졌다고 약을 끊어버린다. 그래서 항생제 내성이 생긴 결핵이 엄청 많아져서 치료하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결핵뿐만 아니라 웬만한 감염병들이 잘 낫지 않고 심해지거나 치료 기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나는 웬만하면 약을 잘 안 먹어요.”라거나 “좋아지니까 약을 끊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요?”하면서 자랑스럽게 말을 하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아주 자주 본다. 그러려면 아예 처음부터 약을 달라고 하지 말고 버티든지….. 세균에 의한 감염병에는 투약 기간이 7일, 10일, 1달, 6개월 등 교과서적으로 정해져 있다. 환자 상태에 따라서 더 길어지면 길어졌지 그보다 짧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죽다가 살아난 박테리아들은 더 강력한 방어체계를 갖추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나중에 가서는 항생제가 효과를 못 보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축산업이나 양어장은 다른 방면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만 인간에게 사용하는 항생제는 적절한 사용을 유도하기가 어렵지 않다. 다른 동물들은 아픈지 안 아픈지 몰라서 무분별하게 살포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인간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가? 의사는 항생제를 엄격한 기준에 의해서 사용하려고 하고, 항생제가 필요하면 왜 필요하며, 얼마만큼 이용해야 하는지 충분한 설명을 하게 되면 의사들의 남용이나 환자들의 오용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우리나라는 과거보다 줄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OECE 기준으로 볼 때 항생제 이용률이 높은 나라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줄여라, 줄여라 부르짖어도 현장 의사들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먹혀들지 않는 이유가 의사-환자 간 소통 구조가 잘 안 되어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우리 중에 진료실에서 꼼꼼히 항생제를 안 쓰는 이유, 항생제를 꼭 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본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그런 소통 관계가 우리나라에는 있을까?주치의제도처럼 의사-환자 간의 안정된 진료 시스템을 가지게 되면 달라질 수 있다. 약을 안 써도 되고, 예방적인 내용들을 말할 수 있고, 항생제 사용에 주의할 점들도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구조는 의사와 환자 간의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 주는 주치의제도밖에 없다.바로 이것이 지금도 우리 옆을 떠돌고 다니는 슈퍼 아닌 슈퍼 박테리아를 인식하면서 가져야 할 관점이다. 언론도 괜히 이름만 거창하게 지어주지 말고 근저에 깔려있는 문제와 해결책을 보도해야 하는 이유이다.고병수 bj9710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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