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한국의 스마트폰 이용자들에게 화제가 된 외신기사가 있었다. 미국의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업무를 관장하는 미 의회도서관 저작권사무국이 “합법적으로 획득한 소프트웨어를 스마트폰에 설치하기 위해 기기조작을 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미 의회도서관 저작권사무국의 결정으로 이른바 ‘탈옥'(Jailbreak)이라고 불리던 스마트폰 이용자들의 기기 조작이 합법화 된 것이다. 물론 애플사는 즉각 반박에 나섰고 스마트폰 보안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미국에서의 이 같은 논쟁은 이미 스마트폰 이용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인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저작권이나 통신서비스 관련 정책들이 더 이상 한 국가 차원의 문제를 넘어 국제적인 이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하드웨어와 각 국가별 통신서비스가 분리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통신서비스 등 전방위에 걸쳐 기본이 되는 ‘플랫폼’이 중요해졌다. 이것이 스마트폰을 둘러싼 각종 정책들이 국제적 이슈로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글로벌기업들의 판매정책과 충돌하는 국가정책문제는 애플이나 구글 등의 글로벌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주도하는 플랫폼에 대한 각 국가별 정책과 고민이 상이하다는 것이다. 개별 국가들이 스마트폰을 비롯한 통신정책에서 우선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해당 국가 국민들의 생활과 사회정책, 인프라 등이다. 따라서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기업들이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보급을 이유로 일방적인 플랫폼과 자사 위주의 정책들을 제시하면서 종종 개별 국가 차원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거나 충돌을 빚는 것이다.일례로, 2008년 프랑스에서는 애플이 프랑스 통신업체인 Orange사와 아이폰 판매에 대한 독점계약을 맺은 것을 두고 프랑스 경쟁위원회가 다른 통신업체에도 아이폰을 공급하도록 규제를 가하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06년에도 애플이 아이폰에 사용되는 아이튠즈 서비스를 통해 구입한 음악파일을 타 기기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하자 프랑스 하원이 이를 금지하도록 하는 저작권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핀란드 등 북유럽 3국에서도 애플의 아이튠즈 서비스가 독점이라는 법원판결이 내려지면서 국제적으로 논란이 가중되기도 했다.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애플이 소리바다 등의 온라인 음원서비스 애플리케이션들을 사전협의 없이 차단한 조치에 대해 자사 서비스인 아이튠즈만을 사용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미국에서는 미 연방통신위원회가 3G망을 통한 인터넷전화를 허용하도록 결정하자 음성통화로 수익을 얻던 AT&T를 비롯한 거대통신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주요 글로벌기업들과 개별 국가들 간의 스마트폰 정책을 둘러싼 논쟁 외에도 글로벌 기업들 간에 벌어지는 논란도 있다. 구글의 프로그램인 구글보이스에 대해 애플이 자사 소프트웨어 마켓인 앱스토어에 등록을 거부해 논란이 이는가 하면 국내에서도 인터넷 전화 소프트웨어를 두고 이동통신사들과 콘텐츠업체들 간의 논쟁이 일기도 한다.스마트폰 혁명이 초래한 새로운 국제기준이처럼 스마트폰이 급속히 확산되고 스마트폰을 둘러싼 논쟁의 양상이 국제 이슈로까지 번지면서 한편에서는 스마트폰 혁명이 초래한 거대한 변화에 주목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기준과 정책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고 있다. 이것은 마치 글로벌 차원의 금융위기가 도래한 뒤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국제표준과 협력 관계가 논의되고 있는 양상과 비슷하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G8에서 G2와 G20으로 국제표준을 주도하는 국가의 숫자가 변하는가 하면, 기존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힘을 잃게 되고 신흥국의 발언권이 강해지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나고 지적재산권 등에 대한 새로운 기준과 국제협력 그리고 개별 국가들의 통신정책과 개방의 기준 등이 심도있게 논의되는 시점에 와 있다. 금융 ‘공황’과 스마트폰 ‘혁명’에서 찾을 수 있는 유사점이 있다면 ‘큰 변화 이후에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구글이나 애플이 ‘적극적 개방’ 전략을 통해 포화된 레드오션 시장인 통신시장, 휴대폰시장에서 블루오션을 창출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도 통신시장을 급속히 개방해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국민들의 생활편익을 도모하고 기술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물론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이 국내에 들어오고 큰 효과를 거두면서 기존에 한국국민들이 사용하지 못했던 GPS 기능을 이용하거나 와이파이(Wi-Fi) 무선인터넷 등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소비자들이나 국민들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앞서 국제적으로 논쟁이 된 사례들만 보더라도 애플이나 구글,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들이 추구하는 스마트폰 정책이라는 것은 이윤추구를 위해 독점도 마다하지 않는 극한의 효율성 추구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런 글로벌 기업들의 정책이 늘 국민들과 소비자들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는 얘기다. 따라서 통신서비스 시장 개방을 비롯한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우리만의 기준과 원칙이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미FTA와 스마트폰예를 들면 확대되는 스마트폰 시장과 한미FTA의 관련성도 새롭게 짚어보아야 할 부분이다. 지난 2006년 체결된 한미FTA 협정에 따르면 한미FTA는 지적재산권의 보호에 대해서 매우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중에서 스마트폰과 관련해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기술적 보호조치와 관련하여 접근통제를 위한 기술적 보호조치의 무력화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국의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종종 활용하고 있는 탈옥(Jailbreak)등과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하는데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만큼 한국과 미국 간에 국제분쟁의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지적재산권 보호 등에 있어서 ‘복제통제’의 개념은 인정하고 있으나 ‘접근통제’의 개념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이용자들에게 스마트폰 탈옥(Jailbreak) 등이 합법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한미FTA로 인해 불법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기간통신사업자를 개방하도록 한 문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한미FTA 체결 과정에서 한국은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해 외국인이 100%까지 간접투자를 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그러나 기존에는 한국의 SK텔레콤이나 KT와 같이 기간통신사업자들이 워낙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큰 논란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통신서비스가 단순한 음성통화 위주에서 벗어나 네트워크 인프라를 기초로 한 다양한 콘텐츠 사업이나 인터넷 전화로 그 무게중심이 변했다. 이에 따라 외국의 글로벌 통신사업자들이 국내 통신서비스 시장에 훨씬 적극적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정보통신 인프라가 가지는 공공재적 성격과 국가안보 등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통신서비스 시장에 국한되는 문제를 넘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게다가 한국에서는 기간통신사업자중 하나였던 ‘하나로텔레콤’이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에 매각되면서 Wibro사업권을 반납하고 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축소되는가 하면 결국 대규모 구조조정이 벌어져 논란이 되었던 경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민감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망 중립성 개념을 둘러싼 국제적인 이해도의 차이, 디지털 음원서비스 업체들과 통신사업자들 간의 갈등까지 시급하게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것들이 산적해 있다.새로운 기준과 정책은 국민생활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그런데 우리 정부와 사회가 이런 국제기준 또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고려할 때 결코 소외돼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생활에 활용하는 ‘국민’들이다. 스마트폰 혁명으로 초래된 국제적인 논쟁이나 정책 조정을 글로벌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해당 공동체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볼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미국의 애플과 구글 그리고 핀란드의 노키아, 대만의 HTC의 이해관계가 다 다르고 심지어 삼성과 엘지, KT나 SK텔레콤 등의 이해관계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이해관계다. 과연 지금 정부는 국민들의 입장에 서서 국제기준을 마련하고 통신정책을 수립하고 있는가. 혹여나 글로벌 기업들의 이익에 일희일비하며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서비스 정책이나 기준에 우리 국민들의 생활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갈라파고스 신드롬’ 운운하면서 무조건적인 개방이나 외국 기업들과의 경쟁을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정책을 고수하는 것도 물론 옳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기업들의 프레임 전쟁을 넘어 국민생활의 증진과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무엇이 더 바람직한가를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부와 정책당국자들은 단순히 성장하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어떻게 이윤을 창출할 것인가, 또는 그에 걸맞은 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라는 시장주의적 고민만을 하고 있다. 정부정책의 방향은 기업의 이윤이나 산업육성이라는 측면을 넘어 모바일 웹2.0으로 표현되는 스마트폰 혁명을 통해 국민들이 참여하고 소통하는 인프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생활을 증진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지난 90년대 중반 우리는 국제기준, 글로벌 스탠다드를 좇아 준비되지 않은 채로 금융시장을 무리하게 개방했다가 외국 투기자본의 손에 국민경제가 한순간에 농락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후에도 반복되는 금융시장에서 혼란의 최대 피해자는 오히려 당시의 개방 열풍, 투자 열풍에 휩쓸린 국민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새롭게 찾아온 스마트폰 혁명으로 시작된 개방논쟁, 국제기준에 대한 논쟁에서 우리 국민들의 생활과 안정성을 먼저 고민하는 우리만의 기준과 정책방향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